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뉴비기너스시즌2 - 7차시 후기

작성자
소정
작성일
2021-07-15 14:36
조회
67
철학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뉴비기너스시즌2 7차시 후기 7월 15일 소정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나를 고발한 사람들로 인해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로 시작되어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로 끝난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두에게로 맞닿는 철학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텍스트를 가지고 이번 세미나는 지혜와 죽음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지혜란 무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라고 하는 질문은 텍스트의 ‘여러분, 신이야말로 진짜 지혜로우며 이 신탁을 통해서 인간적인 지혜는 거의 혹은 아예 가치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신은 소크라테스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 마치 “인간들이여, 그대들 가운데 누구든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와 관련해서 참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라고 하는 부분으로 토론이 이어지게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지가 어떤 지점에 있다는 것, 또는 다른 것을 알기 위한 시작점 같은 것, 잠재력, 유연성, 질문할 수 있는 소양 등의 이해로 다가왔다. 이에 대해서 ’지혜를 사랑한다.‘라는 것은 완성형이 아니고 계속 추구하는 삶의 여정이라는 실존적 위치에 있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되었고, 그러면서, 지혜는 무지한 채로 머물러 있는 것, 즉 생이 고정된 앎을 가지고 끝남을 경멸한다는 부분에까지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말하여졌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권위에 대한 도전을 내포하고 있어서 정치적 권위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기에 소크라테스가 그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권위에 대한 도전은  철학이 자기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실마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철학한다는 것은  한 방향으로 가는데 힘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금욕적 실천으로 자기존재를 배려‘하고 ’다른 존재되기‘에 질문하는 것은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나쁜 것이라는 것은 소문일 뿐 진정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우리가 걸려 넘어지는 지점이 모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건화 쌤은 지적하였다.  이렇게 걸려 넘어져서 그 상태를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변형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나아감이 철학함은 아닐까?  텍스트에서는  ‘내가, 날마다 덕에 관해서 그리고 다른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훨씬 더 못 미더워할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실상은 내가 주장하는 대로예요.’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닐 겁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은 사악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건 죽음보다 더 빨리 달려오니까요.’라고 말하여 아테네 사회가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를 없애버리려고 결정한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 행위임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철학한다는 것이 사회와 그 사회의 코드와 질서에 그대로 적응하여 그대로 살아감이 아니라 그것들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하여 존재를 변형하는 길 위에 놓는다는 것을 이야기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가 철학함에 있어서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대화법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다면 철학함의 지평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생각해봄도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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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7 16:26
    뭔가 뒤죽박죽인듯 토론 내용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후기네요 ㅎㅎㅎ 샘이 꽂히신 구절, '덕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 말이 '최상의 좋음'이란 완성태로서의 덕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놓인 조건 속에서 덕을 구현하며 삶 속에서 덕을 구체적 사례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