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11월 2일 오! 카프카세미나_후기

작성자
gini
작성일
2017-11-04 00:02
조회
74
리얼리즘도 표현주의도 아닌 카프카의 언어 사용

 

지난주에 읽은 카프카의 작품들은 ‘신문이나 잡지에만 실린’ 단편들이다. 이 작품들이 발표된 곳은 <쿠르트 볼프 출판사>의 지면들이다. 출판사를 굳이 언급하는–물론 선생님이- 이유는 이 출판사가 20세기 예술운동 중 하나인 ‘표현주의’의 중심이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문학사에서는 카프카를 표현주의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이론異論이 있는 모양이다.

 

표현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유럽예술의 전통적 규범으로 자리 잡은 ‘재현, 리얼리즘’을 거부하는 경향이다. 리얼리즘은 또 무엇인지…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표현주의는 무엇인지 사전의 도움을 받아 감을 잡아보면,

 

표현주의자들은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회화의 선, 형태, 색채 등은 그것의 표현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되었으며,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그러니까 리얼리즘 예술은 선, 형태, 색채를 이용해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던 것이고 표현주의는 이것에 반대하면서 예술의 목적이 감정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마티스, 샤갈, 클림트, 쉴레 등이 표현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 화가들이다. 클림트의 [키스]나 샤갈의 [푸른 빛의 서커스], [마을과 나] 같은 그림들을 떠올려보자. 배경과 사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겹치며,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이 서로서로 침투하고 있다. 공간은 파도처럼 굽이치고, 원근법은 완벽히 무시된다. 선과 형태와 색채가 그야말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언 듯 카프카의 글은 표현주의 그림들과 닮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카프카 자신이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단순도식화해보면 리얼리즘은 형식을 표현주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카프카의 글은 재현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림의 도구가 선, 형태, 색채라면 글의 도구는 언어다. 카프카는 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들은 하나같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말해요. 그들은 마치 언어가 오직 자신들의 것인 양 행동해요. 그런데 언어는 살아 있는 자들에게 단지 무기한으로 빌려 준 것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언어를 단지 사용할 따름이죠. 사실 언어는 죽은 자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것이에요. 우리는 언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만 해요.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점을 망각하죠. 그들은 언어의 파괴자예요. 중대한 범죄죠. 언어의 훼손은 항상 감정의 훼손과 두뇌의 훼손이며, 세계를 암흑에 빠트리는 것이고 얼어붙게 하는 거예요.(구스타브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120)

 

우리는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글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적은 경험으로도 써놓은 글이 우리의 ‘바로 그 감정과 생각’이 아니라는 찜찜함을 우리는 안다. 글의 도구는 언어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슬프다’라는 언어는 슬픔의 감정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즉 언어가 가리키는 것을 아무리 멀리 파들어가도 거기는 아무 것도 없는 공란인 것이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한계를 갖는 언어라도 글의 유일한 도구라는 사실을 카프카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한다’고 알려준다.

 

언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게 어떤 건지를 (나는)모른다. 그러나 카프카의 글이 주는 효과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의 글 중 ‘이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중 어디에 해당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그냥 그 사실이다. 글에서 하나의 감정이 느껴지려면 글을 구성하고 있는 문장 하나하나, 낱말 하나하나가 그 감정에 복무하는 어울리는 것들이어야 한다. 이게 슬프다는 건지, 기쁘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맞다는 건지, 틀리다는 건지를 가늠할 수 없는 글이라면 그건 카프카가 글을 그렇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카프카가 보고 있는 세계일 텐데, 왠지 그것이 더 실재와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감정은 혹은 생각은 단 하나로 백프로인 경우는 없지 않은가. 카프카는 감정도 생각도 인물의 제스츄어를 표현하는 언어로 쓴다. 인물도 사람인지 짐승인지가 섞여있고 그 인물의 성격도 확정적이지 않다. 능동과 수동도 구분되지 않고, 의지적인 것과 노예적인 것도 구분되지 않는다. 카프카의 세계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리얼리즘도 표현주의도 아닌 카프카의 세계를 나는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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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4 22:09
    저는 이번주에 특히 <다리>가 좋았습니다. 자신이 실어나르는 것에 대한 의심, 마치 언어 그 자체가 얼굴을 쓰윽 내밀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각자가 쓰고 있는 이 '언어'를 마치 생물체처럼 느낄 수 있다면! 카프카는 정말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