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10월 4일 혜원팀 샤나메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8-10-05 18:30
조회
66
새로운 팀, 새로운 토론은 어떠셨나요? 저번 역사팀이 무겁고 진지했다면, 이번 팀은 모두가 불타는 야생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할 얘기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별의별 이야기를 와다다다 내리 쏟았습니다. 덕분에 공기도 후끈후끈했어요. 현장감을 살려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저희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몇 개의 포인트로 정리해볼게요.

 

역사와 신화

《샤나메》는 이슬람이 유입되기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아랍이 이슬람 이전을 암흑기로 구분했던 것에 비해,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제국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죠. 《샤나메》는 그런 이란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이야기로, 사산 왕조의 이야기를 기록한 역사서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샤로 제시된 카이우메르스부터 땅이 삼등분이 되었던 페리둔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객관적 사실이 아닌 신화입니다. 사실이 아닌 신화가 역사에 포함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샤나메》의 신화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은 뒤에 나오는 루스템 위주의 이야기와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 별로 논의는 되지 않았지만, 사마천이 《사기》를 편집할 때 제왕의 이야기인 〈오제본기〉를 넣은 것을 생각하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의 책(나메)’이란 어떤 뜻인가?

《샤나메》의 뜻은 ‘왕(샤)의 책(나메)’입니다. 그런데 왕의 책이라 한다면 어떤 왕의 업적을 그릴 것 같은데, 《샤나메》의 주인공은 페르시아의 샤가 아니라 세이스탄의 펠리바 루스템입니다. 따라서 ‘왕의 책’이라 할 때, 단순히 왕의 업적을 기린다거나, 왕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책’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영웅이란 어떤 존재인가?

《샤나메》에서 미누치르 이후의 샤는 단순해서 악에 속아 넘어가거나 홀로 이란을 다스릴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나라에 위험이 닥쳤을 때 이란을 지키는 것은 세이스탄의 펠리바들입니다. 사움, 잘, 루스템은 용맹과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중에서 루스템은 전장에서 스스로 자신의 아들을 죽이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부자가 서로를 몰라보도록 하는 장치들이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는 점에서 일종의 ‘비극’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그리스에서 말하는 비극이란 운명을 알고서도 어떤 식으로든 그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루스템은 자신이 아들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어떤 예언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스의 비극과 다릅니다. 하지만 《샤나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루스템의 삶은 《샤나메》를 읽을 때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고, 그의 삶을 어떠어떠하다고 해석할 때 소랍을 죽인 사건이 큰 의미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느낌뿐이네요.

그리고 사움이 잘을 펠리바로서 가르칠 때 중요한 덕목으로 ‘전쟁의 기술’, ‘연회의 관습’, ‘즐거움’을 얘기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전쟁의 기술’은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는 존재로서 당연한 것이고, ‘연회의 관습’은 정치적 사안을 결정하는 페르시아만의 관습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은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더군요. 이에 대해 야생에서 살았던 잘이 문명의 삶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문명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는 맥락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다르게, 펠리바만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서의 즐거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선과 악

기독교에서 악(惡)이란 선(善)의 부재입니다. 하지만 《샤나메》에서 악은 선이 부재한 상태가 아니라 선과 공존하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가령, 카이우메르스에 이어 왕위에 오른 후셍 – 타후메르스 – 젬쉬드는 악마의 도움을 받아 나라의 국력을 키우는 기술을 발명했습니다. 불을 발견한 것에서부터 실용적인 기술들, 사회 계급 등등이 그것들입니다. 아마도 낯선 것, 특히 아리만이 조학을 맛있는 음식으로 현혹했듯이 감각적인 것을 ‘악’으로 분류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리만의 유혹도 그들을 ‘오만’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오만’하다는 관념은 또 무엇일까요?

이런 걸 보면, 《샤나메》에서 선, 행복과 같은 것은 단지 어떤 속성이 아니라 악을 제압하고 잘 활용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루스템은 잘과 루다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천사의 가호를 받은 카이우메르스(선)와 뱀의 혈족인 조학(악)의 피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과 악의 공존은 확실히 우리가 갖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관념과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밖에도 ‘조학의 뱀이 사람의 뇌를 먹는다’는 것을 ‘악’으로 규명하고, 시무르그에게 바쳐진 잘이 조학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인신공양의 제의가 끊겼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와, 신의 언어로 신탁이 내려지는 지중해와 6개의 괘로 그려지는 고대 중국에 비해 이곳에서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은 은유가 없는 점성술이라는 게 독특하다는 얘기 등등이 있었습니다. 정리되지 않고 막 나열해버렸네요. 아마 다음 주에는 더 횡설수설할 것 같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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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06 22:40
    불타는 야생마ㅋㅋㅋ 담주도 공통과제를 갖고 화끈한 토론을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