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한강

천운 3 (外編)

작성자
다음엇지
작성일
2018-12-25 19:14
조회
175
東洋美學의 중요한 개념인 "咸池之樂(咸池樂)"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이 글의 키워드가 됩니다. 咸은 易을 비추어 볼 때 感으로 봐야 합니다. 池로 표현하고 있지만, 지상의 모든 것(天地之間)과 感應하는 音樂으로서, 咸池樂은 天地自然之音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경지가 '懼', '怠', '惑' 이렇게 3개의 단계로 제시됩니다. 이들을 설명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입니다. 특히,기본 뼈대를 설명하고 부연설명 한 후 제시된 키워드들을 규정하는 首尾雙關의 완결형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咸池之樂 ]

北門成問於黃帝曰:「帝張咸池之樂於洞庭之野,吾始聞之懼,復聞之怠,卒聞之而惑,蕩蕩默默,乃不自得。」
북문성이 황제에게 물었다: "제께서 동정의 들판에서 함지악(咸池樂)을 펼치시니, 저는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고, 다음에는 몸이 弛緩되더니, 마지막에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정신은 아득하고 말문이 막히더니 스스로 意識이 없게 되었습니다. "

· 洞庭之野: 天地(池)之間.
· 蕩蕩: 平易之容. 蕩은 보통 물이 거칠게 흘러가는 모양인데, 여기에서는 치우침이 없이 無偏平坦하며 넓고 아득한 모양을 의미. '心之悠然之容'으로 이해해도 될 듯.
· 默默: 無知之貌.
· 不自得: 芒(慌)然坐忘, 物我俱喪, 乃不自得. 玄理를 몸으로 깨닫고 정신이 아득하고 말문이 막히더니 芒然히 坐忘하게 되어 세상과 내가 '不自識也'. '俱'를 유심히 보자, 바로 앞에 이어지는 莊子가 仁(人)을 설명할 때 '兼'忘天下, 天下'兼'忘娥 한 것과 통하는 바가 있음.

帝曰:「汝殆其然哉!吾奏之以人,徵之以天,行之以禮義,建之以大清。夫至樂者,先應之以人事,順之以天理,行之以五德,應之以自然,然後調理四時,太和萬物。四時迭起,萬物循生;一盛一衰,文武倫經;一清一濁,陰陽調和,流光其聲;蟄蟲始作,吾驚之以雷霆;其卒無尾,其始無首;一死一生,一僨一起;所常無窮,而一不可待。汝故懼也。
황제가 말했다. "그대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요! 내가 함지악을 연주하는 것은 인간(세상)을 보이고, 천리를 따르고, 예의를 행하여, 太淸(自然, 道)에 그것을 세운 것이요. 최고 수준의 음악은 우선 사람의 일(정치)을 표현하고, 천리를 따르고, 예의를 행하며, 자연을 드러냅니다. 그런 연후에야 때를 조절하여 원만하게 세상의 균형을 맞추게 됩니다. 사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은 번갈아 일어나고 (바뀌고), 만물이 이치에 따라서 생겨(그리고 죽음)나고 ; 한 번 盛하고 한 번 衰해야 음양이 질서가 있게 되며 ; 한 번 맑고 한 번 탁해야 음양이 조화가 되고, 그 소리가 찬란히 넘쳐 흐르게 됩니다 ; 동면하던 동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는 천둥(같은 소리)으로 놀라게 합니다; 끝이되 꼬리가 없고, 시작이되 머리가 없습니다 ; 그쳤는가 하면 다시 살아나고, 낮아지는가 하면 다시 높아집니다 ; 항상된 것은 끝이 없고, 모든 존재는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래서 놀랐을 것이오."

· 奏: 應也. (인간 세상이 정한 대로) 따라 연주함.
· 徵: 順也. 趙諫議本徵作徽. (자연의 이치를) 좇아 연주함. 원문 그대로 천리를 '불러냈다(徵)'는 의미도 통하나, 천리를 '아름답게 했다(徽)'는 것도 멋있다. '徽'는 이 곳에 씌인 것 때문에 '연주하다'는 뜻이 사전에 등록됨.
· 太淸: 天道(自然)也. 즉, 道에 應한 것.
· 調理四時,太和萬物: 동양 음악론, 예술론의 최종 목표.
· 文武: 夏盛冬衰, 春文秋武.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
· 流光其聲: 聲은 자연의 소리/리듬, 음악의 흐름이므로 流, 光은 '널리 흘러 퍼진다'는 '廣'으로 고쳐 해석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연이 이 세상에 흘러넘쳐 빛나게 된다, 잘 된다, 멋있게 된다'는 해석도 아름답다.
· 其卒無尾,其始無首: 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자연의 순환.
· 一僨一起: 一下一上
· 所常無窮,而一不可待: 변하지 않는 것은 끊없는 변화이며, 세상 모든 존재는 기댈 곳이 없다. 흐름에 맡기며 알아서 잘 살아간다고 볼 수 있고, 변화 속에서 예측은 불가하다.
· 故懼也: 자연의 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첫번쨰 느끼는 감정은 외소함이고 두려움이다.
※ 夫至樂者 ~ 萬物 (三十五字)는 앞 문장의 註釋 이라 여겨 번역하지 않기도 함.


吾又奏之以陰陽之和,燭之以日月之明;其聲能短能長,能柔能剛;變化齊一,不主故常;在谷滿谷,在阬滿阬;塗郤守神,以物為量。其聲揮綽,其名高明。是故鬼神守其幽,日月星辰行其紀。吾止之於有窮,流之於無止。予欲慮之而不能知也,望之而不能見也,逐之而不能及也,儻然立於四虛之道,倚於槁梧而吟。目知窮乎所欲見,力屈乎所欲逐,吾既不及已夫!形充空虛,乃至委蛇。汝委蛇,故怠。

내(황제)가 다시 함지악을 연주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와 일월의 밝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그 소리는 자유자재(能)로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며, 부드럽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여 ; 변과 화가 같아지고, 낡은 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 골짜기를 만나면 골을 가득 채우고, 구덩이가 있으면 구덩이를 가득 채웁니다 ; (소리로) 틈을 채워 가면서 정신을 지키고, 대상에 따라 기량을 맞춥니다 ; 그 소리는 찬란히 넘쳐흐르게 되고, 그러한 음악이 (모든 것을 다 밝히는) 최고의 수준이 됩니다. 그리하여 귀신은 그 유계를 지키고, 일월성신은 그 궤도를 지키지요. 나도 그것을 생각해 보려 해도 알 수가 없고, 그를 볼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쫓아 가려고 해도 미치지 않아, 멍하니 사방이 비어 있는 길에서, 마른 오동나무에 기대서 읊조릴 뿐입니다. 눈으로 보고 인지하는 것으로는 보고자 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힘으로 하면 쫓아가려고 하는 것에 꺾이게 되어, 나는 이미 이런 단계에 갈 수가 없답니다! 몸을 텅 비워 이내 위이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요. 그대도 委蛇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弛緩(평안한 안일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 燭: 연주하다(보이다), 明(밝음)을 연주하기 때문에 燭으로 씀.
· 能: 自由自在로. 調理를 의미.
· 變化齊一, 不主故常: 陰陽之和, 日月之明의 變化에 나의 음악이 같이 나아간다. 그래서 이전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음. (※ 장자에서 主는 머문다는 住, 居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 塗郤守神: 閉心知之孔郤, 守凝寂之精神. 욕망이나 여러가지가 나오는 어떤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정신을 지킬 수 있음.
· 以物為量: 物은 나를 뺀 모든 것, 내가 상대하고 있는 객체이다. 장자의 대표적인 사유로 그에 맞춰 내가 대응한다. 物에 의해 量이 결정됨.
· 鬼神守其幽: 人物居基顯明, 鬼神守其幽昧, 各得基所而不上撓 인간은 드러난 존재로서 살고, 귀신은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키고 있다. 각자가 그 거할 바를 얻어 서로의 존재를 흔들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답게, 귀신은 귀신답게 太和를 의미.
· 予欲慮之而不能知也,望之而不能見也,逐之而不能及也: 是謂恍惚.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老子十四章) (※ 여기에서는 予(나)로 되어 있으나, 많은 경우 子(너, 그대)로도 해석함)
· 四虛之道: 道의 空間性. (※ 장자에서는 道를 볼 때 상대성이론에서 처럼 時空間을 엮어 보는 것에 유의)
· 目知窮乎所欲見: 目과 知를 각각 나의 감각으로 보고, 인지하는으로 푼다. 인간의 감각과 지각으로는 이를 수 없는 경지를 말함. (※ 目이 보고자하는 것으로 知가 정해진다고 풀어도 통할 듯)
· 委蛇: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내부가 텅 비면서 꼬불꼬불해 진 것이다. 즉, 내가 텅 비면서 내 안에 뭐든지 들어와 채울 수 있는 유연의 단계에 이른 것
· 怠: 委蛇의 단계에 이르면 空虛해 지면서 弛緩된다. 坐忘으로 가고, (※ 본문에서는 이완의 상태를 '평안한 안일감'으로 표현했는데,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이 심오한 우조조화의 일환임을 심안으로 깨닫고 근심이 없어져 마음이 태평해 졌다는 뜻으로도 해석)

吾又奏之以無怠之聲,調之以自然之命,故若混逐叢生,林樂而無形;布揮而不曳,幽昏而無聲。動於無方,居於窈冥;或謂之死,或謂之生;或謂之實,或謂之榮;行流散徙,不主常聲。世疑之,稽於聖人。聖也者,達於情而遂於命也。天機不張而五官皆備,此之謂天樂,無言而心說。故有焱氏為之頌曰:『聽之不聞其聲,視之不見其形,充滿天地,苞裏六極。』汝欲聽之而無接焉,而故惑也。
내(황제)가 다시 함지악을 연주하는 것은 無怠之聲으로 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하기를 自然之命으로 하여, 만물이 무더기로 섞이고 따라가는 것과 같고, 모두가 무리지어 즐기나 고정된 형체는 없습니다. ; 넘처 흘러 퍼져나가나 흔적이 없고, 알 수 없는 깊은 것까지 끄집어 내어 표현하나 소리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특정된 장소가 없이 모두 다 움직이고, 절대적인 고요함에 머뭅니다; 누구는 이를 '고요하다'고 하고, 누구는 이를 '생명력'이라고 합니다 ; 누구는 이를 '열매'라고 하고, 누구는 이를 '꽃'이라고 하지요. ; 이런 소리가 전 우주에 다 퍼지면서 흩어지기도 하고 옮겨가기도 하며, 어떤 특정한 음계에 머무르지(포획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를 의심하여, 성인에게 견줍니다. 성인이라는 사람은 가지고 태어난 정을 통하게 하고, 주어진 명을 다 이룹니다. 천기는 연주하지 않으나 내 감각으로 다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하늘의 음악이라고 하며, 말하지 않으나 마음으로 기쁩니다. 그리하여 유염씨가 찬송한 바가 이렇습니다: "듣고자 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고자 해도 그 형체를 볼 수 없으나, 천지간에 충만하고, 온세상을 모두 다 감싼다." 그대가 듣고자 하여도 닿을 수 없으니, 알 수 없게(迷惑) 된 것이요."

· 無怠之聲: 여러가지 해석의 시도가 있으나, 아무도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玄妙之道 로 봐야 하겠다.
· 世疑之,稽於聖人: '사람'을 통해서 경지를 보고 체험하는 방식이 동양 사상에 일관된다. '성인'을 보고, 막연한 어떤 것이 저런 것인가 보다 하는 것. 바로 뒤에 '聖也者(성인이라는 사람은)'이 나온다. (※ 보통은 세상은 이를 알 수 없어 성인에게 묻는다고 해석)
· 達於情而遂於命也: 所言聖者, 更無他義也, 通有物之情, 順自然之命, 故謂之聖. 성이라는 것은 남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情(實相)에 통하고 자연지命을 따르는 것이다. 聖 글자 자체를 봐도 귀로 듣고 말하고 거기에 맡겨라. 이치를 따르는 것이고 聖이 바로 而順.
· 天機: 自然之樞機. 자연의 고동. 움직임에 집중하면 '動' 이 되는 것이고,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중심으로 보면 道가 됨.
· 五官: 감각기관. 내가 비어 있어야 하고, 나의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體凝.
· 惑: 聖人에 빗대고 있으니, 接하지 못하는 北門成과 우리같은 凡人들은 방향을 잃게 되어 迷惑되는 것

樂也者,始於懼,懼故祟;吾又次之以怠,怠故遁;卒之於惑,惑故愚;愚故道,道可載而與之俱也。」
음악이라는 것은, 두려움에서 시작하는데, 두렵기 때문에 장애가 됩니다; 내가 또 그 다음에 함지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弛緩하게 되면, 마음이 비워져 자신이 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함지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迷惑되게 하면, 알 수 없으므로 어리석게 됩니다 ; 어리석기 때문에 道에 이를 수 있고, 道를 싣고 같이 갈 수 있게 됩니다.

※ 첫句節과의 首尾雙關法으로 구성
· 懼故祟: 祟은 調理와 太和의 단계로 가는 데 장애가 된다.
· 怠故遁: 遁은 소멸로 본다. 몸이 공허해져 이완되면 내면에 빈 공간을 두게 되며, 그것을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으로 봄
· 惑故愚: 첫句節에서 蕩蕩默默이 되는 것을 설명함. 어떤 식견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도에 이를 수 있다. 無知/無用의 단계고, 노자에서도 도를 체득한 사람은 어리숙해 보인다고 하고 있다. 이를 座忘의 단계로 볼 수 있겠다.
· 道可載而與之俱也: 乃不自得과 對句가 된다. 도와 함께 같이 가리라.

※ 첫번째 단계는 거대한 자연(형이하)의 세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두번째 단계는 형이상으로 넘어가 그 곳에 머무르지 않는 변과 화를 보여 준다. 마지막은 정형화되거나 어느 시공간에 머물지 않고 모든 존재를 빠짐없이 아우르는 경지가 있고 이를 통해 도에 이르게 된다.
※ 懼에서 겸손함을, 怠에서 나를 비우고, 惑에서 결국 齊物論에서 眞僞是非를 따지지 않는 마음분별이 사라지는 단계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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