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 맹자서설, 양혜왕 상 1장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9-02-28 13:25
조회
144
《맹자》를 드디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논어》와 달리 말이 길~어요. 각자 준비하셔서 알겠지만, 《시경》, 《서경》이 인용되고, 논리 한가득 준비해서 왕을 설득합니다. 어디까지가 맹자의 말인지 구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하실 겁니다. 그런데 《맹자》는 맹자 자신이 제자들과 정리한 책이다보니 길긴 해도 확실히 깔끔한 느낌입니다. 우선, 《맹자》의 이야기 전개는 우선 ⓵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⓶주장을 논증하고, ⓷처음의 주장을 반복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걸 유의하면 그래도 단락 나누는 데 좀 더 편리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맹자평전》을 읽으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산에서 소리 지르는 기상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기르는 덕(德) 같은 것이란 얘기가 있었죠. 전국시대에서 이(利)가 아니라 인의(仁義)라는 가치를 외쳤다고 해서 단지 현실성 없는 사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들이 어떤 가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명확하게 구분해야겠습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선(善)하다는 데서 시작하여 양기(養氣), 사단(四端) 등의 개념으로 나아갑니다. 《논어》를 읽을 때, 개념을 대충 퉁쳤는데,  이번에《맹자》를 읽을 때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면서 읽어야겠습니다.

 

〈孟子集註序說〉

史記列傳曰 孟軻 騶人也 受業子思之門人 道旣通 遊事齊宣王 宣王不能用 適梁 梁惠王不果所言 則見以爲迂遠而闊於事情 當是之時 秦用商鞅 楚魏用吳起 齊用孫子田忌 天下方務於合從連衡 以攻伐爲賢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 是以所如者不合 退而與萬章之徒序詩書 述仲尼之意 作孟子七篇

 

사기열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맹가(孟軻)는 추나라 사람이다. 자사(子思)의 문인에게 수업했다. 도(道)가 이미 통했기 때문에, 가서 제나라 선왕을 섬겼으나, 선왕이 등용하지 않았다. [그 다음] 양나라에 갔으나, 양나라 혜왕이 말한 바를 결단하지 않았으니, 현실성이 없고 일의 실정으로부터 먼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진나라는 상앙을 등용했고,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를 발탁했고, 제나라는 손자와 전기를 중용했으니,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과 연횡에 힘 써서 공격하고 정벌하는 것을 현명함으로 삼았다. 그러나 맹가는 이에 당(唐), 우(虞), 삼대의 덕을 기술하였으니, 이 때문에 가는 곳에 합치하지 못했다. 물러나서 만장의 무리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서술했고, 중니의 뜻을 기술하여 《맹자(孟子)》 7편을 지었다.”

 

韓子曰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不得其傳焉 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

한유가 말했다. “요 임금은 도(道)를 순 임금에게 전하였고, 순 임금은 ‘도’를 우 임금에게 전하였고, 우 임금은 ‘도’를 탕 임금에게 전하였고, 탕 임금은 ‘도’를 문왕과 무왕, 주공에게 전하였고, 문왕과, 무왕, 주공은 공자에게 전하였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하였다. 그런데 맹가가 죽어서 전해질 수 없었다. 순자와 양웅은 거기서 선택했으나 정밀하지 못했고, 말을 했으나 상세하지 못했다.”

 

시(是)는 도(道)를 뜻한다.

 

又曰 孟氏醇乎醇者也 筍與揚大醇而小疵

또 말했다. “맹씨는 순수한 사람 중에 순수한 사람이다. 순자와 양웅은 크게 순수하지만 약간의 허물이 있다.”

 

又曰 孔子之道大而能博 門弟子不能徧觀而盡識也 故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 其後離散 分處諸侯之國 又各以其所能授弟子 源遠而末益分 惟孟軻師子思 而子思之學 出於曾子 自孔子沒 獨孟軻氏之傳得其宗 故求觀聖人之道者 必自孟子始

또 말했다. “공자의 도(道)는 거대하여 넓힐 수 있지만, 문하의 제자들은 치우치게 보아서 앎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배우는 것이 모두 천성의 가까운 바를 깨우쳤고, 그 뒤는 흩어져서 제후들의 나라에 나뉘었다. 또 각기 뛰어난 것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니, 근원은 멀어지고 말단은 더욱 나뉘어졌다. 오직 맹가가 자사를 스승으로 삼았으니, 자사의 학문은 증자로부터 나왔다. 공자가 죽은 이래로, 오직 맹가씨의 전함만이 그 핵심을 얻었고, 그러므로 구하여 성인의 도(道)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맹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又曰 揚子雲曰 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 廓如也 夫楊墨行 正道廢 孟子雖賢聖 不得位 空言無施 雖切何補 然賴其言 而今之學者 尙知宗孔氏 崇仁義 貴王賤覇而已 其大經大法 皆亡滅而不救 壞爛而不收 所謂存十一於千百 安在其能廓如也 然向無孟氏 則皆服左衽而言侏離矣 故愈嘗推尊孟氏 以爲功不在禹下者 爲此也

또 말했다. “양자운은 말했다. “옛날에 양주와 묵적이 길을 막았으니, 맹자가 말하여 그들을 쫓아내서 [길을] 넓혔다.” 무릇 양주와 묵적[의 도가] 행해지면 정도(正道)는 폐해진다. 맹자가 비록 성현이시나 지위를 얻지 못했으니, 공연히 말은 했으나 베풀어지지 않았다. 비록 절실하나 어떤 보탬이겠는가? 그러나 그 말에 힘입어 지금 배우는 사람들은 그래도 공씨를 높이고, 인의(仁義)를 숭상하여, 왕도정치는 귀하고 패도정치는 천박한 것을 알 뿐이다. 그 위대한 강령과 위대한 법도는 모두 망멸하여 찾을 수 없게 되었으니, 문드러져서 거둘 수 없어서 이른바 1100 중에 11만 남은 것이다. 어찌 길을 넓힐 수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이전에 맹씨가 없다면 모든 이가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고, 오랑캐의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유는 일찍이 맹씨를 추존하여. 공이 우 임금 아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십일어천백(十一於千百)은 1100의 11이니까, 100분의 1을 뜻한다.

좌임(左衽)은 오랑캐의 옷 입는 법이고, 주리(侏離)는 오랑캐의 언어다.

 

或問於程子曰 孟子還可謂聖人否 程子曰 未敢便道他是聖人 然學已到至處

누군가 정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도리어 성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정자가 말했다. “감히 그가 성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배움이 이미 지극한 곳에 이르렀다.”

 

程子又曰 孟子有功於聖門 不可勝言 仲尼只設一箇仁字 孟子開口便設仁義 仲尼只設一箇志 孟子便設許多養氣出來 只此二字 其功甚多

정자가 또 말했다. “맹자는 성인의 문하에 공이 있으니, 말로 다할 수 없다. 중니는 단지 한 개 인(仁) 글자를 설명했는데, 맹자는 그 입구를 열었으니 인의(仁義)를 설명했다. 중니가 단지 한 개의 뜻을 설명했다면, 맹자는 허다하게 양기(養氣)의 드나듦을 설명했다. 단지 이 두 글자를 [말했지만] 그 공은 매우 많다.

 

공자의 인(仁)에 의(義)를 붙여서 새롭게 해석한 것이 맹자의 포인트.

 

又曰 孟子有大功於世 其言性善也

又曰 孟子性善養氣之論 皆前聖所未發

又曰 學者全要識時 若不識時 不足以言學 顔子陋巷自樂 以有孔子在焉 若孟子之時 世旣無人 安可不以道自任

또 말했다. “맹자는 세상에 큰 공을 세웠으니, 성선(性善)을 말했기 때문이다.”

또 말했다. “맹자의 성선(性善), 양기(養氣)의 얘기들은 모두 이전 성인이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또 말했다. “배우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때를 알고자 해야 하니, 만약 때를 알지 못한다면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안회는 누추한 곳에 머물면서도 스스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공자가 살아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의 시대 같은 경우에는, 세상에 이미 [공자와 같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찌 도(道)를 자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맹자》에서 유념해야 할 개념들. 인의(仁義), 성선(性善), 양기(養氣).

 

又曰 孟子有些英氣 才有英氣 便有圭角 英氣甚害事 如顔子便渾厚不同 顔子去聖人只毫髮間 孟子大賢 亞聖之次也 或曰 英氣見於甚處 曰 但以孔子之言比之 便可見 且如冰與水精 非不光 比之玉 自是有溫潤含蓄氣象 無許多光耀也

또 말했다. “맹자는 다소 빼어난 기운(英氣)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빼어난 기운이 있다면, 곧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영기는 일에 매우 해롭다. [그러나] 안회 같은 경우에는, 근본이 혼연하여 [맹자와] 같지 않았으니, 안회는 성인과의 거리가 단지 털 [한 가닥]의 차이일 뿐이다. 맹자는 대현(大賢)이니 아성(亞聖)의 다음이다.” 누군가 말했다. “뛰어난 기운은 어디에서 드러납니까?” 정자가 말했다. “다만 공자의 말로써 비견한다면, 곧 볼 수 있으니, 예컨대 얼음과 수정 같은 경우에는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옥에 비견한다면, 저절로 이것은 따뜻하면서도 촉촉하여 머금고 쌓은 기상이 있어, 허다하게 빛나고 반짝이지 않는다.”

 

공자와 맹자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공자가 따뜻하고, 윤기가 나는 옥이라면, 맹자는 차갑고 빛나는 수정의 이미지.

규각(圭角)은 ‘모서리’, ‘튀어난 부분’인데, ‘남들과 말과 행동이 부딪치는 지점’을 뜻한다.

甚處에서 심(甚)은 ‘어디에’라는 뜻에서 “삼”으로 읽는다.

 

楊氏曰 孟子一書 只是要正人心 敎人存心養性 收其放心 至論仁義禮智 則以惻隱羞惡辭讓是非之心爲之端 論邪設之害 則曰生於其心 害於其政 論事君 則曰格君心之非 一正君而國定 千變萬化 只設從心上來 人能正心 則事無足爲者矣 大學之脩身齊家治國平天下 其本只是正心誠意而已 心得其正 然後知性之善 故孟子遇人便道性善 歐陽永叔却言聖人之敎人 性非所先 可謂誤矣 人性上不可添一物 堯舜所以爲萬世法 亦是率性而已 所謂率性 循天理是也 外邊用計用數 假饒立得功業 只是人欲之私 與聖賢作處 天地懸隔孟子集註大全卷之一

양씨가 말했다. “《맹자》 한 책은 다만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니, 사람들에게 존심(存心), 양성(養性)을 가르쳐서, 방심(放心)을 거두려 한 것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논하는 데 이르러서는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시비(是非)의 마음으로 단서를 삼았다. 사설의 해로움에 대해 논한 것은 ‘그 마음에서 생겨나 정치에 해롭다’고 했다. 군주를 섬기는 것에 대해 논한 것은 ‘군주의 마음이 잘못됨을 바로잡아야하니, 한 번 군주를 바로잡으면 나라가 안정된다.’고 했으니, 천변만화한 것은 단지 마음이 타고 오는 것을 따르는 데서 설명했을 따름이다. 사람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일은 할 만한 것도 없다. 《대학(大學)》의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그 근본이 단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할 뿐이니,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성(性)의 선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는 사람을 만나면 성선(性善)을 말했다. [그런데] 구양영숙은 ‘성인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칠 때 성(性)은 우선할 바가 아니다’라 했으니, 이 말은 오류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성(性) 위에 한 가지의 사물도 첨가할 수 없으니, 요 임금, 순 임금이 만세의 법으로 생각된 것도 또한 이 성(性)을 따랐을 뿐이다. 이른바 성(性)을 따른다는 것은 천리(天理)에 순응하는 것이 이것이다. 그밖에, 계책과 술수를 쓴다면, 가령 공업을 세운다 한들 다만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일 따름이다. 성현(聖賢)께서 하시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 현격하다.

 

〈양혜왕 상(梁惠王 上)〉

 

1장.

孟子 見梁惠王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梁惠王 魏侯瑩也. 都大梁 僭稱王 諡曰惠. 史記惠王三十五年 卑禮厚幣 以招賢者 而孟軻至梁.

양혜왕은 위(魏)나라 제후 앵이다. 수도는 대량이다. 왕이라 참칭했고, 시호는 혜(惠)라고 붙였다. 《사기》 혜왕 35년, 겸손히 예를 다하고 폐백을 후하게 함으로써 능력 있는 자들을 초청하자, 맹가가 양나라에 이르렀다.

 

《사기》 〈위세가〉 35년 기록

35년 에는 제 선왕과 평아의 남쪽에서 회맹하였다.

혜왕이 여러 차례 전쟁에서의 고배를 마신 뒤 공손한 예절과 후한 하사품으로 현자들을 초빙하였다. 추연, 순우곤, 맹가 등이 모두 대량에 모였다. 양 혜왕이 말하기를 “과인이 재주가 없어서 세 번에 걸쳐서 장병들을 잃고, 태자가 포로가 되었으며, 상장(上將)이 전사하였으니, 나라가 공허하고, 선왕과 종묘사직에 치욕을 주어 과인이 심히 부끄럽소. 노인장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으시고 우리 나라에 왕림하여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소?” 라고 하니, 맹가가 말하기를 “왕께서는 이와 같이 이(利)에 대해서 말씀하지 마십시오. 왕께서 이를 바라신다면, 대부들이 이를 바랄 것이며, 대부들이 이를 바란다면, 평민들도 이를 바랄 것이니, 상하가 서로 이를 다툰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왕이 되는 데에는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이지, 어찌 이(利)를 바라십니까?”라고 하였다.

 

王曰叟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양혜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리 하지 않으시고 오셨으니, 또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지요?”

 

叟 長老之稱. 王所謂利 蓋富國彊兵之類.

수(叟)는 나이 많은 노인에 대한 호칭이다. 왕이 이로움을 말한 것은 대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사를 강하게 하는 것과 같은 종류다.

 

孟子對曰 王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반드시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仁者 心之德 愛之理. 義者 心之制 事之宜也. 此二句乃一章之大指. 下文乃詳言之. 後多倣此.

인(仁)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하는 것의 이치이다. 의(義)는 마음을 재단하는 것이고, 일의 마땅함이다. 이 두 구절은 1장의 핵심이다. 다음 문장은 이를 상세하게 말하고 있으니, 뒤에서도 이를 본받은 것이 많다.

 

주자 철학에서 정의한 인(仁)과 의(義)의 개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制)는 ‘재단하다’, ‘만들다’의 뜻의 제(製)와 통용됐다. 사(事)는 구체적 상황이다.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 交征利 而國危矣 萬乘之國 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 不饜

왕이 ‘무엇으로써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면, 대부도 ‘무엇으로써 나의 가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사(士)와 서민들도 ‘무엇으로써 내 한 몸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합니다.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취하려 들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수레 만 대의 나라에서 군주를 해치는 것은 반드시 수레 천 대의 제후일 것이고, 수레 천 대의 나라에서 군주를 해치는 것은 반드시 수레 백 대의 대부일 것입니다. 수레 만 대의 천자가 수레 천 대의 제후를 취하고, 수레 천 대의 나라에서 수레 천 대의 제후가 수레 백 대의 대부를 취하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의(義)를 뒤로하고 이로움을 먼저하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此言求利之害 以明上文 何必曰利之意也. 征 取也. 上取乎下 下取乎上 故曰交征. 國危 謂將有弑奪之禍. 乘 車數也. 萬乘之國者 天子畿內 地方千里 出車萬乘. 千乘之家者 天子之公卿 采地方百里 出車千乘也. 千乘之國 諸侯之國. 百乘之家 諸侯之大夫也.

弑 下殺上也. 饜 足也, 言臣之於君 每十分而取其一分 亦已多矣. 若又以義爲後 而以利爲先 則不弑其君而盡奪之 其心未肯以爲足也.

이것은 이로움을 구하는 것의 해를 말한 것으로써 앞의 문장의 ‘어찌 반드시 이로움을 말하십니까?’의 뜻을 밝힌 것이다. 정(征)은 취함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취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취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서로 취한다’고 말한 것이다. 나라가 위태롭다는 것은 장차 시해하고 찬탈하는 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승(乘)은 수레 숫자다. 수레 만 대의 나라는 천자의 직할지로 영토가 사방 천리이고, 수레 만 대가 생산된다. 수레 천 대의 나라는 천자의 공경으로, 식읍의 영토가 사방 백리이고, 수레 천 대가 생산된다. 수레 천 대의 나라는 제후의 나라를 일컫는다. 수레 백 대의 나라는 제후의 대부다.

시(弑)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살해하는 것이다. 염(饜)은 만족하는 것이다. 말하길, 신하가 군주에게 매번 열 개를 나누어 그 하나를 취하는 것도 또한 이미 많다. 만약 또 의(義)를 뒤로 하고, 이로움을 먼저한다면, 군주를 시해하고 찬탈하는 데 다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만족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기(畿)는 천자의 직할지이고, 채지(采地)는 식읍으로 받은 땅이다.

염(饜)은 ‘만족하다’라는 뜻인데, 물릴 때까지 먹어서(食) 먹지 않아도 될 지경(厭)에 이르렀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인(仁)하고서 친족을 버리는 사람은 있지 않으면, 의(義)롭고서 그 군주를 뒤로하는 자도 있지 않다.

 

此言仁義未嘗不利 以明上文亦有仁義而已之意也. 遺 猶棄也. 後 不急也. 言仁者必愛其親 義者必急其君 故人君躬行仁義 而無求利之心 則其下化之 自親戴於己也.

이것은 인의(仁義)가 일찍이 이롭지 않은 적이 없음으로써, 앞 문장의 ‘또한 인의(仁義)일 따름입니다.’라는 뜻을 밝힌 것이다. 유(遺)는 ‘버리다’와 같다. 후(後)는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말하길, 인(仁)한 사람은 반드시 그 친족을 사랑하고, 의(義)로운 사람은 반드시 그 군주를 급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군주가 몸소 인의(仁義)를 실천하여, 이로움을 구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아랫사람은 교화되어 저절로 나를 친히 여기고, 받들게 된다.

 

‘천리지공’과 ‘인욕지사’ 각각을 따를 때의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천리지공’과 ‘인욕지사’를 따를 때, 각각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王 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왕은 또한 인의(仁義)일 뿐이니, 어찌 반드시 이로움을 말하십니까?”

 

重言之 以結上文兩節之意. 此章言仁義根於人心之固有 天理之公也. 利心生於物我之相形 人欲之私也. 徇天理 則不求利 而自無不利. 徇人欲 則求利未得而害己隨之. 所謂毫釐之差 千里之繆. 此孟子之書所以造端託始之深意 學者所宜精察而明辨也.

太史公曰 余讀孟子書 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 未嘗不廢書而嘆也. 曰嗟乎 利誠亂之始也. 夫子罕言利 常防其源也. 故曰 妨於利而行多怨. 自天子以至於庶人 好利之弊 何以異哉.

程子曰 君子未嘗不欲利 但專以利爲心 則有害 惟仁義 則不求利而未嘗不利也. 當是之時 天下之人 惟利是求 而不復知有仁義. 故孟子言仁義 而不言利 所以拔本塞源而救其弊 此聖賢之心也.

거듭 말함으로써 앞의 두 구절의 뜻을 마무리 지었다. 이 장은 인의(仁義)가 사람 마음의 고유한 것에서 근원하니, 천리(天理)의 공평무사함이다. 이로움을 구하는 마음은 사물과 내가 서로 형상화한 데서 생겨나니,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다. 천리에 순응하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도 저절로 이롭지 않게 되는 게 없다. 인욕(人欲)에 순응하면, 아직 이익을 얻지 못해도 해로움이 나에게 따라올 것이니, 티끌 하나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말한다. 이것은 맹자의 글이 단서를 만들어 사유를 개시하는 깊은 뜻이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정밀히 살피고 명확하게 분별해야 할 것이다.

태사공은 말했다. “내가 맹자의 책을 읽다가 양혜왕에게 ‘무엇으로써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묻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로움은 진실로 어지러워지는 것의 시작이다. 공자께서 이(利)를 드물게 말씀하신 것은 항상 그 근원을 방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움을 추구하면 행동에 원망이 많다.’라고 말했으니,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로움을 좋아하는 것의 폐단이 어찌 다르겠는가?”

정자가 말했다. “군자는 일찍이 이로움을 원하지 않은 적이 없지 않지만, 전적으로 이로움을 마음으로 삼으면 해가 있으니, 오직 인의(仁義)만이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고도 일찍이 이롭지 않은 적이 없다. 그 당시에, 천하 사람들이 오직 이로움을 추구하고, 다시 인의(仁義)가 있음을 알지 못했으므로, 맹자는 인의(仁義)를 말하고 이로움을 말하지 않은 것은 뿌리를 드러내어 근원을 막아 폐단을 구제한 까닭이다. 이것이 성현(聖賢)의 마음이다.”

 

《논어》 〈자한〉편 1장

“선생님께서는 리(利)와 명(命)과 인(仁)을 드물게 말씀하셨다(子罕言利與命與仁).”

《논어》 〈이인〉편 12장

공자가 말했다. “이익만을 추구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子曰 放於利而行多怨).”

 

사람 마음에 잠재하는 ‘천리지공’을 획득할 수 있게 해주는 단서가 인의(仁義)다.

이심(利心)은 사물과 내가 서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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