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와 글쓰기

11.05 <그 후> 수경조 후기

작성자
락쿤
작성일
2016-11-06 17:39
조회
305
<그 후>, 수경조 후기입니다. 이번 주는 결석생이 있어 조촐하게 시작했는데요. 그 분들께 우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우린 무척 즐거웠다ㅋㅋ 요렇게 전달되었으면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제 책임인 거죠~ 흠.. 어찌됐든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이스케는 여성스러울 만큼 섬세합니다. 샤워 후 자신의 얼굴을 꼼꼼히 살핀다던지 머리의 가르마도 부드럽게 넘어가고 수염 역시 머리카락처럼 섬세합니다. 수염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영락없는 여자입니다. 거기에다 다이스케는 은은한 향기 또한 좋아합니다.
규창이는 여성적 취향인 다이스케의 이러한 모습이 시대적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 싸워 승리했지만 사람들의 멘탈은 공황상태였을 것이고,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일희일비하며 요동치는 상황에 다이스케의 여성스럽고 감각적 묘사들은 뭔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혜원이도 다이스케는 아버지 세대처럼 사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근대라는 상에 머물러 있는 사람 같지도 않다는 의견입니다. 다이스케는 산시로의 세대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그것은 다이스케가 근대라는 상황에 빠져있으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다이스케는 항상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의미를 찾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를 삐닥하게 보는 시선, 근대를 견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수경쌤은 다이스케의 아버지 세대인 전근대적 특징과 비교하며 얘기 했는데요. 아버지 세대(사무라이 정신)는 생의 목표가 뚜렷하고 열정과 의지를 내세우며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 시대는 확실히 나아갈 바가 있고 지주로써 해야 할 믿음과 가문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다이스케는 이러한 아버지 세대에 반기를 드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다이스케는 아버지 세대를 대변하는 용감함, 담대함 등이 두렵고 부담됐던 것 같습니다. 수경쌤은 이어 아버지 세대는 국가, 가문을 위해서 개인의 건강도 신경 쓰는 거라면, 다이스케는 ~위함이 아니라 나, 개인의 건강을 관리합니다. 가령 걷는 것도 내가 걷고 싶어서, 사색을 하는 것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수경쌤은  ‘나’라는 관념이 있다는 것이 아버지 세대와 다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소속 집단을 구성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관리한다는 시선은  뭔가 독특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규창이도 다이스케의 태도를 요령부득의 모습으로 봤습니다. 이것은 우유부단한 모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다이스케는 고등유민이고 글을 써서 문단에 자신을 알리지도 않고 마치 한량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개화의 흐름과 반대되는 것 같고, 정략결혼을 해 사업을 번창 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과 상 반대는 것 같습니다. 근대는 양적으로 한참 성장하고 있는데, 다이스케의 위치는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다이스케에게 근대라는 말로 표상되는 경험은 무엇일까? 수경쌤은 이런 질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를 읽으면서 하루키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하루키는 소세키 시대와 백 년 조금 못 되게 떨어져 있는 세대지만 포개질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하루키 소설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째즈 바에서 카테일을 마시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보입니다. 삶의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태도로 읽히기도 합니다. 수경썜은 하루키 소설을 통해 당시 시대적 보편성을 읽을 수 있고,  그 시대의 청년들이 겪는 박탈감, 상실감 등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근대의 개인적인 탐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라고 말 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세키에게 근대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이스케의 예민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혜원이는 다이스케가 ‘피를 담는 자루’이자 ‘시간을 담는 자루’인 인간의 딜레마를 고민하고 세상에서 자신을 고립시킨다고 했습니다. 다이스케는 바깥세상에서 자극을 받으면 또는 아버지와 대립되는 상황을 겪으면 집에 와서 은은한 은방울 꽃 향기를 맡으며 낮잠을 자야하는 나약함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숨을 가쁘게 하는 자극은 멀리하고 싶습니다. ‘격렬한 피의 흐름과 무관한 평온한 심장’을 원합니다. 혜원이는 다이스케가 집착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다시 자기를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다이스케에게 심장을 마구 자극하는 일련의 사건이 찾아옵니다. 바로 미치요와의 관계인데요. 자극적인 것을 멀리하는 다이스케에게 미치요는 어떤 존재일까요. 미치요의 분위기는 뭔가 묘연합니다. 생활비가 궁해 예전 남자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이상하고, 낮잠을 자고 있는 다이스케의 방에 들어오는 것도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향기 강한 백합을 들고 오는 이유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규창이는 이번 소설에서 식물들이 여러 번 나오는데 다이스케와 관련해서 동백꽃, 은방울 꽃, 옥잠화 등 은은한 향기를 지닌 꽃들인데 반해, 미치요가 사들고 온 향기가 강한 백합은 이들과 좀 어울리지 않아 이상했다고 합니다. 다이스케에게 미치요는 자극을 주는 존재이지 않을까요. 다이스케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지만 여전히 미치요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약간 의문입니다. 혜원이는 다이스케가 뭔가를 결정할 때 누군가 등을 떠밀어 주기를 바라는 상태로 결정을 유예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대부분 실체 없는 것에 기초합니다. 미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린 것도 마치 지연행동을 부숴버리듯 어떨 결에 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모든 상황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변합니다. 그가 거부했던 요소들이 다시 현실로 다가옵니다. 이제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미치요와의 관계도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뭔가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다이스케의 모순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다이스케는 불합리한 것들을 거부했는데 자신이 거부했던 세계 안으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혜원이 말대로 이것은 그의 실패인지, 또 파국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체 3

  • 2016-11-06 23:33
    결석생을 배려한 친절한 후기 감사요 ;ㅅ; 엄청엄청 궁금했더랬어요. 이제 진짜 빠지지 않을 거ㅠㅠ

  • 2016-11-07 14:59
    친절하고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이미 알고 있는 '근대'라는 틀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읽기와 쓰기는 어째 갈수록 더 어려워지네요~ @@

  • 2016-11-08 11:37
    음.. 근대가 뭐다~ 이렇게 하나로 규정할 수 없게 하는, 이질적이고 복잡다단한 삶과 인간들이 소세키의 소설에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저 누구는 전근대, 누구는 근대가 아니라. 다이스케도 아주 희한하지요. 우리가 떠올리는 '근대적 인간'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인데, 이게 또 근대에 출현한 새로운 인물상 같기도 하잖아요. 다이스케의 아버지가 신기한 건 과거사에 사무라이와 연관된 게 많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 현재 보여주는 사업가적 측면은 그와 아주 달라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함께 사는아버지와 장남이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적 이미지에 가까운 것도 같고, 그런 면에서 다이스케는 그런 삶을 낯설어 하는 또 다른 근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