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 5주차 후기

작성자
상선약수
작성일
2021-07-04 13:46
조회
69
<소크라테스의 회상록> 1,2권 - 크세노폰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로 세계의 기원이나 본질의 문제에서 질문을 전환한 인물이다.
인간사에 관해 담론하며 경건과 불경,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 절제와 광기, 용기와 비겁,
국가와 정치, 정부와 통치자란 무엇인가 등에 질문을 던진다.

천체현상을 탐구하는 것은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다 해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으므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것은 자기자신이 배운 것을 이용해 언젠가는 자신이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몸을 소홀히 한적이 없거니와 몸을 돌보지 않는 자를 칭찬하지도 않았다.
신체도, 행복도, 미덕도, 우정도 모두 주체의 자제력에 달려있다.
이 자제력이란  본능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절함을 아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적절함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풍요나 타인의 지배 등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주는 것과 같다.
스스로의 실존을 단련하고 조형하는 것, 적은 것으로 더 큰 만족을 생산해 내기 위한 기술이다.

자제력은 자기 욕구가 원하는 최소한만 가지고 자신을 길들이는 것이다.
자기욕망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능동적이 되는 것,
자기욕망 때문에 예속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자기를 지배하므로써 타자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을 생각했다.

자제력은 훈련의 산물로 보고 있다. 자기행위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도덕을 규약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각 신체에 놓이는 조건이 다르므로 규약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스는 윤리적 도덕이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윤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대그리스에서 자아란 공동체안의 나로서 '훈련의 산물'로 보았다.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고대그리스 사람들이 성적인 활동이 도덕적 문제로 대두될 때
그들은 쾌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 측면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쾌락을 활용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할 요소로는 '욕구, 시기적절함, 개인자신의 위상'이며
그들은 쾌락을 무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쾌락을 유지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욕구(식욕,성욕,졸음, 추위, 더위 등)를 지배원칙으로 삼아 자신의 쾌락에 대해 능동적 상태를 유지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자제력이 중요한 이유는 자유의 문제이다.
자제력을 훈련함으로써 금욕을 통해 태초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함이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 계속 자유로운 상태에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유와 대립되는 개념이 자기의 노예상태이며, 자유란 비노예상태 이상의 것이고 외적, 내적인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이상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쾌락를 활용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배고플 때 먹어야 맛있는 것처럼...

자기자신에 대한 개인의 태도, 자기욕망에 대한 자유를 확고히 하는 방식, 개인이 자신에 대해 행하는 절대 권위의 형태 등
자기 삶의 양식을 자신이 결정하고 실천하는 문제이다.
절제의 미덕이란 타인에 대한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에도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쾌락과의 능동적인 관계맺기이다.  그들에게 윤리적인 차원에서 부정적인 태도는 쾌락에 대한 수동적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크세노폰에게 미소년과의 입맞춤의 위험을 이렇게 애기한다.
"자네는 당장 자유를 잃고 노예가 되어 유해한 쾌락을 쫒기 위해 큰돈을 쓰고,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 될 만한 일에 전념할 여가를 갖지 못할 것이며,
미치광이 조차 관심을 갖지 않을 일에 있는 힘을 다해 쏟지 않을까?
독거미에 물렸을 때와 비유하며
"~ 접촉하지 않고 보기만해도 아무리 먼곳에서라도 사람을 미치게 하는 그 무엇을 주입한다네."
(사랑의 광풍에 휩싸여 사랑의 노예가 되었을 때인듯)

그는 이처럼 성욕은 주체로서의 능동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았다.
"모든 사람이 자제력을 미덕의 주춧돌로 여기고 먼저 이 주춧돌이 혼안에
튼튼하게 자리잡게 해야하지 않을까?"  라고 제안한다.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는 자제력있는 사람임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미덕에 대해서도, 우정에 대해서도 우리가 무얼 행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접근했다.
요령이나 조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삶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중요한 문제였다.

제대로 이해하고 쓰는 글이 아니라 쓰면서도 답답합니다.
맘껏 수정해주세요.  그리고 다음주에 만나요~
전체 1

  • 2021-07-06 11:17
    '자제력은 훈련의 산물로 보고 있다. 자기행위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저는 자제력이란 참된 욕망을 알아 삶의 법칙을 구성해가는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 이것도 제 느낌이니까 맘껏 수정함이 가능합니다. 근데 상선약수는 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