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17. 한문의 바다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3-10 23:21
조회
895
17. 한문의 바다

삼경스쿨에 입학한 지 약 6개월이 지났다. 천자문 강독이 끝났고 몇 주 전부터는 《논어》 공부에 들어갔다. 이 시점에서 채운샘이 내게 <한문 앓이> 주제를 하나 주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6개월 전과 지금, 나에게 한문이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 생각해 볼 것! 이 말을 듣고 먼저 떠올렸던 것은 지난 6개월 간 가까이 지냈던 근심들이었다.

우리 연구실은 공부가 비처럼 쏟아지는 곳이 아닐까. 공부의 기회가 넘친다. 공부 거리도 많다. 좋은 샘들과 동학들이 있고 같이 공부하자고 유혹하는 목소리도 가득하다. 이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럼에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내 경우, 공부는 안 하고 부담감만 키우는 일을 잘한다. 이렇게 말해보겠다. 나는 매일 큰 선물을 받는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맛난 간식도 밥도 잘 얻어먹으며 살고 있다. 호시절(好時節)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대체 이 선물들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은 잘도 자란다. 그래서 ‘잘 해야지’ 결심을 하면 곧 공부는 짐과 같이 변해버린다. 심할 때는 누군가 내게 억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고’ 할머니 소리가 몸을 채운다.

한문 공부를 하면서도 그랬던 것 같다. 열성적으로 가르쳐주는 선생님 계시겠다, 같이 공부해주는 친구들 있겠다, 책 있겠다, 시간 있겠다……. 실컷 공부만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흥이 나서 시작했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래도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조금 고되다 싶으면 ‘정말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커진다. 이렇게 휘청거리며 6개월을 보냈다.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법성게의 한 구절이다.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뜬금없지만 6개월의 끝 무렵에는 이 구절이 종종 생각났다. 옥편을 뒤적거리다 나도 모르게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을 중얼거리곤 했다. 뜻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서당개로 지낸 덕에 뜻은 몰라도 멋진 구절을 떠올리는 일은 종종 있다!) 그래도 저 구절을 떠올린 데에 이유가 없지는 않다. 이 한문의 세계는 망망대해(茫茫大海)같다는 것. 때로는 한 글자 안에도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가령, 얼마 전에는 옥편에서 해(解)를 찾았다. 이 글자는 ‘풀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원한 따위를 풀다’도 된다. 어려운 문제나 의심나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뜻도 있다. ‘깨달음’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게을리 하다’는 뜻도 있고 ‘속이다’나 ‘거짓’의 뜻도 있다. 글자 하나에도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뜻들이 함께 담겨 있다. 그렇다고 옥편에 주어진 뜻들을 암기하는 일로 공부가 끝나지도 않을 것이다. 한문 고전들에 담긴 시간들은 어떻게 다 헤아리는가. 어쩌면 이번 생을 다 바쳐도 글자 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한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대체 뭘까. 한문의 세계가 깊고 깊은 바다와 같다면 그 때 나는 어떻게 한문 공부를 해나갈 수 있을까. 서점에 파는 언어 교재에는 ‘완전 정복’ 같은 글자들이 쓰여 있다. 한문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완전 정복’을 기치로 삼았을까. 하지만 완전 정복이라니. 한문의 세계는 내게 활짝 열려있지만 완전 정복 같은 것을 당할 무엇은 아니다. 그래서 난감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놓이기도 하다. 나는 깜냥대로 헤엄치면 되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지금은 이 바다를 수없이 헤엄친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선생님들은 종종 사기꾼같다. 아니 유혹자라고 할까. 아무래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이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면 일단은 어쩔 수가 없다. 낑낑거리며 어쨌든 해보는 수밖에. 물론 시작하면 대체 앞으로 가고 있는지 뒤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 같다. 때로는 고꾸라지기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궁금한 이상 더 가보는 수밖에. 사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이 그러하듯 끝내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올해도 한문 공부를 이어간다.(복되도다!)

나는 몸이 둔하여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잘 못 탄다. 종종 해저탐사선 같은 것을 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일이 이번 생에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우주 여행도 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문의 세계는 매일 매일 여행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가. 물론 종종 어렵고 지루하다는 게 함정. 그래도 일단은 기쁘다. 기다려라,《논어(論語)》! 《대학(大學)․중용(中庸)》!

* 삼경스쿨에서는 지금 《논어(論語)》를 읽고 있다. 오는 일요일에 개강하는 격몽(擊蒙) 스쿨 - 사서 읽는 일요일 세미나는 《대학(大學) 》 읽기를 시작한다.
전체 2

  • 2016-03-11 13:24
    화이링

  • 2016-03-11 14:53
    오호라~ 그러니까 한문의 바다에서 짠맛 단맛을 다 알아가는 중이라는 얘기지? 부디 그 '한 맛'을 깨닫기를... 합장!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