한문앓이

14. 자기를 구하는 것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2-19 00:22
조회
414

14. 자기를 구하는 것


骸垢想浴 執熱願涼
뼈 해骸, 때 구垢, 생각 상想, 목욕 욕浴. 잡을 집執, 더울 열熱, 원할 원願, 서늘할 량涼
몸에 때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하고, 뜨거운 것을 잡으면 선선해지기를 원한다.


나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구절 중 하나다. “몸에 때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하고, 뜨거운 것을 잡으면 선선해지기를 원한다.”?! 썰렁한 구절이 아닌가. 당연한 일들이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인지. 특별하게 가르쳐주는 것도 없고 생각해볼 만한 점도 없는 것 같았다.


《천자문뎐》이라는 책에서는 이 구절이 인간의 본성을 비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악(惡)을 보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선(善)을 찾는다. 나아가 군자는 이 본성에 따라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할 뜻을 세운다. 선을 추구하는 본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것이 많겠다. 대체 무엇이 선인가. ‘뜨거운 것을 잡으면 선선해지기를 원한다’와 같은 구절을 보고 있으면 선(善) 역시 몸과 마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관련된 것 같다. 어쨌든 군자가 자기 본성에 따라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것도 본성에 따르는 일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몸에 때가 끼어도 목욕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가 있다. 뜨거운 것을 잡고 있어도 선선한 것을 찾지 않는 이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군자가 본성을 따른다면 이들은 자기 본성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인가. 하지만 자기 본성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인간도 있는가.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몸에 때가 끼든 어쨌든 다른 일들에 몰두해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또한 그의 자연스러움이 아닌가. ‘본성에 따른다’는 말만으로는  마음을 바르게 할 결심을 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것은, 그것이 좋고 대단한 일이기 때문일까. 군자는 누구나 되어야 할 대단한 인간이라 사람들은 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 '해야 할 것'이라는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게 되는 순간 도처의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본성을 따른다’는 말이 의아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내 불신(不信) 때문이 아닐지. 사람은 저절로 ‘좋은 일’을 좇지 않는다는 식의 불신. 한편으로 이것은, 어떤 좋은 방향이 있는데 나는 지금 그곳으로 향하지 않기에 생기는 불안이 아닐까.


骸垢想浴 執熱願涼, 이 구절은 몸에 때가 끼어도 목욕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는 구절이 아니다. 군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행로에 따른 것일 뿐이다. 여기에는 강요나 억지 결심이 끼어들지 않는다. 다시, 군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목욕하겠다는 생각은 몸에 때가 끼었다는 불편함에서 생긴다. 선선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뜨거움을 느끼는 현재 내 감각이다. 그렇다면, 군자란 결국 자신을 솔직하게 볼 수 있는 자가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마음을 정직하게 보는 것, 그것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고 군자가 되고자 하는 결심이 아닐까.


내가 처하게 되는 것은 갖가지 마음의 상태들이다. 내 마음의 안방극장은 도무지 쉴 줄을 모른다.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매번 갖가지 드라마를 만들어 나를 울고 또 웃게 한다. 骸垢想浴 執熱願涼(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하고, 뜨거운 것을 잡으면 선선해지기를 원한다). 마음의 안방극장이 나를 괴롭게 한다면 그로부터 벗어날 생각도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나는 것일까. 이걸 믿지 못한다면 아직까지 나는 어떤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닐까. 벗어나야 한다는 식의 강박 말이다.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은 스스로 제대로 살 생각을 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어떤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 아무리 ‘이것이 좋은 것이야’라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결국 자기 자신이 처해있는 몸과 마음의 상황이 가야할 바를 알려주는 것 같다. 자기를 구하는 것은 그래서 자기다.

전체 2

  • 2016-02-19 02:55
    으흠! 목욕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로다! 그래, 잘 생각했다. 목욕 좀 해라~~ 때낀 걸 모를 정도로 뭔가에 몰두해 있는 거...아니잖아?ㅋㅋ

    • 2016-02-20 00:16
      ㅋㅋㅋㅋ 때 빼고 광내보겠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