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0.22 <갱부>, 란다조 후기

작성자
이응
작성일
2016-10-28 00:46
조회
314
소세키, <갱부>, 란다조 후기


# 소세키 리얼리즘

란다조는 발제문을 읽고 전반적으로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는지 나누면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주로 지식인과 하이칼라를 등장인물로 삼았던 소세키가 사회의 최하층이라 할 수 있는 노동계급을 그렸다는 점이었습니다. <갱부>의 배경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세키의 소설과 사뭇 다르지만 역시 주인공은 ‘부잣집 도련님’입니다. 도련님이 광산에 들어가 갱부가 될 뻔(?) 했던 3일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을 뿐, 노동자의 삶에 주목한다거나 노동자의 생활을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사람답게 만나 대화한 사람도 ‘학식 있는’ 갱부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왜 소세키는 지식인만을 그리는걸까? 하는 점이 궁금해졌는데요, 소세키가 노동자가 아닌데 노동자의 심리를 쓸 수 있다는것도 이상한거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럼 작가는 자기가 경험한 것만 쓸 수 있고, 경험만이 진실하다는건데, 만일 그렇게 되면 ‘진실’을 쓴다고 할 때 보여줄게 ‘자기’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쓰다보니, 이런 지점이 ‘사소설’과 ‘소세키의 글쓰기’가 갈라지는게 아닐까 싶네요. 토론에서도 소세키가 그리는 <갱부>는 리얼하지만, 소세키가 직접 경험하고 쓴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소세키는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니까요. (또 소세키가 소설을 쓰기 위해 광산에 들어갈 정도의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요..) 반면 돗포의 경우를 보면 예의 풍경을 그리고는 있지만, 그것이 돗포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면을 그린다는 점에서, 둘 다 리얼하게 무언가를 그리고 있지만 좀 다른 리얼함이란 것을 알 수 있지요.


# 글쓰기 방식

또 <갱부>에서 눈에 띄는 점은, 지금까지 읽은 소세키 작품들이 막바지에 이르러 어떤 ‘답’을 제시하면서 마무리되는 지점이 있었는데(고노의 일기나 도오의 연설, 선생님의 유서 등) <갱부>에는 그런 설명이 사라지고 상황으로 무언가를 전달한다는 점이 세련되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 회상_동시에 흐르는 두 개의 현실

재미있던 것은 <갱부> 전체가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여기에는 두 개의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를 쓰고 있는 ‘현재의 나’와 사건을 경험했던 ‘과거의 나의 현재’가 중첩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이랬다’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것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다시 말해 어느 한쪽으로 시점이 고정되지 않은 채로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돗포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과 확실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돗포의 회상이 ‘회상하는 나’는 멈춰있고 과거만 흘러가서 과거가 정리되는 느낌이라면, <갱부>의 회상하는 방식은 회상 자체가 어느 한쪽으로 시점이 고정되지 않도록 교란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갱부>의 화자는 고정된 기억을 꺼내 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마음의 변화

이어서 <갱부>의 스토리로 들어가면, 갱부가 될 뻔한 3일간의 과정을 장장 96회에 걸쳐 연재한 점이 눈에 띕니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딱히 사건도 없는데, 96회분은 대체 무엇으로 채워진걸까요.. 란다와 진희샘은 특히 도련님의 ‘마음의 변화’에 주목하셨는데요, 정말 도련님이 왜 죽으려 했는지 물으면 딱히 이유를 찾을 수 없고, 그보다는 죽을만큼 고통스럽다는 마음의 움직임이 부각되고 있는걸로 느껴집니다. 가출을 감행하고, 자살하고 가기까지,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것은 ‘두 여자 사이의 갈등(연애문제)’이지만, 핵심은 연애가 아니라 연애를 통해 드러난 사회의 거울(혹은 억압)을 보고 도련님이 느낀 부대낌 같은 것. 땅 밑의 세계는 그런 도련님의 의식의 흐름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죽을만큼 괴로웠던 마음이나, 의식의 흐름이 자기식대로만 흐르는게 아니라 외부와 접속되고 외부를 반영하면서 계속 변하고 달라집니다. 견딜 수 없을거라 여겼던 감정도 얼마나 바뀌기 쉬운 것인지, 바뀌는 것도 얼마나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바뀌고 마는지, 의지는 미끄러지고, 생각지도 못한 사건으로 행로가 달라지기도 하고, 이런 ‘마음의 변화’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지 토론하면서 흥미진진했습니다. 토론하면서 나름으로 ‘진실이란건 없고, 매번 매 사건마다 변화한다는 것만이 진실’이란 교훈도 얻었고요.


# 기타 : <갱부>를 쓰게 된 배경

그 외에도 소세키가 <갱부>와 같은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토론했었는데요, 자살했던 소세키의 제자에 대한 이야기, 당시에 ‘철학적 자살’의 모티브가 된 것은 (잉여인간 지식인을 그렸던) 러시아 문학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견, 메이지 10년에서 메이지 40년 사이의 변화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란다샘이 열심히 설명해주셨는데도) 제가 미쳐 다 소화하지 못해 이렇게 단편적으로 전할 수밖에 없네요. 어수선하지만 이정도로 후기를 마칩니다. 토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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