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주역과 글쓰기 3학기 3주차 강의(8.15) 후기

작성자
정랑
작성일
2021-08-19 17:47
조회
114
때에 맞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살아가기

3학기 3주차(8/15)에는 감(坎)을 상효로 하는 괘 중 수화기제, 수뢰둔, 수풍정 괘를 공부했습니다. 기제괘와 둔괘는 끝과 시작, 일의 끝맺음과 초창기에 어떤 자세로, 무엇을 경계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정괘에서는 덕이란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발현되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야 덕이라고 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주역의 64괘는 천변만화하는 인간의 삶의 과정을 64개의 샘플로 구성하여 스토리로 만든 것이며 알고보면 모두 당연한 것이라고 채운샘은 말씀하셨는데 여러 괘들을 공부하면서 참으로 상황상황마다의 괘를 만든 게 신비롭기도 하고 당연한 일을 해 나가는 일이 참 어렵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럼 이번 주에 배운 괘들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수뢰둔(水雷屯) : 혼돈의 시기를 살아가는 방법

의 괘상은 혼돈이며 음양이 섞여 있기는 하되 구체적인 사물은 형성되기 이전입니다. 아직 질서라는 것이 생겨나기 이전, 무질서한 모습이 아니라 무규정의 상태입니다. 괘의 구조는 상괘가 감, 하괘는 진으로 두 괘 모두 음양이 들어있어 섞일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움직임의 주체가 되는 양이 감괘에는 가운데에, 진괘에는 제일 아래에 하나씩 있죠. 전체적으로 음효가 4개, 양효가 2개인지라 음에 비해 양의 힘이 미약하여 활발하게 섞이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직 구체적으로 질서지워지지 못하고 있는 거죠.

우리의 삶으로 비유하면 유아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초심자들의 심리 상태입니다. 이때는 항상 우왕좌왕하고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막막하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 수도 있죠.다. 괘사를 보면

,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둔괘는 크게 형통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때 利建侯, 제후를 세우라는 것인데 우리가 왕은 아니니까 우리에게 적용하면 도움이 될 존재를 찾으라고 합니다. 무규정의 막막한 상황에서 혼자 뭔가 하겠다고 하면 길을 잃어 뻘짓을 하는 일도 생긴다고 효사에서 알려줍니다. 육삼효, 卽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幾, 不如舍, 往吝. 산지기가 없이 사냥하러 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니 빨리 하던 일을 중단하라고 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기도 하고 우왕좌왕 하는 상황. 둔괘에서 세 번이나 나오는 말이 乘馬班如입니다. 말을 탔다가 내리는 것이니 나아가려고 하다 주저하는 것입니다. 저도 새로운 일에 덤벼들기는 잘하는데 늘 어리버리하여 헤매기도 하고 진행하다가 계속 진행할까 그만둘까 망설이던 장면이 떠올라 재미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인생의 길을 찾고자 공부를 하는 것도 앞선 분들의 삶에서 지혜를 배우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를, 무엇을 제후로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이 남겠지만요. 뭔가 잘 모를 때는 선배를 찾아라. 글쓰기에서도 먼저 글을 써 본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글쓰기를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머뭇머뭇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라는 걸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게 쉬운 일이 아닌 게 강의 후기를 멋지게 쓰신 샘들을 보면서 따라 하고자 하나 잘 안되네요. 먼저 공부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따라하는 것도 역량인 것 같습니다.)

 

2. 수화기제(水火旣濟) : 일을 완성하고 나면 또 다른 시도를...

둔괘가 시작 때의 막막함이라면 기제旣濟괘는 모든 게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을 때의 질서지워짐입니다. 우리 조의 토론 과정에서 기제의 의미가 무엇일까?로 시작했습니다. 조원 중 한 분은 자신의 삶에서 ‘완성’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괘와 삶의 과정과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다고도 했고 또 다른 분은 어떤 조직에서 틀이 만들어진 시기? 결혼, 졸업 등 하나의 단계를 넘어간 시기라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제괘를 이해하기 위해 괘의 구조를 볼까요? 상괘가 물, 하괘가 불입니다. 불이 아래에서 타올라 위에 있는 물을 적당하게 잘 데워주면 두루두루 좋습니다. 그러나 이 괘는 언제든 삐긋할 위험이 있습니다. 불이 너무 강하면 물이 증발하거나 졸아들고, 물이 너무 많으면 아래에 있는 불을 꺼버립니다. 완성되어 안정된 괘에도 항상 이런 위험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대립적인 힘은 서로의 역량을 키워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하나를 제거시킬 위험을 언제나 갖고 있다. 마치 완성된 큐브를 보면 어그러지게 하고 싶듯 말이죠. 우리 삶에서도 모든 위험은 안정된 것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 굴러가면 관성이 생겨나고 새로움이 없이 그게 그거처럼 될 때 돌변의 위험이 있다. 가장 안정되어 보이던 사람간의 관계가 어느 날 깨지는 모습, 참 익숙합니다. 기제괘는 잘 맞춰진 괘에서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볼 수 있겠죠?

아침 출근길에 근처 중학교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풍경 중 제일 아름다운 풍경/너희들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코로나 국면이 끝나 전면 등교를 기원하는 내용인 듯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제자리를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시스템의 안정, 모든 조직에서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빌헬름은 기제괘를 ‘after completion’ 이라고 번역했다죠. 채운샘은 기제괘를 이해하려면 기제라는 단어에 매이지 말고 각각의 효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6개 효 모두 제 위치를 잘 잡고 있는 질서정연한 모습,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개인의 삶에서는? 나를 힘들게 한 일들이 한두 개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 한두 개 마저 해결된 상태가 기제괘라 합니다. 그럼 이때가 마냥 좋기만 한가? 그럴리가요. 이때는 허무가 찾아옵니다. 힘들게 하던 일들이 해결되면 더 이상 치열하게 고민할 것도, 추구할 것도 없고 큰 스트레스도 없어져 치매가 오기 쉬운 때라는 겁니다. 안정에 대해서, 치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저는 하도 사건도 많고 정신없게 살다보니 사실 권태기나 우울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시피 살아왔는데 기제괘를 보면 제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쩌면 지금이 저에게는 기제괘의 상황이 아닐까 싶네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괘사를 봐야겠습니다.

旣濟, 亨小, 利貞, 初吉終亂.

亨小는 큰 일에 신경 쓰느라 평소 돌보지 못한 자질구레한 일들에 신경을 쓰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初吉終亂이란 모든 일들이 제자리에 있으면 사소한 흐트러짐도 눈에 거슬리며, 아주 사소한 것 하나가 이미 완성된 것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것이라 합니다. 참으로 사소한 것까지 조심하고 신중해야 할 때인 거죠. 그럼 또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때는 오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 왔다면 정점에서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주역은 친절하게도 성인의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길 안내를 해 줍니다. 성인은 기제 상황에서 궁색해지기 전에 변통을 시도해본다고 합니다. 무너지기 전에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을 시도해 본다고 합니다. 조직이라면 사람을 새로 뽑아 관계를 변화시켜 보거나, 지위나 역할에 변동을 주거나 하는 등으로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공부도 왠만한 큰 일들이 정돈된 후에 규문에서 또 새로운 관계를 맺고 낯선 한자를 공부하는 것으로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3. 수풍정(水風井) : 덕은 우물물과 같이 사람들에게 쓰여져야만 덕이 된다.

정(井)괘는 주역 64개중 사물의 형상을 본 딴 두 괘(정(鼎) 정(井)괘) 중 하나입니다. 두 괘는 모두 인간을 길러내는 것으로 베풂과 연관됩니다. 채운샘은 화풍정鼎괘가 물질, 제도적인 부분에서 이로움을 주는 것이라면 상괘에 물이 있는 수풍정井괘는 보다 근본적인 본성적 측면에서의 베풂이라고 하셨습니다. 소동파는 수풍정井괘의 상효인 감(坎)은 두 음효 사이에 하나의 양효를 밖은 고요한데 안에서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 하괘 손(巽)은 음효 위에 두 개의 양효를 안은 고요한데 밖에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며 이 둘의 덕은 동일하다고 했다네요. 우물물은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래에서 항상 물이 솟아오르고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아 항상 일정한 물의 양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면 이해가 됩니다. 괘사를 보면

, 改邑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 汔至亦未繘井, 羸其甁, .

우물은 바꾸는 것은 마을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 하네요. 우물은 물이 나오는 위치를 잘 찾아 사람들이 파서 만든 것으로 우물로서 사용되지 않거나 물이 밖으로 흘러가버리면 더 이상 우물이 아니죠. 그것은 현자의 덕이 사람에게 쓰여져야만, 그리고 알맞게 쓰여져야만 덕인 것과 같다는 거죠. 어릴 적 마을에서 본 우물이 생각납니다. 마을 가운데 깊은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가에는 늘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 그릇, 야채 등을 씻고 또 물을 길어갔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물을 퍼올려도 모자라지 않았고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이 밖으로 넘치지 않아 참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괘사의 无喪无得이 바로 이 모습이라 하죠. 상식적으로 물을 퍼올리지 않으면 흘러 넘치거나 아니면 많이 쓰면 고갈되어야 하는데 왜 똑 같을까요? 문왕은 이러한 우물물의 일정함을 덕의 항상성과 연결합니다. 또 그 물은 부자나 빈자나 나그네나 모두 우물물을 필요로 하죠. 이것이 往來井井 누구나 그 물을 사용한다는 면에서 보편성을 갖습니다. 항상성과 보편성이 현자의 덕입니다. 우물이 사람들에게 쓰여져야 하듯이 현자의 덕 역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효사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자그마한 덕은 가지고 있는데 그 덕을 쪼잔하게 베풀면 덕으로서 발휘되지 못함을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구이효의 井谷射鮒, 甕敝漏. 그나마 가진 자신의 능력을 인색하게 발휘하면 효과가 아주 미미하여 항아리가 깨져서 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우물물을 제대로 길어올린 것이 상육효인데 井收, 勿幕, 有孚, 元吉. 두레박도 깨뜨리지 않고 잘 길어올렸으며 길어올린 후에도 두껑을 열어 두어 누구나 길어먹을 수 있다. 이게 곧 현자의 덕입니다. 채운샘께서는 이 괘는 마음에 두어야 하는 괘 중의 하나라고 하셨다. 옹색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좀 넓게 쓰려고 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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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20 14:05
    와~~ 멋진 후기, 감사해요 샘. 강의 내용과 토론 내용까지 완벽하게 정리해주시고, 게다 샘의 생각이나 상황까지 적절,자연스럽게 덧붙여주시다니, 이게 정녕 내가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게 맞나 싶을 정도네요 ㅎ.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