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4주차 후기

작성자
무자성(길)
작성일
2018-11-29 13:24
조회
82
니체『선악의 저편』제 6.7장  2018.11.26 . 4주차 후기  임길례

우리 학자들

니체는 학자들을 늙은 처녀에 비유하면서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가치 창조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 인간의 귀중한 기능인 생산과 출산도 못하면서 즉 다른 가치를 생산하지도 못하면서 보상은 바란다고 비판한다. 그 보상은 자신의 명성이 태양처럼 빛나기를 바라며, 뿐만 아니라 명예와 인정을 받으려한다. 학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쁘고 위험한 것은 그의 속성 중 평범함에 본능이다. 이와 같은 속성을 지닌 동정의 종교로 그리스도교의 본래의 기술과도 닮아 있다고 보았다.

객관적인 인간에 대한 토론에서 “객관적인 인간은 사실 하나의 거울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니체는 객관적인 인간을 인식되기를 바라는 모든 것 앞에 복종하는 데 길들여져 있고, 인식하고 비추는 것 외에는 다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인간은 좀 더 강한 자의 소유가 된다. 즉 권력자나 종교의 논리에 편증해가는 존재라 한다. 이들은 값비싸면서 망가지기 쉽고 흐려지기 쉬운 계량기이자 예술품으로서의 반사경이기 때문에 소중히 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비아냥거린다.

토론에서 거울이 묘사가 깊이 있는 사고를 하거나 통찰하는 것을 의미지 하지는 않는다. 그냥 주어진 것을 답습하는 거나 습관대로 하는 것을 그냥 비추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인간은 인식되어진 것만 거울처럼 비추며 따라갈 뿐 새로운 가치를 평가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 또 다른 의견은 학자의 아상과 욕심이 거울에 투영된 것이 아닌가?

“만일 사람들이 그에게서 사랑과 증오를 원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은 신이나 여성 또는 동물이 이해하고 있는 사랑과 증오이다” 니체는 객관적인 인간이 사랑은 의도적인 것이며, 그의 증오는 인위적인 것이고, 오히려 힘의 기교이며 작은 허영이며 과장이다. 라고 말한다. 토론에서 신, 여성, 동물이 이해하고 있는 사랑과 증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탐 진치의(원초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니까 집착하는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성내는 감정들이 그들에게 일어난다. 다른 견해는 여성 신 동물이 하는 사랑과 증오는 자의식에 붙들려 있거나 허영심을 키우는 것이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정 들이 신과 여성 동물의 사랑과 증오가 아닐까?

“오늘날 ‘객관성. 과학성, 예술을 위한 예술, 의지에서 자유로운 순수 인식‘ 으로 진열장에 전시된 것 가운데 대부분은 단지 聖裝한 회의나 의지 마비증에 불과하다.” 니체는 실재로는 과학이나 심리학을 많이 공부해서 이것을 가져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니체가 바라보는 관점, 즉 가치창조를 얼마나 하고 있느냐에 따라 형이상학도 근대 철학자나 학자들도 그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가치를 평가하고 창조한다는 것을 뭘까?

“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자이자 입법자다. 그들은 우선 인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가를 규정하며, 모든 철학적 노동자의 과거를 극복한 모든 자의 준비 작업을 마음대로 처리한다. 이들이 창조적인 손으로 미래를 붙잡는다. 그들의 ‘인식’ 창조이며, 창조는 하나의 입법이며 진리를 향한 의지는 ‘힘에의 의지이다.’ 이러한 철학자들이 존재해야만 하지 않을까?” 니체가 말하는 가치 창조는 위의 관점에서 심리학자 회의주의자 공리주의자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토론은 인식의 창조나 힘에의 의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일상의 자리가 수행의 자리이다. 라는 의견도 있었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삶속에서 인식하는 것도 힘의 발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도 일종에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에의 의지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니체는 힘들이 대립과 충동을 통해 상호작용하면서 도덕이나 진리를 끊임없이 창조해 낸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속에도 매번 힘들이 충돌이 일어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서로 대립하면서 매번 다른 인식을 하게 하는 힘에 의지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치 평가라는 것이 내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림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종교를 대하는 인식, 학문을 접하는 인식, 철학자들을 보고 있는 기존의 인식에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할 때 가치의 창조가 가능하며 이것이 또한 탈 감각이고, 탈세속적인 것이며 새로운 도주 선을 그리는 것이 된다.

우리의 덕

“자신에게도 도덕적인 분별심이나 도덕적 식별의 섬세함이 있다. 고 믿게 하는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을 경계하라!”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타자를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고 피곤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니체도 이러한 인간은 우리를 비방하는 자나 방해하는 자들이 된다고 하면서도 비틀어서 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은 짓도 망각하고 끝내버린다고 비판한다.

도덕적 판결이란 “높은 정신성 자체는 오로지 도덕적인 특성의 마지막 잘못된 산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높은 정신성은 모든 상태 하나하나가 오랜 훈육과 연습을 통해 아마 여러 세대를 거치는 전체적인 연속과정에서 획득된 것이다.” 정신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높은 도덕은 오랜 세월동안 관습적으로 훈육되고 교육되어온 산물임을 말한다. 이러한 판단으로 위계질서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올바른 것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높은 정신성이란 것을 비판한다. 그러니까 니체는 이들의 높은 정신성을 엄격하게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신을 재해석하여 차이를 만들어 내는 도덕을 창조하라는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해석은 정신의 우월함만으로 도덕을 판단할 때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도덕은 배제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니체는 ‘여성 자체’에 대해 너무나도 여러 가지 의미로 말하고 있다. 니체가 말하는 여성에 대한 견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연했다. 토론 중에 니체가 말한 “배운다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 여성이 배운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잘못 변화하면 여성성 자체가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받아서 점원이나 근로노동자로 사회의 구성이 되는 쪽으로 밀려갈 거야 인지? 토론은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 니체가 말하는 것을 현상적으로 그대로만 볼 것인가 또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나의 해석은 니체가 시기적으로 계몽사상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장되면서 여성의 참여를 독려하던 분위기속에서 여성들이 선동되고 있는 점을 주시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민주주의진영이나 진보진영에서도 여성들을 끌어들여 이용하는 경우가 있던, 그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들이 주체성 없이 휩쓸리는 것을 보고 니체가 여성을 향한 우려와 냉소를 같이 보내는 것이 아닌가? 라는 해석이다.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그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럽이 일반적으로 추악해지는 최악의 진보에 속한다.” 니체가 이렇게 시도하려는 남성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오랫동안 학문을 깊이 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학문성과 자기 폭로에 서툰 시도가 백일하에 들러나므로 스스로 추악해 짐을 여성이 알아야 함을 말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의견은 니체는 계속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니체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쪽으로 힘에 의지가 기우는 것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보면 여성도 그 중에 한 부류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약함이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약함을 무기로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존재로 여성을 본 것이 아닌가? “여성이 스스로 여성의 머리에 깊이가 있고 여성의 가슴에 정의 가 있다고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대체로 생각해보면 ‘여성’이 지금까지 여성 자신에게서 결코 우리에게서가 아니라 가장 경멸을 받아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우리 남성들은 여성이 계몽에 의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 자신에게 경멸을 받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성 스스로 남성에 비해 열등하거나 여성은 이러해야 한다고 내면화해서 규정한 것을 말하는 것인가? 계몽사상이 여성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니체는 여성이 산업 정신이나 점원으로서의 경제적 법적 독립성을 얻는 것이 여성적인 본능은 더욱 약화되고 둔화된다고 말하면서 이것은 여성을 퇴보하게 한다고 말한다. 토론에서 어떻게 보면 니체는 노예가 해방되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 노동자 노예가 되었기에 마찬가지로 여성의 해방도 해방이아니라 새로운 산업역군으로 노동자의 역할을 대변할 뿐이다.

우리의 공통된 의견은 니체의 어마 무시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식으로는 니체가 말하는 ‘여성 자체’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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