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 세미나

[청문회] 6주차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4-16 14:23
조회
56
공지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그림자 노동》을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이반 일리치의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인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분석하더군요. 국민국가의 탄생을 프랑스 혁명 같은 때가 아니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즈음, 네브리하가 이사벨 여왕에게 언어의 통합을 얘기하던 것에서 찾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국어라는 것도 신기하더라고요. 단순히 귀소본능 같은 데서 유래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사적으로 통합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사건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군요. 일리치의 작업이 푸코의 작업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지만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좀 헤매면서 토론했지만,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정리된 채로 얘기를 나눠보죠. 그럼 다음 시간에 봬요~

 

간단하게 토론하고 난 소감을 정리해볼게요.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에서 스티글레르가 문제 삼은 것과 《그림자 노동》에서 문제 삼은 것이 여러 지점에서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림자 노동》은 1980년에 쓰였지만, 그가 그린 그림자 경제에 침식된 사회의 모습과 스티글레르가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가 독으로 작용한 사회의 모습이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림자 경제는 발전과 성장에 중독된 사회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 과정에서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노동과 그러한 노동을 지탱하기 위한 그림자 노동이 구분됩니다. “발전이 더 되면 그림자 노동이 사라질 것”(26)이라고 모두가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무급노동이었던 그림자 노동을 유급노동으로 전환할 것인가 정도에 그치고 맙니다. 기존의 무급노동이 유급노동으로 전환돼도 어디선가 또 다른 그림자 노동을 발생시킬 것이고, ‘인간은 노동해야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관념은 의심되지 않습니다. 일리치는 여기에서 ‘성장 중독자’로서의 인간에 주목하더군요. “인간을 성장 중독자로 보는 관점에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 실업(급여와 관계없이 일할 명실상부한 자유)을 안타까운 현실이자 불행한 저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유용한 기회이자 권리로 볼 것인지도 결정되는 것이다.”(27) 발전과 성장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을 때, 고용되지 않으면 불안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장자적 사유가 매우 급진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업을 다른 삶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는 것은 기존의 사회적 쓸모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앎을 발명하는 일입니다. 일리치가 얘기한 토박이 경제의 회복도 장자의 ‘무용지용’과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토박이 경제는 사람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회인데, 이는 스스로의 활동을 통해 자긍심을 느끼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기존의 일을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차원이 아니라 일과 우리 자신의 실존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토박이 경제의 회복을 생각해야겠죠. 그리고 이러한 일리치의 지적은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청년세대에게는 더욱 그럴 것 같고요. 더 이상 ‘일’은 보람이나 의미 같은 것을 주지 못합니다. ‘워라밸’이란 단어가 그렇죠. 일(Work)은 삶(Life)과 분리됐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어떤 식으로 살아갈 것인지가 뚜렷한 것 같지는 않아요. 어쨌든 장자의 ‘무용지용’, 일리치의 토박이 경제는 지금 직면한 시대적 조건에서 사유하지 않을 수 없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앞으로 상위 1%가 되는 것이 개인이든 사회적으로든 탈출구일 수 없겠다는 생각에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타인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거세시킨다는 점에서, 스스로 착취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빈민층이 중산층, 상류층의 삶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그리고 중산층, 상류층이 각자의 삶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없습니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