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0.29 소세키 세미나 공지+10.22 수경 조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10-26 01:45
조회
366
수경 조는 일단 지난 시간(?) 동사서독 때 <갱부>를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했었나하는 회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 가지가 드문드문 떠올랐었죠. 소세키가 비판받던 계급에 대한 무관심, 광산이라는 문명과 동떨어진 듯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 갱도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모험 속에서 변형되는 화자의 유동하는 마음 등등. 한 가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기억이 너무나 유동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지식인도 고등유민도 안 나오고 배경도 도쿄가 아닌데다 그들을 둘러싼 여염집 규슈나 어쨌든 하녀를 부리는 고등유민들의 사모님(?)도 나오지 않는 유일한 소세키 소설 <갱부>. 그런 점에서 특이합니다만, 막상 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갱부>는 어떤 소설인가. 일단 <갱부>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마음’에 대해서 락쿤쌤과 재원언니가 주목했습니다. 화자의 지론을 요약하면 ‘마음은 유동적이다’일 것입니다. 그런데 화자가 이런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어떤 변형을 이루거나하지는 않는 것이 <갱부>의 특이한 점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화자가 ‘소설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근대 소설 장편소설 주인공이 세계에 동참하여 관계 맺고 서로 변화합니다. 그런데 <갱부>는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시점에서 갑자기 요약 형식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한 이야기이기도하죠. 그걸 두고 재원언니는 소세키에게 근기가 없는가! 라는 문제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수경언니는 <갱부>의 그런 점을 두고 페이지가 비록 300이 넘지만 이 소설은 단편소설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까지만 그리면 분량에 상관없이 단편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화자가 아무리 마음이 변형된다고 거듭 말하더라도 우리가 정작 그 변형된 화자 자신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소세키가 <갱부>를 근대 장편소설과 같이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동일성을 가진 무언가가 변화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근대 장편소설이라면 <갱부>는 300페이지에 걸쳐 인간의 마음이 유동적이라는 ‘썰’은 풀더라도 정작 그가 성장했다든가, 혹은 변화했다든가 하는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소세키가 그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마음을 그려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경 언니는 그래서인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임하는 화자가 사실 가출하여 갱부로 갔을 때와 시간적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보통 소설을 읽는 버릇대로 <갱부>를 보면 주인공은 길고 긴 갱도를 내려갔다가 나와서 변형, 즉 성장을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만 <갱부>를 다 읽고 생각해보면 이 화자에 대해 특별히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얜 대체 뭘 한 거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300페이지에 걸쳐서 자기가 가출한 것을 정리하고 있는가. 사실 광산으로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길고 긴 길을 내려갔다 올라와서 마음의 유동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갱부>의 특이한 점입니다. 거기다 그 길을 다시 보니까 별로 길지도 않아요. 하루 하고 반나절 기차타고 걸어서 광산으로 가고 다시, 한 번 갱도를 내려갔다가 올라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냥’ 한번 갔다 온 것인데 화자는 마치 생을 건 모험처럼 말합니다. 그 사건은 정말 화자만의 고유한 사건이고, 거기에서 보편적으로 얻을만한 교훈이나 확인할만한 성장은 또 없습니다. 여전히 읽을 때는 재밌는데 막상 생각하려니 희한한 소설 같습니다.

규창이는 촌뜨기, 어중이떠중이들을 조조 씨가 꾀어내서 데려가는 모습이 흡사 다단계(!) 같다고 했는데요, 그 ‘떠밀림’에 애매하게 답하면서 휩쓸리는 화자의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떠밀려 가는 모습을 자기가 다시 회고하는데 그 자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기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화자도 사실 모르는 거 같다고요. 차라리 그때의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민하는 자신의 변화를 보기 위해 쓰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떠밀려간다’, 혹은 ‘전락’은 <갱부>에 많이 등장하는데다 화자가 주로 보이는 태도 중 하나인데요. 이걸 두고 외발적인 근대에 휩쓸려가는 당시 일본인들을 그리는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 일차원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근대라는 키워드에 얽매여 소설을 읽으면 그건 답을 이미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질문을 만들고 그렇게 나의 ‘근대’라는 상이 깨져야 소세키 소설을 더 재밌게 보는 길인데, 이게 또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재원언니가 답을 유추하지 않은 채 글을 쓰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계속 물었는데 저도 같이 옆에서 그러게 뭘까 하고 있었습니다... ㅠ0ㅠ

 

이번 시간에는 <갱부> 외 구니키다 돗포와 <소설신수>, 그리고 <일본 문학의 근대와 반근대> 발제를 읽었는데요. 소설이 들어선 근대 시공간이 얼마나 이것저것이 착종된 난장이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근대 소설가는 소설가이면서 번역가를 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번역과 소설 쓰기는 엄연히 다른 작업인데, 근대의 소설가들은 소설쓰기를 번역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이야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글쓰기가 사실은 외래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을 소설 쓰는 지식인들의 번역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글쓰기의 형태부터 바뀌는 대공사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구도이지만 근대 이전의 동양에서는 한문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건 글쓰기가 내 생각이 아닌 이전 문(文)의 교양과 연관되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말을 쓰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다른 차원인 시절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근대소설의 화자는 내면을 드러내는 화자입니다. 이때 글쓰기는 이전의 글들이 이루던 교양과 떨어져 개인의 내면이 드러나는 글쓰기로 거듭나야 했습니다. 내면의 독백, 내면의 말을 글로 옮겨야 하는 작업이 근대 소설 쓰기였던 것. 그러니까 전혀 다른 차원의 글과 말이 일치되어야 근대의 소설 쓰기가 가능했습니다. 바로 언문일치. 글은 이제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 봉사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면을 단지 심리적인 차원에 국한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는 화자가 세상을 프레임화 하는 중심을 갖게 되는 것, 투시도법이 적용된다면 이는 근대 이전의 소설과 구분되는 근대소설일 것입니다. 돗포의 <무사시노>의 풍경은 관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화자가 조망하는 풍경이라는 점에서 내면을 드러내는 풍경, 근대소설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본 것에 대한 독백이 이어지는 것이 근대소설이라는 것.

오히려 이런 소설에 너무 익숙하다보니 근대 소설에서 ‘풍경’을 발견하고 또 그걸 글로 옮기기 위해 쓰는 방법조차 바꾸는 대공사를 해야 했던 당대 소설가들의 멘붕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떤 방식인지도 모르는데, 새로운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절감하는 순간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쓰보우치 쇼요의 <소설신수>도 당시의 패닉이 반영된 같기도 합니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소설을 만나기도 전에 소설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이론서를 지은 특이한 사람입니다. 거기다 자기 나름대로 소설을 지어 같이 발간하기도 한 실험정신 넘치는 사람이었고요. <소설신수>에서 쓰보우치 쇼요는 소설 이론을 쓰면서도 근대 이전의 ‘인정(人情)’을 이야기하고, ‘모노노아와레’라는 일본 특유의 감수성을 찾아내고 또 일본의 산문 장르인 ‘모노가타리’를 제시합니다. 이미 ‘소설’이라는 것은 외래로부터 들어왔고, 쇼요는 그것을 어떻게든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또 적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쇼요가 일본식이라고 생각하며 또 근대소설로의 개량을 주장했던 것들은 근대 소설과 만나며 비로소 발견한 일본 고유의 정서, 장르, 그리고 글쓰기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근대는 전혀 다른 것들이 만나서 서로와 자신을 확인하는 시기였던 것은 아닐까요.

쓰보우치 쇼요는 페놀로사를 인용합니다. 페놀로사는 미술로부터 어떻게 일본의 미(美)를 형성할 것인지 말하며 일본에 와서 미술학교를 설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오카쿠라 텐신은 미국에 가서 서양미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양의 근대는 이미 있었던 동양은 물론 서양의 근대라고 할 수 있는 헤겔과 반근대라고 할 수 있는 니체가 함께 ‘근대’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뒤섞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메이지 지식인들은 이 착종을 몸소 경험하고 서양의 근대와 자신들이 겪는 근대가 계속해서 어긋난다는 사실을 확인하던 사람들이었고요. 분명 서양이 우리의 미래라면, 그 시간적 낙차를 메우기만 하면 되는데,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는 그 선형적인 발전단계를 따라갈 수 없는 전혀 다른 근대를 경험하던 사람들. 정말 새롭게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하고 시작해야 하는 지점에 놓인 사람들을 우리는 만나는 것입니다. 이 시기와 지금 우리의 시공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요? 이 낯선 듯 닮은 시공간에서 내 문제를 얼마나 찾고 확장하느냐에 따라, 실감하는 소세키 시대와 지금의 시공 사이에서 느껴지는 낙차도 다를 것 같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들이 소설을 만나 자신의 글쓰기가 무엇인지 아는 동시에 뒤엎고 자신의 장르와 정서를 확인했던 것처럼.

 

다음 시간에 발제문 다시 가지고 옵니다.

읽고 공통과제를 쓸 책은 <산시로>

숙제 있습니다. <산시로> 뒤에 있는 소세키 연보 외워옵니다~

 

간식은 옥상쌤, 건화

 

토요일에 만나요~
전체 1

  • 2016-10-26 15:20
    소세키라는 인물이 가진 고민과 그의 시대 속에서 작품을 봐야 하는데, 이 작품 따로 보고 저 작품 따로 보게 되네요!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 뭔가 보이려나.... 소세키 세미나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