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0927 소생 프로젝트 영화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10-03 16:13
조회
74
영화를 본 지 일주일...당시 들었던 생각을 주섬주섬 모아 보았습니다... 아마드ㅠㅠ네마자데ㅠㅠㅠ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촬영한 코케 마을에 큰 지진이 났습니다. 영화에 출현한 아이들이 걱정된 감독은 코케 마을로 향하는데 길은 막혀있고 차는 시원찮고 뒷좌석에 탄 아들은 자꾸만 엉뚱한 소리를 하며 정신을 산란하게 만듭니다. 거기다 만나는 사람마다 코케로 가는 길은 당신이 탄 차로 가지 못한다고 말립니다. 그렇다고 감독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가 하는 말은 한결같은데요. 1.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수단은 이것 뿐이다. 2. 어쨌든 아이들이 걱정되니 가봐야겠다. 영화는 코케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감독의 이런 태도만으로 큰 감동을 줍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전단지에 나와 있는 아이의 얼굴 하나만 잡고 그들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며 그의 걱정과 다급한 마음에 공감하게 되지요.
그런데 재밌는 건 톨게이트에 뜬금없이 얼굴을 들이댄 감독과 그의 아이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는 건 뒷좌석에 탄 아이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감독...의 아들이 아닐 터. 그러고보면 주인공이 내가 이 영화의 감독이오 하고 말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거기다 지진이 난 포슈테에 도착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등장한 마을 사람들은 마치 그가 영화감독인 양 당신을 알고 있다는 양 대하고 마치 영화같은 말을 하고 있지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괴짜 할아버지로 나왔던 루히는 할아버지 분장은 지웠지만 여전합니다. 거기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NG를 거듭하던 호세인은 똑같은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출하고요.(마치 이 영화의 장면이 완성본 같지요) 거기다 40년만의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4년만에 열리는 월드컵을 놓칠 수 없습니다. 보통 '영화 같은' 행동을 하는 인물과 그걸 연기한 배우를 구분하지만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포슈테는 지금 지진이 일어난 포슈테이고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올리브 숲은 지금 집을 잃은 사람이 아이를 뉘여놓은 올리브 나무이지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현장으로 가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 재난 현장을 다루는 영화에서 불러일으키는 슬픔이나 비애, 동정 같은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반가움이었습니다. 재난현장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영화에서 느껴보기 힘든 감정이지요. 왜냐하면 보통 사람이 많이 죽어나간 현장으로 간다고 하면 최대한 그 사건의 가장 잔혹한 부분을 다루거나, 몇명이나 죽었는지 피해는 얼마인지를 수치화/영상화 해서 보여주거나 아니면 사건 당시의 실시간 영상을 보여주며 그때의 급박함을 전하며 최대한 그들이 당한 재난에 초점을 맞추니까요. 그런 영화를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너무나 먼, 하지만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재난 자체에 초점을 두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무시무시한 현실에 처한 사람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바쁘지 그들이 누구인지, 이런 재난에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특별함은, 포슈테나 코케를 단지 재난이 일어난 현장으로 보게 하지 않는다는 점 같습니다. 코케와 포슈테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 수시로 나왔던 지명이지요. 차를 타고 지나가다보면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이 아는체하며 인사하고 있고요. 그들은 단지 동정받을, 삶에 절망해 도움의 손길만 기다리는 무력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너무 큰 상처를 입어 예민하게 구는 사람도 아니지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보다보면 제가 그런 '피해자'상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외지에서 온 꼬마가 하는 '숙제를 안해도 되니까 그 (지진으로 죽은)아이는 오히려 행복했을 거예요'라는 말이나, 감독이 어린 자매에게 하는 '어떤 일을 당했는지 말해주렴'이라는 말에 괜히 조마조마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마을 사람들을 그런 정형화된 피해자로 만들지 않지요. 그건 감독이 그 마을 사람들을 잘 알기에 잡아낼 수 있는 장면들 같습니다.
만약 재난 다큐멘터리가 그 사건과 사건 현장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적입니다. 진심으로 아마드와 네마자데가 무사한지 걱정하고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재난으로 그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감독이 그 마을과 사람들을 깊이 알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화는 마치 한번 푹 빠졌던 이야기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 그 인물들을 만나는 기분마저 듭니다. 그리고 아마드가, 호세인이 죽어라 내달렸던 지그재그로 나 있는 길을 감독의 시원찮은 차가 호기롭게 올랐다가 다시 미끄러졌다가 도움을 받아 다시 올라가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인 아마드와 네마자데를 만나러 가는 롱테이크는 마치 그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걱정과 다급함과 이 길의 끝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느끼게 합니다. 그 길을 달리는 이유는 재난으로 끝나버린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한 게 아닌 거지요. 반가운 얼굴을 보고 또 삶에 닥친 문제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지그재그로 난 길을 지난하게 올라가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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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3 17:59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가 촬영 되었고, 그 촬영지인 코케에도 지진 피해가 있었고, 감독은 그 상황과 영화에 출현했던 아이들(아마데와 네마자데)을 보러가는 내용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인데 그 영화가 촬영되는 장면을 찍은 것이 <올리브나무 사이로>라는 영화군요.
    아마데와 네마자데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에서 결국 나오지 않지만, 그 영화가 촬영되는 현장(올리브 나무 사이로)에 꽃병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을 보고는 굉장히 묘했습니다.
    생각할수록 기묘한 구석이 많은 3부작이네요!

  • 2018-10-05 14:37
    삶은 계속된다. 라는 제목이 큰 울림을 주네요.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도, 그 길을 상상해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 . .
    소생 페르시아 여행도 그런 기분으로 출발하게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