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16. 함백 여행을 다녀와서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3-03 18:07
조회
719
16. 함백 여행을 다녀와서

함백에 다녀왔다. 말했다시피 《천자문(千字文)》 완독 기념이다. 우응순 샘 포함 총 12명이 함께 갔다. 그 중에 두 명 - 한라와 선재 - 은 《천자문》이 끝날 때 격몽스쿨에 입학한 신입생. <감이당>의 ‘백수다’ 프로그램 출신으로 앞으로 <감이당>에서 열리는 ‘어린이 낭송스쿨’ 프로그램에 튜터로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이 합세하여 이번 함백행(行)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가 되었다. 첫째, 《천자문》 완독자들의 실력 점검과 복습. 둘째, 한라와 선재의 ‘천자문’ 읽기. 한글로 ‘천지현황’ 써진 것 없이 한문들만 보고 천자문을 소리 내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 한라와 선재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선재와 한라 이야기를 먼저 하자. 함백 여행 전까지 두 사람은 천자문 전문(全文)을 읽어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1박 2일 사이에 천자문 전체를 읽을 수 있어야 했던 것. 까막눈 출신으로 지금도 더듬더듬 《천자문》을 읽곤 하는 나는 꽤나 걱정이 되었다. ‘주흥사(周興嗣)는 하루 만에 천자문을 짓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지 않나. 한라와 선재도 머리가 세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머쓱해 했다.  한라와 선재, 두 사람은 1박 2일 사이에 《천자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같은 글자가 다른 책에서 나오면 읽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글자를 읽는 것 보다 소리를 기억하고 내뱉는 식이기도 하므로. 그럼에도 1박 2일 동안 1000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꽤나 멋지다. 어쨌든 마디 하나를 넘은 것이 아닌가. 뭐가 됐든 낯선 일에 뛰어들어 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몸과 마음에 저항이 생기기 때문이다. 1박 2일 짧은 시간이지만 그 부데낌 견뎌냈으니 훌륭하다! 이곳아여 멀로 이번 함백행(行)은 가장 큰 수확이 아니었을지.

한편 선재와 한라를 제외한 이들은 함백슈퍼로 쓰였던 방에서 《천자문》을 읽고 또 읽었다. 전문(全文)을 함께 소리 내 읽었고, 돌아가며 한 구절씩 강독도 했다. 방 안에 둘러 앉아 그저 읽고 또 읽은 것뿐이지만 이 일은 꽤나 역동적이다. 처음 함백에 갔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었다. ‘글을 읽을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힘이 드나’. 때로는 숨이 차는 것 같기도 하다. 정신이 혼미한 것 같기도… 하다면 좀 과한가. 그저 졸린 것뿐인가. 그렇지만 나름대로 이번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글자를 읽을 때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고.

말하고 나니 민망하지만 일리는 있다. 고 몇 시간 동안 우리는 갖가지 얼굴을 만났다. 갖가지 이야기들을 통과했다. 물론 글자를 읽으며 만난 세계는 뚜렷하고 명확하지가 않다. 우응순샘의 설명들이 그 흐릿함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내 온갖 상상력이 동원되지만 역시 부족하다. 가령, “川流不息 淵澄取映(천류불식 연징취영)”. 냇물은 흘러 쉬지 않고 못(연못) 물이 맑으면 비침을 취할 수 있다. 이것은 쉼 없이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군자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 쉼 없이 흘러가는 냇물과 같이 살아가는 이 사람을 내가 어찌 충분하게 말할 수 있을까. “凌摩絳霄(능마강소)”라는 구절도 계속 맴돈다. 홀로 바다를 헤엄치며 살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붕새로 변하였다. 그는 ‘붉은 하늘을 능멸하고 만진다’(凌摩絳霄). 《장자》에서 가져온 구절인데 이 역시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지만 멋져서 중얼거리게만 된다. 붉은 하늘을 능멸할 정도의 기세란 어떤 것일까, 하면서. 천자문 읽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무엇 하나 정확하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 아닐지. 낯선 세계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만 같다. 절세미녀 서시가 찡그리는 듯 웃는다.(毛施淑姿 工嚬姸笑). 궁전들이 번듯하게 세워져 있는 곳도 지난다.(宮殿盤鬱 樓觀飛驚)  글자들이 펼쳐내는 장면들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1000개의 글자들을 읽어간다. 

지난 2월 28일과 3월 1일 이틀을 나는 함백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갑자기 내린 눈이 산과 도로를 하얗게 만들었다. 날씨는 다소 쌀쌀했지만 맛난 음식들 덕인지 좋은 공기 덕인지 모두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천자문》. 천자문을 읽으며 함백은 또한 함백 이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나 다른 삼경친구들에게 함백은 2016년 강원도의 작은 마을 이상이다. 거기서 분명 저 옛날의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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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5 05:08
    규문의 유학생 완수교장샘과 수영의 천자문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새봄을 맞아 천자문서당도 열어야겠어욤ㅋㅋ

    • 2016-03-07 13:59
      감사합니다! & 그저 웃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