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15.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妄談彼短)’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2-25 16:03
조회
806
15.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妄談彼短)’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학기 초, 이번 신입생 중에 몹시 개념 없는 애 하나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모임 자리에서 동기 아이에게 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의아했다. 살면서 대단한 소문을 몰고 다녀본 적도 없었고 허례허식에 밝은 내게 ‘개념 없음’이란 꽤나 생소한 규정이었다. “너 혹시 선배들에게 뭐 실수한 거 없냐.”면서 걱정스레 이야기를 꺼내는 동기 앞에서 천진하게 “응?”했던 기억이 난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했다. 아니 사건이랄 것도 없다. 당시 나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그때 같은 기숙사 건물에 사는 한 선배를 우연히 만났는데 반가워서 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아마 "언니~~"라고 외쳤지 싶다. 반가움의 표시였는데 덕택에 ‘개념 없는 애’로 몇몇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잠옷 바지 입고 돌아다니는 사이에 격식 있는 인사라도 기대한 것인가. 그 후로 나는 선배들과는 되도록 가까이하지 않았다. 동시에 만나면 깍듯하게 ‘안녕하시므니까’했다.

사실 내가 손을 흔들었는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는지 따위가 그이에게 얼마나 중요했을까. 그저 꼬투리 잡으며 이야기할 거리를 필요로 했던 이에게 내 행동 하나가 걸려든 것 뿐이다. 당시 나는 나름대로 선배들에게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오죽 이야기할 것이 없었으면…’ 싶긴 하지만 어쨌든 내 덕에 선배들은 잠시나마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며 의기투합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본인 것 같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왔다. 부부 사이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부들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고. 부부 관계뿐만이 아니다. 친구 사이에서도 저 규칙은 통용된다. 부모, 선생, 친구들의 단점을 지적하며 친구 사이는 끈끈해진다. 누군가의 단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상대의 단점 하나를 알았다 싶으면 어째 그 생각만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아마 그 생각이 여러모로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렇지 않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또 상대방에 대해서 주의해야 할 바를 알려준다고도 생각하게 된다. 이 효용 덕택에 오늘도 상대방의 단점 하나를 밝히고자 머리를 굴리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것은 힘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경험상 알고 있다. 꽃다발로 다가왔던 이가 어느 순간 가시덤불이 되어 내 앞에 있다. 그 반대 경우도 흔하다. 시절에 따라, 오늘 하루의 컨디션에 따라, 내 필요에 따라, 마음에 따라 상대의 손짓 발짓 하나도 다르게 다가온다. 원한다면 상대방에 대해 오천만가지 다른 단점을 말할 수도 있으리라. 반대로 그만큼의 장점을 말할 수도 있겠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 (妄談彼短)

천자문의 한 구절이다. 내 책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군자는 자신의 행실을 닦는 것을 급히 여기기 때문에 남의 장단을 점검할 겨를이 없다”! 진짜 급해야 할 일은 ‘자신의 행실을 닦는 것’인데 어째서 남의 이모저모에 그렇게도 마음을 쓰는지 이야기한다. 다소 약이 오르는 풀이다. 쓸 데 없는 데 힘 빼지 말고 그대나 잘 돌보시길, 하는 것 아닌가.

상대방의 이모저모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것에 마음이 빼앗기면 때때로 분명 겉잡을 수가 없다. 모든 일이 그에 따라 좌우되니 심할 때는 밥 한 숟갈 먹는 일도 어려워진다. ‘외물(外物)에 흔들린다’는 옛 말은 바로 이럴 때 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외물이란 곧 내 마음이기도 하다. 폭군이 있어 우리를 공격하는 게 아니다. 언제나 내가 만든 마구니 덕에 나의 하루는 언제든지 지옥이 된다.

군자는 자신의 행실을 닦는 것을 급히 여긴다. 그래서 남의 장단을 점검할 겨를이 없다. 군자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인간인 것일까. 그는 자기의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은 아닌가. 자신의 행실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외물에 마음이 흔들리고 또 자기 마음에 따라 사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자기 자신의 향방을 정해버린다면 사람은 언제나 혼란한 상태에만 있게 될 것이다. 쾌와 불쾌, 두려움과 안정감 따위를 오락가락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행실을 닦는 일은 이 문제와 대면하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겪는 행복과 불행에 자기를 내맡기지 않는다면 그 때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실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을 행실을 닦는 것은 그런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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