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인류학 숙제방

장화홍련, 헨젤과 그레텔

작성자
지은
작성일
2017-10-14 00:47
조회
29

제일 약한 존재를 단련시켜주는 ‘계모 트레이너’


 

어쩌면 영화 <장화, 홍련>으로 더 잘 알려진 <장화홍련전>을 이번에 처음 텍스트로 읽게 됐다. 영화의 이미지도 있고 무서울것 같아 약간의 긴장과 함께 읽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어쨌든 <장화홍련전>은 여느 동화와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데, 친모가 일찍 죽고 계모가 남은 아이들을 구박한다는 설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이러한 설정이 난무(?)한 가운데 <장화홍련전>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헨젤과 그레텔>을 같이 가지고 들어와 비교를 하려 한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계모가 아이들을 밖으로 내몰고, 죽이거나 죽도록 내버려 두며, 이 과정에서 막내아이, 즉 제일 ‘약한’ 아이의 활약으로 상황의 반전을 꾀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밖으로 내몰아 생사의 문턱으로 내모는 과정이 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 ‘트레이너’가 된 셈이다.

장화와 홍련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 모두 계모가 밖으로 내몰기 전에는 집 한 번 나가보지 못한 ‘집안의 물건’과도 같다. 장화와 홍련은 태어나서 여자라는 이유로 자라는 내내 집 문턱을 넘어보지 못할 뿐더러,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지만 그 안에서의 역할 또한 미미하다. 친모가 세상을 떠난 후 장화가 친모의 살림살이를 대신 하지만, 계모가 안주인으로 들어온 이후 장화홍련은 집 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만 할 뿐이다. 헨젤과 그레텔 또한 집 밖의 세상엔 무지하다. 요즘 세상이야 자식들이 부모님 일을 거들어 주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본분’이라지만 저 옛날에도 집에서만 머물 뿐이라니, 가난한 살림에 계모가 헨젤과 그레텔을 먹여 살리기 버거워하는 것은 그렇게 이해가지 않을 일만은 아닌것 같다.

집안에서 딱히 할 일이 없고 계모의 화만 돋울 뿐이니, 장화와 홍련 그리고 헨젤과 그레텔은 쫓겨나는데, 계모의 계략으로 장화는 죽임을 당하고 헨젤과 그레텔은 숲 속에 버림을 받는다. 이 때 주목할 것은 집 안에서는 무력하던 아이들이 자신의 위기상황을 헤쳐나갈 기지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특히 ‘막내’들이 그렇다. 장화의 죽음을 안 홍련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홍련의 죽음은 모든 것을 포기한 이의 수동적 선택이 아니다. 용왕의 심부름을 하며 이승에서의 일을 잊은듯 지내는 장화와 달리, 홍련은 죽고 나서 계속 사또님을 찾아가 억울함을 풀려 애쓰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사또가 발견하는 귀신은 장화가 아닌 홍련이며, 이후 장화홍련은 “홍련형제”라 불린다. 어쨌든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사또는 계모 허씨를 죽음으로써 단죄한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또한 상황을 타개할 전환점을 만드는 이는 막내 그레텔이다. 헨젤은 우리에 갇힌 상황에서, 그레텔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해 가마 속으로 할머니를 넣어버린다. 홍련과 그레텔 모두 이 ‘반전’의 순간 전에는 존재감 자체가 미미했던 이들이지만, 집 밖에서의 그들은 상황을 전혀 다른 국면으로 바꿔버린다. 막내의 존재성이 원래 그런 것일까? 장화는 죽어서도 용왕의 심부름을 했고, 헨젤은 우리에 갇히고 말았지만 홍련과 그레텔은 그러한 속박에 갇히지 않는다. 이러고 보니 계모는 ‘집안의 물건’으로만 자리하던 그들의 존재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 ‘고마운’ 이가 된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