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시즌2/ 4주차 후기 및 5주차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6-28 12:24
조회
61
“관습적 법률들은 약한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은 법률들을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만든다. 그들보다 더 강한 자가 그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몫을 얻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많이 얻는 것을 비난하며, 그들 자신이 열등하므로 모두가 똑같이 동등한 몫을 나누어 갖기로 결정하는 데 만족해한다. 따라서 이 노모스 또는 규범에 따르면, 다수에 의해 소유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은 부정의하고 수치스럽다고 불린다. 그러나 자연에 따르면 더 나은 자가 더 못한 자보다, 그리고 더 능력 있는 자가 덜 능력 있는 자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것은 옳다.”(193쪽)

지난시간에는 《소피스트 운동》을 끝까지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책 후반부에서는 소피스트들의 정치사회학을 다루고 있는데요, 저는 특히 노모스 퓌시스 논쟁이 흥미로웠습니다. 위의 구절은 플라톤 대화편 《고르기아스》 중 칼리클레스에 의해 개진된 견해입니다. 마치 니체가 기독교적 선/악 개념이 약자의 원한으로 인한 가치 전도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칼리클레스는 관습적 법률은 약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합니다. 즉 관습법은 그 자체로 지고한 가치 같은 것을 지닌다기보다는, 다수인 약자들의 자기보존의 논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언뜻 위험한 주장처럼 들립니다. ‘자연에 따르면 더 나은 자가 더 못한 자보다, 그리고 더 능력 있는 자가 덜 능력 있는 자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것은 옳다’라는 마지막의 주장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마치 불평등을 ‘자연’이나 ‘경쟁’ 같은 말로 정당화하는 극우 논리처럼 들리니까요.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성희샘께서 소피스트들에게 퓌시스란 당위라기보다는 관습을 새롭게 생산할 수 있는 원리 같은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 말에 동의가 되었는데요, 조지 커퍼드에 따르면 “무엇이 옳은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단순히 ‘해야 한다(ought)’를 ‘이다(is)’로 환원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194쪽) 않습니다. 자연 안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은 큰 물고기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로부터 인간 사회에도 약육강식의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삶과 관계에 속한 모든 복잡성들을 소거해버리는 일일 것입니다. 소피스트들이 퓌시스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더 이상 기존의 관습적 규범과 법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현실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이는 플라톤 역시 마찬가지였죠.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 도덕규범의 유산이 요구하는 바가 상당한 사회적 변화의 시기에 과도하게 구속적이고 부적절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국가》에서 제시된 것은 이를 뒤흔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을 표현한 것”(201쪽)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소피스트들에게 퓌시스란 도덕의 부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도덕이나 반도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도덕입니다. 소피스트들은 “전통 도덕의 통상적 정의와 대비하여 자연의 도덕이라는 새로운 도덕”(203쪽)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스피노자가 떠올랐습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권리는 곧 역량이고, 인간은 문명사회 안에서도 자연권을 유지합니다. 역량 즉 권리. 사자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를 잡아먹을 권리를 지니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사자를 죽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만큼, 우리가 행하는 만큼이 우리의 권리를 실현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윤리의 제거를 뜻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스피노자는 새로운 윤리를 이끌어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지고한 가치나 규범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복잡한 관계 안에서 우리 자신의 역량을 증대시키고, 또 개체의 역량과 비례관계에 있는 공동체의 역량을 증대시킬까 하는 것입니다. 소피스트들도 이처럼 법률이나 관습의 내적인 논리를 벗어나서 정치와 윤리의 문제를 고민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퓌시스는 바로 그러한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었을 테고요.

다음 시간에는 《소크라테스의 회상록》 중 ‘소크라테스의 회상록’을 2권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성희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전체 1

  • 2021-06-30 14:10
    소피스트들은 이전의 철학자들보다 정치를 통한 사회적 역량에 좀 더 집중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철학상 개인의 본성을 논하는 로고스보다 역동적인 힘의 발휘가 가능하지 않았나하는 개인적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