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2주차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3-18 23:16
조회
79
첫 시간에 어찌 보면 《장자(莊子)》에서 가장 난해한 〈소요유(逍遙遊)〉편과 〈제물론(齊物論)〉편을 읽어버렸네요. 〈소요유〉는 거대한 물고기 ‘곤’이 ‘붕’이 되어 저 멀리 날아가는 에피소드부터 고대 중국의 성군인 요임금의 스카웃 제의를 걷어차는 허유, 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도 조금의 피해를 입지도 않는 신인(神人), 당대의 변론술의 대가인 혜자를 비판하는 장자 등등 엄청난 스케일의 에피소드들이 즐비합니다. 반면에 〈제물론〉은 〈소요유〉와 달리 매우 논리적인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옳음과 그름(是非), 이것과 저것(此彼) 등등 상식을 깨는 논리들이 즐비하죠. 하지만 〈소요유〉와 〈제물론〉 둘 다 아무리 읽어도 장자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딱히 정리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다른 색깔의 편이지만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기묘한 현상.^^;; 그래도 토론하다 보니 조금씩 각 편을 다시 읽을 만한 실마리들을 잡게 된 것 같아요.

〈소요유(逍遙遊)〉라는 편명이 보여주듯, 장자의 핵심 사상 중 하나가 유(遊)라는 글자에 압축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소요유〉편을 읽다 보면, ‘자유’에 대한 다른 이미지로서 ‘유’가 다가옵니다. 크게 두 가지로 ‘유’를 읽으려 했는데요. 하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계,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세계로 장자가 ‘유’를 그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9만 리를 올라가 남쪽으로 6개월 동안 날아가는 것이 붕의 본성이듯이, 날아오르다 내동댕이쳐지는 것도 쓰르라미와 작은 비둘기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를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배제된 상태로서의 ‘유’가 아니라 변화됨으로써 지금 있는 조건 속에서 ‘유’를 실천한다는 얘기였는데요. 어느 쪽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로만 정리됐습니다.

〈제물론〉은 오상아(吾喪我)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눴습니다. 대략 ‘나(吾)는 ‘나’라는 편벽된 의식(我)을 장례 지냈다(吾喪我)’는 뜻입니다. 여기서 도가의 독특한 사유방식이 돋보였는데요. 〈제물론〉은 어떻게 보면 규정적 사고가 무화되는 에피소드의 연속입니다. 장자는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사유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혹은 비워내는 것)임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도를 실천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爲道日損)”라고 한 구절과 연결되기도 하고요. 상(喪)·망(忘) 같은 글자들을 통해서 사유의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밀고 나가면, ‘상’이나 ‘망’을 변형이란 뜻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시간 30분 동안 엄~청 헤맨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장자》 연구를 하기 위해 모인 건 아니잖아요? 저희의 문제의식을 벼리는 도구로 《장자》를 읽을 거니까, 이런 헤맴은 즐겁게 맞이해도 될 것 같습니다!ㅎㅎ 일단은 장자의 사유가 이런 것이구나 정도로 각자 접수하자구요! 나중에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진단하는 현대의 텍스트들 속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점점 더 기대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3편을 읽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재밌게 읽은 구절 혹은 나누고 싶은 이야깃거리를 메모해주세요! 그럼 다음 시간에 봬요~
전체 2

  • 2021-03-20 11:09
    문득 ‘상’이나 ‘망’을 해체라는 라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변형과 해체는 어떤 지점에서 헤어지고 만나는 걸까요? 생각이 자유롭게? 혼돈스럽게? 이리저리 헤메고 있습니다.~~

  • 2021-03-23 09:04
    https://us02web.zoom.us/j/82011479051
    오늘 줌 참여링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