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불교&티베트)

<불티모아> 5월 27일 2학기 3주차 수업 후기

작성자
고은미
작성일
2021-05-27 23:57
조회
116
1교시 : 명상

오늘은 결석하신 분들이 많아 5명이 오붓하게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들을 수 있도록 채운샘 강의도 다음주로 미루어서 명상 시간이 여유로웠습니다. 걷기 명상은 비가 와서 하지 못했고, 수면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절방석을 두개씩 이어서 깔고 바닥에 누워서 윤지샘의 말을 따라 명상을 했습니다. 처음에 바디 스캔을 하며 몸 이곳 저곳에 주의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누워서 잠이 들 것 같은 상태를 알아차리는 명상을 진행 했습니다. 누워서도 주변의 소리, 몸의 감각에 계속 주의를 두게 되었습니다. 누워서 명상을 하면서도 생각에 빠지는 건 피할 수 없더라구요. 아쉽게도 잠이 올 것 같은 상태는 관찰하지 못했지만 십분의 수면 명상의 시간이 끝내고 나니 몸이 한결 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교시: 중론 발제 

오늘은 6장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에 대한 고찰 에 대해 토론해 보았습니다. 그 중 저에게 인상적이였던 부분을 적어봅니다.

 

6.1

만일 탐욕에 물든 자가 탐욕 이전에,

탐욕과 별개로 존재한다면

그에 연하여 탐욕은 존재할 것이다.

탐욕에 물든 자가 존재할 때, 탐욕은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건 변하지 않는 자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탐욕에 물든 자가 존재한다면 영원히 탐욕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탐욕이 없는 아라한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깨닫기 전에는 탐욕이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깨닫고 나서 탐욕이 없는 자가 되었다. 이 경우를 보면 탐욕은 연기적으로 어떤 조건 속에서 생겨나고 없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탐욕에 물든 자를 실체화해서 있다고 여기지만 탐욕을 부리는 마음이 일어날 때만 탐욕에 물든 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라한이 또한 탐욕에 물든 자라는 자성을 가진다면 탐욕이 없지만 탐욕을 소유했다는 모순을 품게 된다.

 

6.2

탐욕에 물든 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

어떻게 탐욕이 존재하겠는가?

탐욕이 존재할 때 또는 존재하지 않을 때,

탐욕에 물든 자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증 방식이 적용된다.

 

탐욕에 물든 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 의지처가 없으니 탐욕이 존재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탐욕이 탐욕에 물든 자 이전에, 별도로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앞의 게송에서 논파되었다. 탐욕이 존재하지 않을 때 탐욕에 물든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이에 대론자들은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나가르주나는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논증한다.

 

6.3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의 동시 발생은 타당하지 않다.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는

서로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건 서로 의존하지 않고 발생한 존재들이 개별적으로 상주한다는 의미다. 만약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가 상주하고 있다면 탐욕을 여의고 해탈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깨달은 아라한이 있을 수 없는 거다. 탐욕은 탐욕에 물든 자에 인(因)하여 발생하고, 탐욕에 물든 자는 탐욕에 인하여 발생한다.

 

6.9

개별성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동시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개별성이 성립할 때, 그대는 동시성을 주장하는가?

 

개별적인 서로 다른 상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합된 동시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개별적인 것으로도 동시적인 것으로도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6.10

이와 같은 탐욕은 탐욕에 물든 자와 동시에 존재하든지

또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든지 성립하지 않는다.

탐욕과 마찬가지로 제법은 동시에 존재하든지

또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든지 성립하지 않는다.

 

탐진치라는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음이 있어서 어리석음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탐욕이 있어서 탐욕을 부리게 되는 게 아니다. 이건 모두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욕심쟁이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자들은 그들이 처한 인연조건 안에서 일어나는 거다. 같은 행동도 다른 조건에서는 다르게 분별될 수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술을 마시는 건 타락한 행위로 여겨지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사교적인 사람들이 하는 친근한 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가 탐진치라고 말하는 것들도 다양한 인연 조건들 속에서 일어나 그렇게 분별되는 것일 뿐이다.

 

3교시 : 낭송

오늘은 페이지 89~117를 낭송했습니다.  쉽지 않는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낭송하려니 읽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와 관련된 도서를 찾아서 같이 공부해 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오늘 아니면 후기를 쓸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후기를 올립니다. 다음주에는 더 많은 분들과 중론을 공부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전체 1

  • 2021-06-08 16:27
    다시 읽으니 복습되고 좋으네요 ㅎ
    욕심 많은 사람, 승질 드러운 놈, 어리석은 인간 ... 등등은 실체가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발생하는 것인데 우리는 보통 그렇게 딱지표를 붙이고 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실체가 없다는 말을 이젠 하도 들으니 무슨 문제든 정답은 무아!라고 딱 나오는데 ... 일상생활 속에서, 탐욕에 물든 자가 연기에 의해 발생한다는 진리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가 과제네요. 틀을 씌우고 사람과 사건을 판별하지 말고, 내가 쓰고 있는 색안경은 또 무엇인지 발견하고, 다양한 인연조건을 바로 보려는 노력 ...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아상을 보는 기회로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아요~~ 후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