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5주차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4-06 16:39
조회
62
이번 주에는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 아리엘 키루의 대담집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를 읽었습니다. 후... 이제야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됐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스티글레르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 번 시몽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대의 ‘기술철학’이란 것을 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말하면서도, 핵심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또 작고하시기 전까지 본인의 실험을 계속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멋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만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것도 대담집이지만, 더 읽고 싶은 욕구가 솟아나는 사유였습니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혼자서 책을 읽을 때보다 함께 토론하면서 텍스트를 좀 더 현실적으로 소화하게 됩니다. 그동안에는 ‘이게 세미나의 힘이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스티글레르가 얘기한 집단지성을 키우는 것을 경험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

다음 주에는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 3장(131쪽)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이번처럼 메모는 전날 밤 월요일 저녁 10시까지 숙제방에 올려주시고요. 당장은 장자와 접속이 잘 안됐지만, 아마 다른 텍스트들을 읽고 관점이 정리되다 보면 연결지점이 보일 것 같습니다. 꾸준히 장자의 사유를 복기해주세요.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일과 ‘-

저희에게 일, 노동, 고용은 모두 동일한 의미이지만, 스티글레르는 일과 고용을 구분합니다. 일은 ‘–앎’(살 줄-앎, 더불어-있을 줄-앎 등)을 실행하는 반면, 고용은 돈만을 목표로 합니다. 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고용되었던 영역을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번에 고용이 사라질 것은 아니고, 아마 고용의 영역이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예외적일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입니다. 이는 근거 없는 예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흐름입니다. 이미 많은 음식점에서 무인판매기가 쓰이고 있죠. 그리고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기계가 서빙하는 곳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분류하는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기계를 발명하고 있다는 뉴스도 봤습니다. 심지어 예술 같이 인간만의 고유한 활동이라 생각했던 영역까지 기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특정 화가의 붓터치를 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설까지 쓰고 있습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과거 특정 가수의 목소리까지 재현해서 지금의 노래를 부르는 영상까지 봤는데요. 가령, 김광석이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부른다거나, 옥주현과 듀엣하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이런 흐름들은 모두 기존에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생각했던 모든 활동이 디지털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스티글레르가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앎이라 할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전면화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현실은 달랐습니다. 기계가 인간이 고용되었던 영역을 모두 대체한다고 해도, 이와 동시에 인간의 일자리도 생겨납니다.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현상은 디지털에 의해 가속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티글레르가 문제 삼는 지점은 두 가지 자동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궁핍화를 조장하는 자동화와 비궁핍화에 도움이 되는 자동화. 스티글레르가 말하는 궁핍화란 ‘-앎’의 파괴입니다. 가령, 페이스북의 어떤 홍보 페이지에 ‘좋아요like’ 버튼을 대량으로 클릭하는 것은 궁핍화를 조장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처럼 더욱 많은 사람들과 접속하며 서로의 앎을 키워나가는 자동화도 있습니다. 물론 위키피디아 같은 프리웨어에 참여한다고 해서 스티글레르처럼 경험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발전하는 기술이 문제라고 단정 짓지 않을 수 있는 시선이 새로웠습니다. 이 부분은 체크해뒀다가 나중에 장자의 문명을 다룰 때 함께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스티글레르는 일과 고용을 나눴지만, 실제로 생활에서는 일과 고용이 어느 정도씩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돈만 바라보고 자발적으로 고용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름의 의미를 갖고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민은 더 많은 돈으로 고용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견지하려는 의미가 고용으로 환원되는 사람만이 하겠죠. 저는 호진쌤의 얘기가 절실하게 들렸는데요. 사람들의 운을 보고, 상담하시는 호진쌤께서는 ‘사업’과 ‘공부’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가게에 오는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공부가 이뤄지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시공간은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가 아직 없더라고요. 다만 스티글레르가 말한 ‘고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일의 발명’, 이른바 ‘비정규직 예술가’적 정신 같은 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잡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세돌의 한 수가 알파고가 수집한 모든 대국의 정보를 뛰어넘었으니까요. 스티글레르가 지적한 ‘-앎’을 재정의하는 문제, 고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지성을 발휘하는 문제가 남았네요.

 

무관심의 경제와 기여 경제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상이한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토론하다 보니, 이미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아니 많은 부분 ‘무관심의 경제’ 쪽으로 이행한 것 같습니다. ‘무관심의 경제’는 더 이상 개인이 집단에 대한 의식을 갖지 않는 것, 가령, 더불어-있을 줄-앎 같은 것이 결여된 경제입니다. 그런데 이는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측면까지 연관됩니다. 사회적 이슈·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표명하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그 증거입니다. 이는 도덕적 옳고 그름을 떠나서 조건 자체가 그렇게 형성돼있습니다. 기성세대와 달리 지금의 청년세대는 자신을 집단과 동일시하는 경험이 거의 전무하거든요. 그리고 점점 더 우리는 ‘개인’으로서 자라게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물리적으로 집단을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곳들이 사라졌습니다. 당장 초등학교만 해도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등하교를 하고 있습니다. 군대는 사정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반면에 기여 경제는 일종의 ‘나눔의 사회’입니다. 나눈다는 것은 앎을 발생시키는 것, 집단지성을 키우는 것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스티글레르는 고용이 사라져 가는 지금 시대에서 기여 경제를 시도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기여 경제를 고민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가 함께 세미나를 하는 것도 일종의 기여 경제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세미나를 하다 보면, 연령이나 성별은 물론 경제적 수준과 사회적 이념 같은 것 등을 경유하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는 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게 스티글레르가 말한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의 일종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공부하는 모임들이 주류적일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스티글레르의 전망에 따라서 고용이 없어진 이후에 인간이 시도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이 ‘-앎’을 발명하고, 집단지성의 힘을 키우는 곳은 어디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 공동체가 기초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텍스트가 공부의 전부는 아니지만, 텍스트를 통해 공부하는 신체를 만드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기여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공부를 시대적 조건에 맞에 접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전면화된 시대에서 온·오프라인의 구분은 유의미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공부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바뀐 조건 속에서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사항입니다. 사실 저는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는 것이 ‘더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는 낡은 관념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합니다. 오프라인에서 공부하는 방식이 있듯이, 온라인에서도 공부하는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스티글래르가 괜히 위키피디아에 참여하고, 디지털 네트워크 세미나 학교를 운영했을까요. 그저 매일 연구실에 나와서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것만으로는 공부를 충분히 나누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당장 원고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긴 하지만...ㅎ... 앞으로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게 필요함을 실감했습니다.
전체 1

  • 2021-04-06 17:30
    규창샘 글을 보며 늘 공부의 힘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빠른시간에 이렇게 잘 정리를 해서 올리시다니...일과 고용이라는 스티글레르의 언어로.. 그럼 나는 어디에 고용되어있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고용하고 있지만 그건 단순의미에서의 고용이고 나역시도 고용되어 있으며 일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된 시간이었습니다. 후기 쓸줄알고 내심 걱정했는데 ㅋㅋ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여 글쓰는 훈련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