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절차탁마

절탁 서양 12주차 후기 및 13주차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04-30 12:55
조회
93
 

플라톤의 기원전 4세기 아테네, 루크레티우스의 기원전 1세기 로마를 거쳐, 저희는 이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원전 2세기 ‘벌판’에까지 도착했습니다. 왜 ‘벌판’이냐구요? 저희의 세 번째 텍스트이자 후기 스토아주의의 결정판인 <명상록>이 쓰여진 곳이 전쟁터였기 때문입니다!

대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누구고 명상록은 어떤 책일까요? 1교시에 저희는 우선 기본적인 배경을 짚어보았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입니다. 그는 후대 사람들이 가장 칭찬하는 훌륭하고도 자비롭고 또 현명한 황제로 기억됩니다. 저희가 루크레티우스를 배울 때 잠깐 알아봤듯, 팽창해가기 시작하는 로마는 기원전 1세기부터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 즉 독재자가 다스리는 시대에 들어섭니다. 폭군이면서도 지나치게 훌륭한 독재자 카이사르가 등장하지요. 그리고 훌륭하거나 형편없는 황제들이 짧게 짧게 왔다가는 시기가 기원후 1세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동안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반란은 계속되었고, 그와 함께 제국은 속국들에 대한 통치 기반을 다져갔습니다. 그리고 1세기에 들어서 이 시끄럽던 정쟁이 가라앉고 나자,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가 연이어 다스렸던 유례없는 100년 간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그 유명한 ‘팍스로마나’가 시작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시대,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는 시대,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쳐 지중해를 완전히 한 바퀴 도는 사상 최대의 제국이 등장한 것이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러한 번영을 꽃피운 사람이자 동시에 마무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역사가들은 그의 선대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의 최대 업적을 후계자 선정이라고 말하며, 로마의 모든 황제 중 최고로 뽑히는 마르쿠스의 유일한 오점이자 최악의 실수 역시 후계자 선정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위의 4명의 현제가 선택한 양자 상속 방식에 따르지 않고, ‘로마인에게 내려진 극악의 저주’라고 불리는 폭군인 아들 콤모두스에게 자리를 물려줬기 때문입니다.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양아우 루키우스 베루스와 공동으로)가 물려받은 로마는 건국 이래 가장 평온하고 정돈된 제국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국 내부의 상황도 외부의 전선도 안정되어 있었죠. 그 기간 내내 마르쿠스는 수사학, 철학, 법학, 미술 등 당대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제왕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즉위 직후부터 사방의 전선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재해가 덮쳐왔습니다. 수도 로마를 가로질러 흐르는 테베레 강에서는 대홍수가 났고, 시지쿠스 일대에서는 지진이, 갈라티아 일대에서는 가뭄이 발생했죠. 또 북서쪽의 브리타니아 속주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북쪽에서는 게르만족이 라인강을 건너온 뒤 제국의 국경을 위협했습니다. 동쪽에서는 잠잠하던 파르티아까지 시리아를 침공했죠. 따라서 마르쿠스는 내치를 사실상 전담하다시피하면서 파르티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동생 루키우스를 동방으로 보낸 뒤, 자신은 더 골치 아픈 서방 전선으로 직접 달려가야만 했습니다. 파르티아 전선으로 파견된 원정군은 페스트를 옮겨왔고 그 결과 로마 시와 그 밖의 도시에서는 시체를 나르는 수레가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전쟁과 물난리와 지진과 식량난과 판데믹을 동시에 감당한, 그러면서도 철학을 시도한 어마무시한 황제였습니다. <명상록>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쓰여졌습니다. 궁전에서 한가롭게 명상하면서가 아니라 전쟁터의 막사에서 쓴 책이 이토록 고요하고도 성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희는 1교시에 스토아 철학에 대해 짧게 살펴보았습니다. 헬레니즘 시기의 특징은 폴리스 혹은 공동체에 속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안녕과 수양의 문제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철학의 초점도 변했습니다. 거대해진 제국과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개인 사이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시도로 제시된 것이죠. 제 그 방법은 둘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인간을 더 중시하거나 세계를 덜 중시하는 것. 후자는 우주에 어떤 계획도 섭리도 두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말하며, 정치활동을 의무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원에서 자족하며 생활한 에피쿠로스학파의 길입니다. 전자는 우주의 질서와 섭리를 인정하며, 일어나는 모든 일을 조화 속에서의 사건을 받아들여 현실의 정치적 사회적 의무들을 충실히 따라 사는 스토아학파의 길입니다.

스토아학파에게 행복은 건강, 번영, 죽음, 삶, 질병, 고통, 비판 등의 외부적 조건들에 의존적이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우리 자신을 통제하며 조화로운 우주를 이해하는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추악한 일로 끌어들일 수 없다”(2권 1절) 저희는 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요. 아우렐리우스는 거듭해서 자기 자신에게 말합니다. 내가 나 자신의 고유한 활동과 의무를 잊지 않고 자연에 따르는 원칙들을 갖고 있는 한 “너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3권 12절) 우리는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을 어쩔 수 없습니다. 일어난 일을 되돌리거나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모든 사건은 우주 전체가 인과적 원인으로 참여함으로써 일어난다는 사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내재적이라는 사실. 벌어진 어떤 사건도 선하거나 악한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 이것이 스토아학파의 자연학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통찰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즉 세계의 무죄성 혹은 필연성을 이해하는 것의 윤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통과하는 사건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어난 일에 불행, 행운, 죄, 보상, 벌 등의 인간적인 해석을 덧붙여 염증을 키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토아학파에게 이성적으로 산다는 것은, 이 일이 이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알고 거기에 헛된 정념을 덧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주적 차원에서 일어날 뿐인 일들에 판단들을 덧붙여 불행을 만들고 공포를 느끼는 것은 우리의 약함이자 통찰의 결핍이입니다. 모든 것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품고 감당하는 자연의 차원까지 시야를 넓히는 것. 이것이 이성이고 이 이성에 따르는 것이 행복이자 선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외부적 요인들로부터 독립되어야 합니다. 행복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통제불가능한 외부 사물들로부터 독립적이 되는 것,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내적 자아 속에서 사는 것을 학습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일에도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얻어내는 힘을 개인에게 부여하는 철학. 이런 스토아학파의 훈련은 이 두 가지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우주적 의식으로 고양하며 우주의 전체성에 묻히는” 것으로 만물을 보편적 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인간적인 것을 높은 곳에서 굽어본다고 상상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사물이 매 순간 변화하는 중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훈련”입니다.(피에르 아도,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231쪽)

2교시에 저희는 1권에서의 독특한 문체, 누구누구 ‘덕분에’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폴로니오스 덕분에 나는 (...) 격심한 고통을 당하거나 자식을 여의거나 오랫동안 병을 앓아도 언제나 한결같고, 살아 있는 본보기를 통해 같은 사람이 진지하면서도 상냥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1권 8절)

“신들 덕분에 나는 훌륭한 선조와, 훌륭한 부모, 훌륭한 누이, 훌륭한 스승과 훌륭한 갓로, 친척과 친구 들을 거의 다 얻게 되었다. 신들 덕분에 나는, 기회만 있으면 능히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기질을 타고났는데도 그러지 않았다.”(1권 17절)

이런 문장들을 읽다 보면, 이렇게 자신의 능력과 풍요의 원인을 남들에게 다 돌리고 감사한다는 일이 주는 묵직하고 겸허한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실제로 주석을 보면 그가 소개하는 인물들은 표현된 것처럼 훌륭하지 않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덕분에 자기 자신이 현재 이렇게 있으며 여러 덕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이해하고 그렇게 쓰는 일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해냈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고, 주변의 사람들을 마치 우주가 그러하듯 좋은 사람들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희는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들 덕분에’와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그렇게 말할 때 정념이 일어나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선택과 배제를 의식하며 흥분을 동반하는 감사가 행해지는 기독교 신과 달리 스토아 철학의 신은 인격적이지도 정서적이지도 않습니다. 지극한 평온 속에서 신께 감사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 것 같습니다.

3교시에는 공통과제를 읽으며, <명상록>과 더불어 각자의 문제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연주샘의 과제로부터 불편한 상사와의 관계,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성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무척 진지한 질문이 적혀 있던 이우의 과제로부터, 남에게 끌려다니거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진짜 즐거움은 무엇일지, 혹시 그런 ‘본질적 기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관계와 연결을 무시한 추상적 강박 아닌지 질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훈샘의 과제로부터는, 스토아 철학이 과연 모든 사건에 대한 해석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식으로 요약될 수 있는지, 그것이 낙천론이나 정신승리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해석을 바꾸고 마음을 바꾼다는 일은 의지나 다짐이 아니라 사유와 지성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우리의 고민을 끌어올 때 배움도 빛이 나는 걸까요? 이번 주에는 특히 <명상록>이 우리에게 신선하게 접속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다음 시간 공지입니다.

-<명상록> 8권(139쪽)까지 읽고 꼼꼼히 메모해봅니다.

-함께 낭송하고 싶은 구절 5개를 골라옵니다.

-현재 자신의 고민과 관련된 공통과제를 한 페이지 내외로 적어옵니다.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2

  • 2021-04-30 12:57
    와 ㅋㅋㅋ 대신 쓰신거지만 엄청난 속도로 올리셨네요 ㅋㅋ
    잘 읽고 갑니다 ㅋㅋㅋ;
    연주샘~~~~ 아시죠~~??

  • 2021-05-04 09:08
    니체로 철학 공부를 시작하다보니 '이성'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적대감을 갖고 있었는데(물론 니체가 비이성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요),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이성에 따르는 삶'은 뭐랄까 되게 힘 있어 보이네요. 이성적으로 산다는 게 이성이 옹호하는 기존의 질서나 상식적 도덕에 복종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은 일들에 대한 집착과 염려로부터 거리를 둔 단단한 삶을 창조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이거... 멋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