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절차탁마

절탁 서양 2학기 2주차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1-06-01 21:42
조회
105
 

 

뭔가, 배운다는 것의 다이내믹함이 이런 것인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2학기에 들어가면서, 건화 반장님과 저희는 어떻게 스피노자를 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는데요. 그래서 시도해본 방법은 ‘에티카를 외우자!’였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일단 첫 시간만큼은 아주 재미있었다고 저 스스로는 생각해봅니다.

우선 저희는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이나요. ‘1부 신에 대하여’의 정의 8개, 공리 7개, 정리 8번까지 여섯 쪽에 해당하는 분량을 세 바퀴 돌 수 있었습니다. 한 패러그래프 씩,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읽고, 테이블별로 읽고, 안경팀/노안경팀, 라운드넥팀/칼라넥팀 나누어서도 읽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외웠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읽으며 입에 붙인 범위를 여섯 명이 파트를 나누어서 단 30분의 시간 동안 ‘열 나게’ 외웠습니다. 연구실 구석구석 또는 옥상으로 퍼져서 쪼그리고 앉아서, 서서, 쓰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외웠습니다. 심사위원은 현정샘이었습니다. 한 명씩 자기가 맡은 범위를 더듬더듬 읊었죠. 심사평은 매우 흡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난해하기로 소문난 책을 이렇게 높은 텐션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눈과 입과 목소리와 손과 발을 사용해가며 몸에 붙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바해보자면 피가 도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프레시한 기분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1부 부록을 읽고 써온 공통과제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1부 부록은 신과 목적론적 편견들에 대한 설명이었고, 저희는 내용을 요약하고 질문을 만들어보는 공통과제를 준비해왔습니다. 우선 연주샘의 질문, 대체 원인을 파악한다는 것과 목적을 설정하는 것의 차이는 뭘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게도 종종 헷갈리긴 합니다. 일어난 사건이나 보이는 사물에 대해 그것이 존재한 원인을 따지는 것은 그것을 있게 하는 배후를 묻는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입니다. 그 어떤 것도 갑자기 뿅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원칙이기도 했으며, 스피노자 역시 1부 공리3에서 ‘아무런 규정된 원인도 없다면 결과가 따라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우리의 정서든 어떤 것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인들을 탐구한다는 일은 그것이 그것이게 한 조건들을 이해해가는 것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의 현상에는 언제나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넘어서는 복수적인 요소들이 언제나 함께 작동하고 있음에 대한 이해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지금 특수한 신체적, 공간적, 시대적 조건 속에서 사물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인식하에 이뤄지는 탐구라고 할 수 있죠. 1부 부록에서 전제되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실재에 대한 원인을 모르고 태어난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거죠. 그러니까 원인에 대한 탐구는 절대 완전하지도 완전함을 향해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 혹은 몇 개의 원인만을 꼭 집어 이것이 그 사물을 있게 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아마 ‘적합한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스피노자가 목적론적 사고라고 말할 때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원인들을 우리가 대충 그럴 법하고 그랬으면 하는 요소들로 덧칠하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이죠. 타기 위한 말, 물고기를 제공하기 위한 호수, 심지어는 인간을 위한 지구 등이죠. 여기는 단단히 꼬인 몰이해와 심보가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자연이 그 반대의 증거들을 제시해도 좀처럼 깨지지가 않죠.

훈샘의 질문은 저와도 공통된 의문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파악한다 해도 결국 그 인식은 자기에 의한 것 아닌가? 아무리 적합해도 인식자 자신의 신체와 의견에 국한되는 것 아닌가? 첫 번째로 저희는 이것에 대해 이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자신을 하나의 독립체로 본다면 당연히 인식은 한계 지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라는 것이 고유한 속도와 리듬을 갖기는 해도, 똑 떼놓을 수 없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계속 변하는 존재라면 어떨까요? 그래서 틀 짓고 경계 지을 수 없는 그 변화와 접속에 있어서 무한한 존재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을 듯 합니다. 현정샘께서는 우리에게는 모두 양태의 유한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조금씩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뭔가 풀릴 듯 말 듯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우리 인식의 불완전성을 말할 때 혹시 완벽한 인식, 마치 신처럼 위에서 조망하는 방식의 인식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종적인 인식을 전제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게 있나 의문이 듭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 최종적인 인식의 가능/불가능을 따지는 것은 마치 인식 후의 보상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는 논의였습니다. 쭉 굽어보는 시선을 약속받는 것으로서의 최종 인식. 사실 이것의 존재 여부 혹은 달성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죠. 우리에게 윤리적인 문제는 지금 우리가 우리의 편협하고 비좁은 인식에서 벗어나고 결국 우리에게 배반과 슬픔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는 목적론적 사고에서 한발 한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매번 달라지고 빠져나오는 일이 유일한 과제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저는 현정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 여기에 적어보려 합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스피노자는 어떻게 인간이 자유로움과 행복함에 이르게 될 수 있는지 목놓아 말하고 있다.” 이 뻑뻑하고 난해한 책 전부가 그 기획 아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뭉클하기도 합니다. 2학기에 참여하면서 스피노자를 배울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열심히 열심히 재밌는 수업을 마치고 저희는 삼청동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왜 삼청동으로 가게 되었는가의 원인을 탐구해보면 흥미롭겠네요. 세상일이 절대 목적론적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사례인 듯합니다. 날씨가 아주 맑고 선명해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나들이였습니다.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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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3 23:58
    에티카를 그리도 재기발랄하게~ 진지하게~ 열정적인 텐션으로 외우는 청년들의 모습은 넘 아름답더군요.ㅎㅎ 인간이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목놓아^^ 외치는 스피노자의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