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1004 소생 지은팀 후기 - 샤나메를 읽고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8-10-05 12:51
조회
74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 소생 팀세미나 후기 / 샤나메 / 성민호

샤나메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헷갈리거나 복잡할 것 없이, 선하고 막강한 영웅이 악한 적들과의 싸움에서 계속해서 이기고, 정의를 되찾고, 잠깐 위기가 오면 또 박살내는 시원시원한 전개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팀 세미나에서 샤나메에 대해 토론을 해보려니 별로 할 얘기가 없었습니다. 별자리, 조로아스터, 선과 악 등의 표면적인 특징들과 이야기하다보니 추측과 감상으로만 그치는 브레인스토밍만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천일야화와는 어떻게 연결해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의 책인 것 같았습니다. ‘로크’가 등장한다는 것 정도의 공통점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로크도 천일야화에서는 말을 못도 거대 생물로 그려지나, 샤나메에서는 지성을 갖춘 새들의 신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샤나메가 이슬람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찾는 것도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논문 두 개를 가져다 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이희수 교수님의 「페르시아의 대표 서사시 샤나메 구조에서 본 쿠쉬나메 등장인물 분석」이라는 논문이었습니다. 이 논문을 함께 돌려 읽으면서 그 동안 이걸까, 저걸까 근거 없이 내뱉었던 추측과 궁금증들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이 고민이었고 어떤 점을 새로 알게 되었는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책이 왜 쓰여야 했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샤나메는 10세기 말에 페르시아의 시인 피르다우시에 의해 쓰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시인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아랍-이슬람 제국이 중동과 중앙아시아까지를 점령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칼리프는 아바스 왕조였고 당시 이란 지역은 사파르 왕조가 독립왕조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샤나메가 집필되기 시작한 때는 975년으로, 사산 페르시아가 이슬람에 멸망한 651년 이후 300년도 더 된 시기인데, 왜 샤나메에서는 이슬람적인 특징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또는 내용 중에는 근 300년의 이슬람 시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샤나메는 페르시아의 민족 서사시, 건국신화로서 쓰인 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단군신화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여기 등장하는 카이우메르스라는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은 호랑이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수천 년을 살며, 악신 아리만과 싸우기도 하는, 신이라고 하기에도 인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존재입니다. 후대로 가면서 신들의 개입도 점차 줄고, 수명도 줄어들면서 조금씩 지금의 인간과 비슷해지지만, 왕의 혈통이 가진 선함과 힘은 인간 그 이상의 것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샤나메는 이란 건국의 의미와 정통성을 확립하는 작업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에서 등장하는 왕들은 신화화되고, 악을 응징하는 선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서사시가 이슬람 점령기인 10세기에 와서야 집필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슬람교가 국교로 자리 잡고 페르시아 주민들 중 대다수가 개종하면서 팔라비어 대신 아랍어가 정착되었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페르시아 문화의 핵심요소가 쇠퇴해 갔다. 이원론적인 조로아스터교 전통, 질서의 근간으로서 계급 구분 같은 페르시아적 정체성은 이슬람 문화라는 역동적인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었다. 물론 이슬람 문화의 성숙에 가장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도 페르시아 문화였지만 이제 이슬람이라는 단단한 외피를 뚫고 나오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페르시아 문화 부흥을 위한 노력이 1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된다. 그것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시대에 강한 뿌리를 두는 연역적 역사인식이었다.  (「페르시아의 대표 서사시 샤나메 구조에서 본 쿠쉬나메 등장인물 분석」, 이희수, 한국 이슬람학회, 2012, 59~84)

10세기 중반에는 이란계 시아파의 부와이 왕조(932~1055)가 아바스 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군사,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위키) 9세기경부터 아바스 왕조가 분열하는 동안 이란 지역의 동부에서는 타히르 왕조,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가 흥망하는 등 이란의 세력이 다시 중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이란인의 막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중 10세기 중반, 부와이 왕조가 최초로 페르시아지역의 패권을 회복하던 시기가 바로 피르다우시가 살았던 시대입니다.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기는 이슬람-아랍의 점령 이후 이란계 왕조가 정권을 잡았던 막간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무함마드 이전의 역사는 무시해버렸던 이슬람의 문화로부터 옛 페르시아의 정취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샤나메는 페르시아 전통문화 부흥에 앞장선 사만왕조의 만수르 왕자의 후원 아래 집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 하에 쓰인 사냐메에서 이슬람의 흔적을 찾거나, 이슬람 점령기의 내용을 찾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샤나메는 이슬람-아랍 문화에 반反해서 쓰인 책입니다.

지난 발표에서 제가 맡았던 부분은 이란과 시아파 이슬람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시아파는 근본적으로 이란적이다”라는 도시히코의 말에서 착안해, 현재 국민의 95%가 시아파인 이란의 민족적 특징과 시아파의 특징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 추측만을 남긴 발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팀 세미나와 이희수 교수님의 논문을 통해 추측뿐이던 그때의 연결점을 더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샤나메의 구성을 보면, 선과 악의 대립과 투쟁이라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 뿐 아니라, 그러한 선함과 빛의 기상이 샤(지도자)의 혈통을 타고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혈통은 이즈쓰 도시시코가 사막인의 혈족주의와 구분하는 ‘피를 통해 이어지는 영성’을 연상시킵니다. 샤나메에서 확인할 수 있는 피를 타고 이어지는 신성함과 힘에 대한 이란의 감각은 시아파에서 주장하는 피의 영성과 통하는 지점이 있어 보입니다.

<페르시아·이란의 역사>에서 최승아 씨는 초기 이란인들이 시아파를 수용하게 된 원인 중에는 ‘아랍인 우월주의를 내세운’ 정통 이슬람 수니파인 우마이아 왕조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알리에 대해 느꼈던 매력도 있다고 말합니다. 알리는 피지배자인 피지배층에게 호의적이었으며, 그에게 무하마드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이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이희수 교수님은 샤나메에 등장하는 3대에 걸친 ‘순환구조’에 관한 말합니다. 샤나메에는 1. 카이우메르스-사이아묵-후생 2. 페리둔-이리쥐-카이 코바드 3. 카이 카우스-사이야우쉬-카이 코스로 4. 구쉬타습-이스펜디야르-바만 이라는 4개의 순환구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선과 악의 대립은 때로는 악마, 형제, 이방인 등으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희생과 복수라는 구도는 모두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처음에 대중적 혁명과 응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자에 의해 정통성 있는 국가와 안정되고 공정한 사회가 구현됩니다. 그리고 중간 세대 인물은 완벽하게 선량한 인물이나, 왕권 다툼, 욕심 등의 ‘악’에 의해 희생되고 맙니다. 세 번째로는 손자 또는 다음 세대의 인물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통해 정의를 회복하고 사회를 악으로부터 구해내는 구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순환구도는 혈통, 피로 꿰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구도가 혁명자 무함마드와 후계자 경쟁에서 무고하게 살해된 그의 혈족 알리의 구도와 매우 유사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으로부터의 선의 희생과 그에 대한 복수 또는 회복을 기다리는 시아파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정서가 이란과 시아파 이슬람 사이의 다리를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신화적 스토리 구조는 동시이에 이란인들의 독자성을 강화시켜주는 강인한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란인들을 비이란인들과 구분하고, 역사적으로 항상 강력한 적으로 등장하는 이웃의 투란인들로부터 페르시아성을 지키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물론 샤나메에서 보여주는 페르시아 전통 서사시 인식구도는 16세기 이후 이란이 시아파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12이맘파를 중심으로 새로운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게 되는 오늘날 이란의 시아파 전통에도 면면히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위 논문)

이번 팀 세미나를 통해 이란에 대해, 이슬람에 반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샤나메를 더욱 깊게 읽고 알차게 이야기해보기 위해 이란과 조로아스터, 이란과 시아이슬람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오기로 하였습니다. 이상입니다.
전체 2

  • 2018-10-05 14:32
    적이 없으면 나도 없다! 무시무시한 악마들과 함께여야만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의지가 터지는 '샤나메'였습니다.
    영성과 혈통의 관계도 더 알고 싶어집니다.

  • 2018-10-06 13:17
    토론과 무관하지만 알찬후기ㅋㅋㅋㅋ 다음번엔 토론까지 알찰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