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세미나

4월 19일 '타자에 대한 예의 : 희사와 환대' 세미나 후기

작성자
김지현
작성일
2019-04-22 13:58
조회
159
한 말 한 되의 물같은 자카트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자카트’와 ‘라마단 금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건화씨가 ‘지폐 한 뭉치’를 들고 서있는 사진이 있는데 ‘현물 시장 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소생팀이 다녀온 이란 시장은 상품을 만드는 공방과 판매가 분리되지 않고, 여러 개의 기성품도 없으며, 정가 개념도 없고, 구매자가 마음에 들면 판매자가 먼저 가격을 깎아주는 자비로운(?) 흥정도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올리브로 만든 절임 반찬을 종류 별로 반찬통에 담아놓은 사진을 보면 영락없이 우리네 재래시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재래시장은 어쩌다 바람 쐬러 가는 곳,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상권, 외국인들의 관광지 정도로 여기지 익숙한 시장은 ‘편의점’,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입니다. 소생팀이 이란 시장에서 과거 재래시장의 향수를 느끼고 왔나보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혜원씨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곳에는 우리가 지나쳐온 ‘향수어린 낙후됨’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와 ‘맞짱’ 뜰만한 저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혜원씨의 에세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슬람 금융회사에서 ‘투기’를 금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투기’와 ‘투자’를 도대체 어떻게 구분한다는 것일까요. 이자율 높은 상품이 있다길래 가입했더니 손실 나도 보전해주지 않는 ‘펀드 상품’임을 한참 후에 알고 충격 받은 내 친구와 언니 직장 동료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한 때 유행했던 ‘차이나 펀드’는 투자의 위험성을 실전으로 알려주었지요. 예금하면 이자는 당연히 붙는 줄 아는 우리에 비해 이슬람은 수익이 나면 배당금을 예금주들에게 돌려준다고 합니다. 돈을 빌리면서 수익이 나기 전에 은행에 지불하는 ‘이자’와 돈을 벌어서 주는 ‘배당금’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에 발을 담그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미래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회비용’이라는 말로 개념화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세무법인에 근무할 때 제가 담당했던 건설회사는 자본금의 10배쯤 되는 돈을 대출 받아서 오피스텔 신축 분양하는 회사였습니다. 몇 달 뒤에 은행이 대출 채권을 다른 은행에 팔았고 사들인 은행은 또 다른 여러 채권과 합해서 금융 파생 상품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맨 처음 상품은 ‘오피스텔’ 밖에 없는데, 대출 채권이 ‘금융 상품’으로 변하는 바람에 오피스텔 분양 완료 여부에 따라 울고 웃을 사람들이 더 많아져버린 것이지요.

‘현물 시장’보다 ‘금융 자본 시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지금의 자본주의를 두고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고기 덩어리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계속 물을 부으면 육수 맛이 옅어질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서 액상 조미료를 첨가하다보면 어느 것이 진짜 고기 육수 맛인지 분간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제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투기, 투자, 금융 자본주의, 금융 파생상품 등은 진짜 ‘고기 국물’이 아닌데도 양을 계속 늘리다보니 ‘조미료’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조미료’는 다른 게 아니라 투자이든, 투기이든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란 곳곳에 ‘자카트’ 기부함이 있고 율법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나눔과 기부 문화는 사람 사는 곳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소생팀이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자카트’의 사회적 역할을 관찰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솔직히 ‘자카트’ 자체만 보면 다른 기부 문화보다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면하는 현물 경제 시스템이 당연한 사람들, 거리를 비록 어슬렁거릴지언정 현재에 두 발을 다 담그고 사는 젊은이들, 내가 노후에 살 집이 있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아즈미 아저씨. 이란인들의 삶을 듣다보니 그들이 행하는 ‘나눔’을 상상해보게 되었고, 제가 읽은 『장자』의 한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장주는 수레바퀴 자국 물 고인 곳에 살던 붕어에게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해서 물을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붕어는 발끈 성을 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지금 내가 늘 함께 하는 물을 잃어버려 내가 몸 둘 곳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나는 한 말 한 되의 물만 있으면 충분히 살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이처럼 말하니 차라리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 가서 찾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장자-外物篇』

‘자카트’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말 한 되의 물’을 나누다보면 그 힘으로 나누는 사람도 ‘물이 필요한’ 사람도 오늘은 살 수 있겠지요.

맛있는 축제, 라마단

라마단은 한 달 정도 이루어지는 집단 금식 문화입니다. 기독교인들의 단식기도, 단식투쟁을 떠올려 보면 ‘단식’은 삶과 죽음 그 경계선으로 자신을 내모는 비장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무슬림들이 라마단을 ‘축제’로 여긴다는 것과 어차피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을 왜 굶는 지가 궁금했습니다.

이슬람교는 인간의 욕망을 누르는 것보다 인정하는 종교라는 것을 지난 세미나에서 이미 들었습니다. ‘굶기’라는 고통을 종교에서 강요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영 선생님의 에세이에 ‘이런 점에서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통해 욕망과 다른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고 볼 수 있겠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하는 욕망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즉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무슬림들이 고안했고 그것이 ‘라마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규문>에서 지낸 지 이제 삼주 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회사 다닐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식사 시간이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주로 해결하는데 그래봤자 단골 식당은 열군데도 안 되고, 메뉴가 뻔한 데도 오늘 점심은 뭘 먹을 지를 고민합니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동안  점심 먹고 휴식도 가져야 하고, 가격도 신경 쓰이고, 비용을 지불한 밥상은 그저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됩니다. 반면 <규문>에서는 돌아가면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하고, 함께 먹고, 설거지를 합니다. 무 한 토막도 씻고 채 썰어서 볶아서 국을 끓이다 보면 써는 촉감, 볶는 소리, 음식이 익으면서 부엌을 채우는 온기, 강의하신 선생님과 학인 분들이 긴장감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까지가 다 한 끼 식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현재 음식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맛집을 찾고, 배달시켜먹고, 누군가가 해 놓은 음식에 대해서 까다로운 비평가 노릇하기를 좋아합니다. <규문>에 있다 보니 요리라는 게 새삼 단체 활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콩나물도 사람 손이 많다 보니 금방 다듬어지고, 연근 조림 하나라도 누가 맛있다고 거드는 말을 해주면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둘러앉은 사람들은 ‘굶기 체험’이라는 공통주제가 있고 서로가 오늘 겪은 경험을 공감하고 있으니 누구하나 소외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슬림들은 어쩌면 배고픔이라는 고통조차 소외의 대상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기꺼이 축제 행사로 삼은 게 아닐까요.

이란 여행을 다시 가고 싶다는 소생팀원들에게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데 반듯하게 예쁜 유럽은 이제 시시하다고 합니다. ‘자카트’와 ‘라마단’을 듣다보니 둘 다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서로가 얼굴을 마주보며 벌이는 흥정과 배고픔의 체험이 이루어지는 곳도 결국 몸이니까요. 소생팀이 표현할 수 없다는 그 ‘기운’은 결국 이란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기가 이방인들에게도 자연스레 옮겨진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닐지 짐작해봅니다.
전체 3

  • 2019-04-24 09:10
    지현 선생님의 생동감 넘치는 후기입니다. 지현 선생님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기분도 듭니다.
    희사와 환대 모두 우리 전체가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의례이군요. 그것도 특히 '몸'의 실감을 통해 타자와 내가 하나임을 일깨우는 과정! 이슬람 문화에서 정신과 신체를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해집니다. @.@

  • 2019-04-24 11:42
    진국과 조미료로 비교하는 것들이 참 신선합니다. 물론 조미료는 신선치 않겠지만요.
    실전에서 겪은 여러 상황을 대비 시켜서 쓴 후기는 진국인 듯합니다.
    세미나에서 글을 발표하신 선생님들과 후기를 쓰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규뮨에 계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함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 2019-04-24 13:37
    제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여기는 매주 화요일 장이 서지요. 그런데 오일장을 표방했을 뿐, 여기 장은 '수크'와는 전혀 다르지요. 요샌 시골 오일장도 거개가 자본화된 시장이라서 별 매력 없어요. 움마도 좋고 모스크도 좋고 환대의 모습도 좋은데, 오홍~~ '수크'가 이케 매력있는 곳이라니!! ㅎㅎㅎ 지현쌤 후기가 짱짱이라 이슬람이 더 빛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