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6.12 니나노 일본어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9-06-08 18:12
조회
68
길었던 <불량소년과 그리스도>(1948)를 끝내고 <욕망에 대하여-프레보와 라클로>(1946)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안고는 처음부터 강렬한 질문을 던집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울하고 죽을 것 같은 지경에 빠지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인가?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근검 정신이라든가 인고의 노력이라든가 하는 건 사실 미덕이 아니라 인간을 억누르는 악덕이 아닌가. 안고의 이런 글은 참 명쾌합니다. 우리가 모순이라 생각하면서도 안고 가는 삶의 일정 부분을 단도직입적으로 끄집어 내니까요. 그는 가정에 대한 우리의 생각, 자신을 괴로움에 밀어 넣으면서도 굳이 '미덕'이라 추앙하고 있는 것을 정면으로 보라 하니까요. 우리 가차 없으신 안고 선생님^^;; 안고는 가정을 위해 그런 괴로움을 감내할 바엔 정조 관념을 갖다 버린 창부의 생이 더 좋다고 합니다. 마농 레스코의 삶에 대해 안고는 이렇게 말하죠.




 私はマノン・レスコオのやうな娼婦が好きだ。天性の娼婦が好きだ。彼女には家庭とか貞操といふ観念がない。それを守ることが美徳であり、それを破ることが罪悪だといふ観念がないのである。マノンの欲するのは豪奢な陽気な日毎々々で、陰鬱な生活に堪へられないだけなのである。

 彼女にとつて、媚態は徳性であり、彼女の勤労ですらあつた。そこから当然の所得をする。陽気な楽しい日毎々々の活計たつきのための。

나는 마농 레스코와 같은 창부를 좋아한다. 천성적인 창부를 좋아한다. 그녀에게는 가정이라든가 정조라는 관념이 없다. 그것을 지키면 미덕, 깨면 악덕이라는 죄악이라는 관념이 없는 것이다. 마농이 욕망하는 것은 호화롭고 쾌활한 매일매일로, 그녀는 음울한 생활을 견뎌낼 수 없을 뿐이다.

그녀에게 교태는 덕성이며 근로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당연한 소득을 얻는다. 명랑하고 즐거운 매일매일의 생계를 위한.



여기서 문제가 된 문장은 "マノンの欲するのは豪奢な陽気な日毎々々で、陰鬱な生活に堪へられないだけなのである。"입니다. 주어가 '마농이 원하는 것マノンの欲するの' 이어야 하는데, 그럼 다음 문장인 '음울한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와 호응이 바로 되지 않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이야기가 오갔죠. 아예 '마농은' 하고 주어를 사람 주어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마농의 욕망'이 주어인 것은 분명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간에 '마농은' 하고 사람 주어를 중간에 넣었습니다만, 완전히 매끄럽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일본어로 읽을 때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우리말로 옮기자마자 드러나는 비문, 주어실종...이런 문장은 만날 때마다 고민이 많이 됩니다~_~

안고는 <데카당 문학론>(1946)에서 소세키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소세키의 지성과 이성은 가려운 곳에 절로 손이 가듯, 참으로 어떻게 이런 부분에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을까 하고 생각될 만큼 가정의 봉건적 습성이라고 하는 것의 온갖 지엽 말절 구석구석에까지 사유가 뻗어간다. 그러나 가정의 봉건적 습성 중에도 분명히 있을 터인 육체에 대해서는 일고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 보다도 본연의 인간의 자유로운 모습을 불문에 부치고 있다. 그의 작중 인물은 학창 시절의 대수롭지 않은 일을 자책해 20~30년 후에 자살한다. 실로 기상천외한 일을 한다. 그런 한편, 그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주요 인물은 가정적 습성이라는 것에 의해 극한의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혼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생활의 생장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는 자가 없다." (<사카구치 안고 산문집>, 88면) 소세키 '님'에 대해 이런 통렬한 비판은 처음 본 터라 완전 놀라버린 저는 비슷한 주제로 시작하는 <욕망에 대하여>를 읽는 것에 대해서도 기대가 큽니다^-^ 인간은 왜 자신을 기만하면서까지 '미덕'을 만들고 '자살' 같은 도피처를 만드는가. 안고 선생님이 거침없이 가는 길을 따라가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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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8 20:26
    어머낫! 소세키에 대해서도 안고가 '실생활'의 관점에서 비판을 했었군요. 안고는 도덕 일반에 대한 비평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안고는 자기 윤리를 구성하려는 시도 없이, 단지 세간의 도덕을 비판만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 수 없어 합니다. 기만하지 마라, 그것이 너의 윤리가 되게 하라. 처음에는 가볍게 읽었는데, 점점 안고가 하는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이 다음 글은 '나의 장례식'이군요.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