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4월 29일 10주차 후기 및 2학기 공지

작성자
윤지
작성일
2021-05-03 08:33
조회
159

1. 불티모아, 낭송모아


중론 세미나를 시작한지가 그리 오래였나 싶은데 벌써 10주가 지나가고 지난 시간 1학기 마지막 셈나가 있었습니다. 출장가신 헌식샘과 몸이 아파 못오신 설샘이 매우 아쉬웠지만 1학기의 마지막에 각자 준비해온 낭송으로 조촐하게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매주 낭송하고 토론해온 나가르주나의 <친우서>를 그냥 이렇게 마치기는 아쉽다며 각자 한 게송씩이라도 암송해보면 어떨까라는 소소한 동기에서 출발했던 게, 그럼 내친 김에 <중론>도 한 게송씩 외우보자는 의견이 수렴되었더랬죠. 그 때만 하더라도 저희는 <중론>이 너무 어려워 차라리 외워라도 보면 어떨까 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 아무튼 용수보살 대신 채세음보살께서 참석하시어 귀를 쫑긋 낭송을 어떻게들 하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만... 정말 다들 한 두 게송씩만을 외워오신 지라 매우 짤막한 낭송 메들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ㅋㅋ 그러나 한 학기 내내 같이 낭송해온 <친우서>의 구절을 짧더라도 누군가 암송하는 것으로 들으니 또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한 구절이라도 직접 외우고 낭송하면 그냥 눈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에서 텍스트와 접속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넘나 웃기고도 의외였던 것은 <친우서>는 각자 다 다른 구절을 암송했는데 <중론>은 모두 다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구절을 암송해다는 겁니다! 다름아닌 <중론>의 ‘귀경게’ 였어요. “소멸함도 없고 생겨남도 없고, 그침도 없고 항상함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다른 의미인 것도 아니고 같은 의미인 것도 아니고....” 각각의 다양한 버전으로 암송하는 이 게송을 반복해서 들으니 이제 이 게송은 꿈 속에서도 낭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은주샘은 좀 늦게 오셔서 따로 낭송을 하셨는데 아, 저희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은주샘도 ‘귀경게’를 낭송하리라는 것을....! 역쉬나 은주샘은 저희를 배신하지 않으셨고 그렇게 저희는 낭송으로 단결된 팀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재가자도 할 수 있다네

이어서 <친우서>를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낭송하고, 게송 106번부터 마지막까지 내용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친우서>는 용수 보살이 한 나라의 왕에게 보낸 게송 형태의 편지를 모은 것입니다. 용수보살 같은 분을 ‘친구’로 두다니 이 왕은 선근이 무척 깊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왕께서 어느 날 용수보살 앞에서 출가하기를 원했다고 하죠. 국가의 대소사를 다 제쳐놓고 조용한 곳에 가서 정진 수행하고 싶은 마음.... 아, 이런 마음 저는 깊이 공감됩니다. ^^;; 그.러나. 우리의 용수보살님은 대답이 없으셨다고 하죠. 낙행왕에게 돌아가서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라고, 국정을 포기하지 말라고 일렀다고 합니다. 용수보살은 낙행왕이 재가자의 신분으로도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많은 마음 공부의 지침들을 알려줍니다. 그렇지만 해보면 알죠. 수행에 집중하고 싶은데 온갖 일들이 발목 팔목을 붙드는 것 같고 그런 일들에 신경쓰다보면 공부는 언제 하나 싶고... 낙행왕도 그런 마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친우서>를 통해 이번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되었습니다. 인도에는 대성취자가 84분이 계신데, 그 중 단 5분만이 출가자이고 나머지 79분은 모두 재가자라는 사실! 오호~ 출가과 해탈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네요. 이 세상 어떤 곳에서 어떤 관계 속에 살고 있든, 자신의 마음을 조복시킬 수 있다면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가 되는 게 맞나 봅니다. 외적으로 출가냐 재가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인 겁니다.

3. 자신을 보지 못하는 눈이 어찌 남을 보는가?

이번에 토론한 중론 제3품은 감각 주체와 감각 대상이 그 자체로 자성으로 존재하지 않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통상 “내 눈이 무엇을 본다.”라고 언어적으로 표현하고 생각합니다. 보는 것 뿐 아니라 듣는 것, 먹는 것 등 모든 감각 활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의 주체가 대상을 어떻게 감각한다.’ 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객체, 작용이 나뉘어진 상태에서 우리는 쾌와 불쾌를 느끼고 이런 감각적 분별은 소위 ‘나’, ‘나의 것’ ‘나의 소유’ 라는 존재감을 확인시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일찌감치 이렇게 인간이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고 구성하는 모든 것은 결국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 육근(六根)과 그 대상인 육경(六境)이 만나 인식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어떤 것에도 ‘나’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감각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매순간 무상하게 흘러갈 뿐이니 거기에서 감정을, 기억을, 관념을, 나를 붙들고 있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후 일부 아비달마 논사들에 의해 비록 ‘무아’이고 ‘무상’이더라도 근경식(根境識) 자체는 자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논리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대상을 보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나는 인식은 자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죠. 중론의 제3품 “안근(眼根)등에 관한 고찰”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논리를 논파하기 위함입니다. 나가르주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논파합니다.

“보는 감관은 자기 자신을 결코 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보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남들을 보겠는가?” (중론 3-2)

처음에 이 구절을 보면 약간 벙찝니다. 본다고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보지 못하니 다른 것을 본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는 겁니다. 그럼 자신은 빼고 다른 것만 본다고 하면 왜 안되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죠.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으로 일컬어지는 ‘보는 능력(能見)’이 자성을 지닌다면 그 보는 작용은 언제나 보는 자성을 지니고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지 못하고 저것은 보면서 본다는 자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논파를 시작으로 나가르주나는 보는 주체, 보이는 대상, 보는 감관 그리고 감각 접촉으로 일어나는 식(識) 모두가 자성을 지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파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감각적 분별은 연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게 결론이죠. 하여 <우바리문경>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노래도 춤도 소리도 진실로 인식되지 않는다. 쾌락은 꿈과 같고 깨닫지 못한 자의 미망이다. 분별에 빠진 자, 깨닫지 못한 자는 여기에서 파멸에 빠진다. 파멸에 빠진 자는 탄식할 것이다. 왜 나는 번뇌의 노예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었는가?” (찬드라끼르티, <쁘라산나빠다> 257쪽)

4. 채운샘 질의 응답

저희끼리 끙끙대며 이리저리 토론을 해보지만 <중론>의 난해한 논지를 저희 힘으로 넘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죠. 하여 자비로우신 저희 스승님께서는 저희가 2품씩을 공부하고 토론이 끝날 때마다 들어오셔서 학인들의 궁금한 질문에 답변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채세음보살...!!! _()_ ) 저희는 정리한 질문을 함께 취합해서 말씀 드렸는데 역시 스승님의 설명을 들으니 답답했던 지점들의 자물쇠가 스르르 풀리는 듯 하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2품의 “가는 행위와 가는 자와 가는 행위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에서 저희가 공간의 부정을 두고 헤맸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샘께서는 먼저 현대철학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언급해주시며 시공에 대해 저희가 지닌 상식적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셨죠. 가령 우리는 공간을 너무나 당연하게 이미 그렇게 주어져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공간이라는 게 우리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빈 공간을 떠올리며 거기에 무언가가 놓인다고 여기지만, 그 놓이는 무언가를 떠나서 공간 자체라는 게 있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아, 저는 한 번도 이렇게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공간이란 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난감해하고 있는데, 샘께선 또 이렇게 물으셨죠. 허공이 공간이냐고요. 우리가 ‘공간’이라고 의미 부여를 할 때는 이미 그 안에 뭔가 놓여있는 것을 전제한다는 겁니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허공 자체를 상상할 수가 있을까요? 이 지구 상에 우리가 경험하고 사유하는 ‘공간’에 물질과 무관한 곳이 있느냔 말이죠.

‘가는 자’가 간다고 할 때 가는 행위에는 가는 자가 발을 내딛는 바닥과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이 때 가는 자가 가는  공간과 분리되어 질 수 없다는 것이죠. 가는자, 가는 행위, 가는 공간은 각각 개별적으로 자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함께 연기적인 관계 속에서만 나타납니다.

샘께서는 또 다른 질문에 대해 답하시며 업을 쌓는다는 개념을 마일리지 쌓는 식으로 착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을 쌓는 적선(積善)의 의미는 오늘 이 만큼 쌓아두었으니 내일은 좀 쉬고... 이런 게 아니라 간단없이 쉼없이 이어지는 행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식에 관한 질문에도 대답해 주셨는데 이 식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내용이지만, 대략적으로 얘기해서 12연기의 ‘식’은 일반적 관념의 총합과 같은 것이고 12처에서의 ‘식’은 서양의 인식에 가까운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도 앞으로 더 차근차근 공부해봐야 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로써 10주간의 1학기 과정을 마쳤습니다. 학기 초 저희들은 중론을 공부하겠다며 가볍고 해맑은 표정으로 모였다가, 제1품을 읽고 나서 심각한 멘붕 사태를 겪었더랬죠.  아무래도 공부 번짓 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고, 중론이 너무나 어렵다며 다들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희를 달래가며 한 줄 한 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알려주신 스승님 덕분에 10주를 무사히 넘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논서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겠다고 10주 내내 함께 한 도반들에게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이제 2학기가 기대 됩니다~ ^^

513() 2학기 1회 세미나 공지 사항입니다.
  1. 명상: 방학동안 매일 꾸준히 10분씩 방석에 앉아 명상을 연습합니다. 1학기에 함께 연습한 사마타 명상을 복습해보세요

  2. 낭송: 2학기에는 찬드라끼르티의 <입중론>을 낭송합니다. 스프링 제본으로 된 <입중론>을 꼭 챙겨오십시오.

  3. 토론: 중론 제4품 토론합니다. 입발제 분량은 게송 순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1-현화 2-은미 3-설 4-경아 5-윤지 6-은순 7-은주 8-길례 9-헌식

  4. 강의: 채운샘께서 인도의 논리학에 대해 강의해 주십니다. 강의를 듣기 위한 준비로 <인도인의 논리학> 제2장, 35-83쪽 읽어오세요.


남은 방학 잘 보내시고 2학기에 만나요~ ^_^/
전체 6

  • 2021-05-03 17:54
    공간이라는 개념이 그야말로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었군요. 놓여있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허공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요. 이런 !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2학기가 기대됩니다.

  • 2021-05-03 20:17
    지난 수업을 생각해볼수록 진짜구나! 싶습니다. 들리는 귀의 작용 없이 어떤 소리가 독립적으로 있을 수 없는 거죠... 감각주체와 감각대상 모두다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연하여 존재한다는 말씀!
    여기에 더하여 문수보살 채운샘은 시간과 공간도 그 자체로 있는 게 아니며 우리에게 개념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시,공간도 무엇과 연기하지 않은 채로는 없다는 것이지요. 주체와 시간과 공간은 연하여 존재한다?! 지금 놓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에 대하여 사유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한 생각을 만드는 수업후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21-05-03 22:54
    나 자신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본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정말 제 고정관념에 대한 반전이였습니다. 전 왜 이런 질문은 하지 않고 나는 똑바로 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을까요? 앞으로 읽어나갈 중론도 기대되네요^^

  • 2021-05-04 04:46
    새벽 수행 나가면서 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공 잘 치기를 바라면서
    수업 참여 못해서 죄송하구 방학 기간에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2021-05-04 08:45
    나무 아미타불 채세음보살ㅋㅋㅋ 물질과 무관한 공간 자체란 없다~ 생각해본적 없는 문제네요! 제가 지금 이 댓글을 쓰고 있는 규문이라는 공간도 창경궁로 27길 27-1 3층의 ~평방미터로 존재하는 게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1-05-04 14:49
    모두 귀경게를.....ㅎㅎㅎㅎ 늦게 오신 은주쌤까지 ㅋㅋㅋ 쌤들 얼마나 웃겼을까.. 너무 웃겨서 빵터짐 ㅋ^^ 불티모아팀 언제나 화이팅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