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Monday

<안티 오이디푸스> 읽기 8강 "전제 군주 기계와 자본주의 기계"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9-04-14 00:35
조회
114
지난 시간에는 원시 영토 기계에 대한 들뢰즈 가타리의 분석을 살펴보았죠. 이들의 분석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는 원시사회를 역사 이전의 자연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들뢰즈 가타리는 원시사회를 문명이나 국가의 전단계로 보기를 거부합니다.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은 국가를, 그리고 자본주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둔갑시키기 때문이죠. 들뢰즈 가타리는 자본주의라는 결과를 기원으로 소급하여 목적론적 역사를 구성하려는 시도를 거부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원시 사회는 욕망적 생산을 기입하는 고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으며, 국가나 자본주의를 예비하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에 저항하고 자본주의 기계의 등장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은 나카자와 신이치나 피에르 클라스트르 같은 인류학자들에게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신이치에 따르면 원시사회는 수장과 샤먼을 분리하는 대칭적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속적 시간을 지배하는 리더와 비일상의 시간을 관장하는 리더가 구분되어 있었다는 것이죠. 여기에는 자연과 인간사회를 나란히 놓는 대칭적 사고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칭성은, 세속의 리더가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끔 하는 원리로 작동했습니다. 국가가 탄생하는 것은 이러한 대칭성이 깨질 때입니다. 자연의 것이었던 힘의 원천을 자신의 수중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왕이 등장할 때.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를 국가 ‘이전’으로 보기를 거부하면서, 원시사회에 과잉과 축적, 독점을 막는 내적 구조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축제나 외부인들의 방문 등을 기회로 삼아 끊임없이 잉여를 소진했습니다. 그리고 잉여를 낳는 과잉노동 자체를 경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류학적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국가와 원시사회 사이에 어떤 ‘단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러한 ‘단절’이 언급되는 순간 뭔지 모를 찜찜함이 느껴집니다. 뭔가 어째서 국가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연속적 시간관의 역사 서술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안하달까요.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하는 게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단절을 말할 때 우리는 국가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질문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국가’를 생각할 때 홉스의 계약론 같은 것들을 떠올리는데, 국가의 출현 자체가 그러한 합리성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면, 국가의 자명성에 대한 우리의 전제들을 의심해볼 수 있겠죠. 반대로 국가의 자연적인 기원을 정초하는 역사 서술들은 질문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뢰즈 가타리에 따르면 ‘국가’는 원시 영토 기계의 코드화된 흐름들을 초월적인 통일체로 초코드화함으로써 등장합니다. “국가는 상대적으로 고립돼 있고 따로 기능하는 부분집합들을 통합하는 초월적인 우월한 통일체”입니다. 전제군주는 근친상간을 통해 신과의 직접적인 혈연을 맺고 자신을 기원으로 하는 새로운 혈연을 조직합니다. 이런 면에서 건국 신화는 내공적 상태를 표현하는 원시 부족민들의 신화와는 굉장히 다른 양상을 띤다고 합니다. 아무튼 전제군주 기계는 전제군주를 꼭대기에 두고 측면에 관료장치를, 바닥에는 노동부품으로서의 신민들을 위치시키는 피라미드를 형성합니다. 원시영토 기계가 문신이나 낙인을 통해 신체를 영토에 기입하는 신체적 표기행위를 통해 작동했다면, 전제군주 기계는 ‘왕의 글-사제의 해석’을 주로 하는 기록체계로 변환합니다. 왕의 초월적인 목소리와 그것의 해석을 독점한 서기나 법률가.

재밌었던 것은, 전제군주 기계에서도 ‘오이디푸스’의 망령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여기서도 정신분석은 놀림감이 됩니다. 전제군주 기계의 성립에는 항상 근친상간 코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근친상간 욕망의 보편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죠. 전제군주 기계에서 근친상간은 욕망의 대표자가 아니라 ‘억압하는 재현작용’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니까 근친상간은 전제군주의 예외성을 입증하고 새로운 혈연을 조직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것일 뿐이라는 거죠.

지난 강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자본주의 기계 안에서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국가와 자본을 각각 독립적 영역에 속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반면에 국가는 영토를 수호하고 복지를 제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들의 이윤추구를 억제한다는 식으로.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주의 기계의 내부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습니다. 전제군주 기계에서와 달리 국가는 “초코드화하는 통일체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국가 자신이 탈코드화된 흐름의 장에서 생산”됩니다. 이제 국가는 자본 외부에서 그것의 흐름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흐름 자체에 의해서 규정되고 생산된다는 것. 이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예는, 국가가 벌인 전쟁에 의한 파괴가 거대한 경제적 수요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더 이상 경제성장의 여지가 없어진 지금 전쟁이 자본의 활로를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죠. 2012년 전세계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카다피 암살 후 내전을 겪고 있는 리비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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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4 00:57
    국가와 원시사회 사이를 합리적 설명으로 메우지 않고 단절로 이해할때 더 많은 질문을 해볼 수 있군요!!
    전제군주 사회에서는 그저 전제군주의 예외성을 입증할뿐인 오이디푸스. 원시사회와 마찬가지로 전제군주 사회에서도 오이디푸스가 놀림감이 된다는 게 재밌습니다.
    후기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