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프카

11.16 카프카 공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7-11-13 18:23
조회
89
2017.11.9


# 비유와 현실

카프카 작품에는 오드라데크나 튀기처럼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존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측량사나 아들과 같이 언어에 걸려있는 자들도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계속 언어를 벗어나는 길을 가지요. <비유에 대하여>라는 작품은 카프카의 짧은 언어관을 보여주는 단편이라 할 수 있을거예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자의 말들이 언제나 일상 생활에 적용될 수 없는 비유일 뿐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일상생활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너무 멋진 문장 아닙니까? //ㅅ//) 아감벤은 이 작품에 대하여 말하길, 말과 현실 사이에는 아무런 간극도 없다고 하였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란 비유에 다름 아니라고요. 실로 우리는 언어를 떠나 살 수 없습니다. 모든 일상의 면면들이 모두 이야기 속에 있고, 비유가 우리의 현실을 지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인간은 언어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근데 언어란 인간의 것이 아니지요. <도시 문장>의 사람들이 바벨탑과도 같은 언어체계를 세워나가려 할 때, 이 탑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그때 그때, 부분 부분적으로 사용하긴 하지만 그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지요.


# 관료제

“그러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도시에서 수도로부터 정해진 모든 것을 조용히 따르고 있는지” (<거절>, 586쪽)

<거절>은 관료제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그 누구도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역시 공무원일 뿐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포세이돈은 인간 위에서 바다를 관장하며 신적 위엄을 가졌던 자입니다. 그런데 카프카의 프리즘을 통과한 <포세이돈>은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탁자에 앉아 셈을 하는 공무원이 되어있습니다. 카프카는 왜 포세이돈을 소급해온 것일까요? 관료제에서는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어떤 초월적 위치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가 높은 위치에 있다해도 책상에 앉아 있다는 점에서는 비정규직과 다를 게 없습니다. 관료제는 위치가 중요하지만, 그 안에 누가 들어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지요. 우린 다 위치 속에서 살아갑니다. 포세이돈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번 세미나의 중요한 작품은 <어느 개의 연구>였는데, 후기 올려주실 보영이 자세히 써주시리라 믿고 이만 마칩니다 ^^ 다음 시간에는 카프카를 다뤘던 철학자들의 글을 읽습니다.

<카프카 작품 속에 나타난 희망과 부조리>, 까뮈 ... 지은

<카프카의 소묘>, 아도르노 ... 지은

<프란츠 카프카에 대한 재평가>, 한나 아렌트 ... 지니샘

<법 앞에서>, 자크 데리다 ... 지니샘

<조수들>, 아감벤 ... 성연샘

<오드라텍의 세계>, 아감벤 ... 성연샘

보영은 단편집에서 못 읽었던 작품들 중 골라서 써오기로 하였구요,

다음 주 간식은 보영~

그럼 다음주에 만나요 0-0  //
전체 2

  • 2017-11-14 10:50
    저 위대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 그는 "태초부터 바다의 신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명령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바다의 신이지만, 공무에 바빠 바다를 보지 못하는. 대양의 심연에 앉아 쉬지 않고 셈만 하는 공무원 포세이돈. 카프카는 우리 삶 전체가 하나의 역할 놀이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거지요. "태초부터 정해져 있었다더라~"고 하는, 단지 그 이유에 얽매인 삶이라니! 아흑!

  • 2017-11-15 09:41
    앗! 제가 공지를 질못드렸네요. 이번 후기와 다음 간식은 보영입니다~ 지송 ㅠ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