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과 글쓰기

주역 글쓰기 3학기 4주차 후기

작성자
곤지
작성일
2021-08-23 18:27
조회
187
주역 글쓰기 3학기 4주차 후기 (중수감, 수산건, 수지비)

 

오늘 달력을 무심코 봤는데 처서(處暑)다. 속담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에 든 곡식도 준다고 하는데 지금 비가 온다. 처서면 더위가 한풀 꺽이는 때로 바짝 더웠다가 처서가 되어야 아 시원하구나 하는 맛이 있을텐데, 작년부터 지금 까지 내 생명 파동의 리듬은 맹맹한 수평선이라 처서가 되어도 시원하다기 보다는 기분이 어째 더 꺽이는 것 같다. 그래도 올해 공부 농사가 많이 남았으니 다지기와 마무리는 절기의 리듬을 잘 타봐야겠다.

 

중수감 괘

중수감괘는 물, 구덩이를 뜻하는 감괘 2개가 중첩된 모양이다. 근데 다른 소성7괘가 중첩된 괘와는 달리 습(習)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이 습감(習坎)은 괘사와 대상전에 나온다. 습이 거듭거듭 구덩이에 빠진다는 뜻도 되고 그래서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도 거듭거듭 움직여야(行有尙)하고 항상 일상에서 덕을 행해야 하며(常德行) 거듭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習敎事) 가르치는 일은 나를 가르치는 대상이 있어야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가르치는 것도 구덩이에서 나를 조금씩 끌어낸다.

나는 중수감괘를 구덩이에 빠진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읽었는데 토론과 강의 시간을 통해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는 것, 그래서 구덩이를 만나면 채우고 다시 흐르고 다시 채우고 ‘흐른다’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그리고 토론시간에 와 닿았던 부분은 육삼효에 험차침(險且枕) 이라는 구절이다. 이는 구덩이에 빠진 상황에서 남에게 의존만하면 또다시 더 깊은 구덩이로 빠질 뿐이니 맹목적으로 의존만 하지 말고 괘사의 말처럼 믿음을 가지고 형통한 마음으로 덕행을 스스로 꾸준히 행하라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구덩이에 빠졌을 때 나를 돌아보기 보다는 외부에서 던져주는 뭐가 없는가에만 팔려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거듭된 구덩이에 빠진 상황이라면 상육효에 이르기 전에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휘묵에 꽁꽁 묶인 체 가시덤불 위에 3년 동안 놓이게 되니 말이다. 이때는 물이 채워져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수산건 괘

수산건괘도 중수감괘처럼 위에 위험을 말하는 감괘가 있고, 아래에는 산과 멈춤을 말하는 간괘가 있어 이 또한 위에 물과 아래에 산이 있어 절면서 가는 어려움에 처한 상황의 괘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앞뒤로 장애물이 있는 상황에서 욕심을 내면서 돌파하기 보다는 제자리에 멈춰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말한다. (대상전 君子以反身修德) 그런데 보통은 앞에 장애물이 있을 때 그것을 무릎 쓰고 나가는 것을 능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앞뒤로 막고 있는 외부의 장애물에 자기의 마음이 내달리도록 내버려 둔다. 내달려도 그 자리이니 이때는 이런걸 떠올리라고 토론시간에 말을 해주었다. “누가 나에게 인간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면 그사람을 탓하지 말고 내가 그에게 인의예지를 다해 그를 대했는지 되돌아보고, 그래도 또 인간보다 못한 놈이라고 욕을 하면, 내가 그를 지성과 정성으로 대했는지 돌아보고 지극 정성으로 그를 대했는데도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라고. 중수감괘와 마찬가지로 장애물로 꽉 막힌 상황에서도 외부에서 무엇을 구하기보다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자기를 되돌아 보는 것이 해결책이다. 맹자 이루상에 ‘사람을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으면 자신의 인을 반성하고, 사람을 다스렸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나의 지혜를 반성하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었는데 보답하지 않으면 나의 공경을 반성한다. 자신의 몸이 바르게 되면 천하 사람들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수지비 괘

이 괘는 왕의 자리에 양효 하나가 왔고 나머지 자리에는 모두 음효이다. 그래서 모든 음효가 구효의 양효를 친밀하게 따르고 보좌한다. 이때 구오효의 왕은 근원적인 비젼과 지속적인 일관성, 도덕적 확고함(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음)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다섯 음효들은 진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그를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맹목적인 관계는 아니다. 왕의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나옴을 알고 서로 지성으로 관계 맺어야 한다.

문득 위에 쓴 중수감, 수산건과 수지비는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상체는 감괘로 동일한데 중수감은 이효에 양효가 왔고, 수산건은 삼효에 양효가 왔다. 수지비는 하체의 자리에 모두 음효가 왔다. 때로는 저 양이라는 것도 친밀한 협력을 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자기만 믿고 있는 믿음이나 고집스러움 따위의 양의 성질. 소성괘 곤의 미덕이 새삼 좋다.

비괘와 관련하여 ‘친구여, 친구란 없다네.’ 라는 데리다의 말을 이야기해 주셨다. 모두가 내친구이지만 나와 동일한 친구는 거부한다. 친구라 함은 거리감과 차이를 필요로 한다. 똑같다면 배울 것이 없다고 하시며 우리 모두가 공자라면 좋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친구.

음유하고 음함한 자에게도 살아나갈 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수지비 괘이다. 단, 지체없이 협력하고, 믿음을 채우고, 사심 없이 지성으로 생활하기. -옴 아라 빠짜나디 디 디 디~
전체 14

  • 2021-08-23 20:54
    益선생님 후기가 댓글을 부르는건 왜일까요? 샘의 친구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64괘를 가장 먼저 암송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친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인 앞에서 암송하시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은 좀 과한가요??? 자리 마련은 좀 더 고민하겠습니다...

    • 2021-08-25 13:34
      저도 姤 선생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드릴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근데 제가 채워 드릴만한게...높은 곳에 있는 물건이라도 내려 드리겠습니다. 또는 귀를 열고 하시는 모든 말씀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 2021-08-26 12:56
        양강한 기운이 원래 샘안에 있음을 자각하신듯 보이는건 왜일까요?? 곤지가 아니고 건천(제가 곤지의 의미를 맞게 해석했는지 모르겠네요...)의 기운을 일욜 아침 달달시간에 뿜뿜해주시길 기대합니다.. 9시..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2021-08-23 21:33
    옆에 친구들이 널렸는데도 자각하지 못하시는 곤지님께 앞으로 우정독침 더 씨게 놓아드려야겠네요. 옴 아라 짜파게티!

    • 2021-08-25 13:39
      야구공에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빛나고 간결한 지성으로 더 따끔한 독침 부탁 드립니다. 언어의 변주 능력에도 무릎을 꿇습니다. 옴 아라 빠짜나디

  • 2021-08-23 22:09
    왐마야...곤지샘 후기 댓글에서 이미 뜨거운 우정이 느껴지는데요...?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팀주역의 우정^^!!

    • 2021-08-25 13:45
      그렇지요! 困지가 못 볼 뿐이지요. 가만히 있어도 온기가 전해지는, 모자란 온기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2021-08-24 10:08
    험난함과 관련된 두 괘를 공부하면서, 그 험난을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이 사실 그 상황 안에 이미 내재해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서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거듭 닥쳐오는 험함 앞에서는 거듭해서 익히면서 나아가는 걸로, 나를 막아 지체하게 만드는 상황에서는 멈추면서 나아가는(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걸로 대응할 수 있다는 걸요^^. 글고, 감괘와 건괘를 수지비 괘와 비교해 물음을 던지신 단락을 보니, 빌헬름 식의 독법이 살짝 보이는 것 같아 흥미로왔습니다. 감괘든 건괘든 양효 하나씩만 음효로 바뀌면 바로 비괘로 전환될 수 있다는, 하여 어려운 상황 안에 누군가와 가까이 접속할 수 있게 하는 勢가 잠재해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거 같아서요. 여러 모로 놓치고 간 부분들까지 챙겨 주셔서 감사~~ !!! * 무릎쓰고 ->무릅쓰고, 비젼 ->비전 (제가 요새 눈빠지게 자소서를 읽다보니 요런 것들이~~ㅋㅋ)

    • 2021-08-25 13:49
      깊이와 깨알 같은 유머가 베인 규님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옴 아라 빠짜나디 디디디!

  • 2021-08-24 12:48
    음함을 뚫고 양기 한 줄기가 보이는 후기입니다 ㅋ 사심없이 지성으로... 쭉 같이 갑시다. 옴 아라 빠짜나디~~~

    • 2021-08-25 13:55
      저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는 豊님, 사심은 내려놓고 지성은 울리고~~ 감사합니다.

  • 2021-08-24 19:01
    주역 점도 이길 수 있다는 열 명의 벗 (십붕지)를 초과한 14명의 친구가 선생님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같이 쭉 가요. !

  • 2021-08-25 14:01
    ^.^ 어디로 가나요? 遯님, 소인을 미워하지 마시고 함께 가요.^^

  • 2021-08-25 17:46
    '내가 나를 가르치는 것도 구덩이에서 나를 조금씩 끌어낸다'니, 공부에 푸욱 들어갔네요~~ 곤지가 아니라 이제는 '학지'로 해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