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소생 프로젝트 10.4 <천일야화2> 강의 후기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18-10-11 08:29
조회
73
지난 주 <천일야화2>를 읽었고, 공통과제를 중심으로 토론을 한 후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내내 쏟아지는 굵직한 에세이 주제들을 듣다보니, 책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려우면서도 새롭고 다시 어렵지만 재미있고 그랬습니다. 정리되는 만큼만 올리고 나머지는 더 덧붙이겠습니다.

문학을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행위
천일야화 2부는 나에게 신밧드라는 소년의 모험담으로 익숙한 부분이다. 앙투안의 글에서 신밧드라는 나이 지긋한(?) 상인이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럼에도 신밧드의 모험과 귀향이라는 패턴이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 그의 상인이라는 위치가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상인지만 단순히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그가 매 번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아가는 이유도 단순히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안락한 도시의 지루함’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구해오는 것이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생필품이나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신비하고 진귀하지만 무용한 것들, 보석이나 향신료 새로운 이야기 등등. 천일야화에는 고생을 자처하며 다시 바다로 가는 신밧드 뿐 아니라 부정한 아내를 단칼에 베는 남편이나 기껏 시체 몰래 버리곤 자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채운샘은 이를 통해 ‘인간이란 어떠어떠한 존재가 아닐까’라고 데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각자가 어떻게 그 이야기와 저자들을 만났는가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마치 신밧드가 모험담을 들려주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처럼 자기 일과 활동을 가지고 그래야 한다고 하시면서 주제들을 던져주셔서 부족하나마 정리해 둔다.

신밧드의 모험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

▶인간이 가진 사고의 폐착-안락함에 대한 환상
신밧드가 죽을 고비를 하고 돌아와 편안해지면 다시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뭘 생각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인간은 안정된 삶을 살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여기고 자본주의는 안락한 삶에 대한 환상을 불어 넣는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들을 손에 넣어도 만족이 잘 안된다. 바라마지 않던 것을 손에 넣으면 만족할 것 같지만 막상 얻으면 권태로워진다. 신밧드가 죽을 고생 끝에 금음보화를 가지고 돌아오지만 다시 바다와 모험에 끌리는 것처럼, 인간은 권태를 못 견뎌 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힘에 접속하기를 갈망한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힘에 접속하려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과 명예가 있는 안락함이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꿈꾸는 안락한 삶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과 안맞는 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를 추동하는 힘을 뭘까? 그건 나에게 우호적인 힘이 아니다. 우호적이라는 것 자체도 나에게 적대적인 힘들 사이에서 감사하게 되면서 우호적이라고 느끼는 것이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신밧드는 자기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힘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살기 위해 노력한다. 빵을 아낀다든가, 빛을 향해 끝까지 나아간다든가 등 계속해서 뭔가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로 변화한다.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면서 얻는 자존감과 그러한 자신의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충족감. 신밧드가 모험이 보여주는 것은 이전의 생각을 죽고 새로운 생각을 갖는 생사의 문제를 통해 느껴지는 새로운 힘이 아닐까.

▶자기의 유한성을 넘어갈 수 있는 것은 다른 삶의 ‘이야기’
신밧드는 자신의 모험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다. 이야기를 해주는 댓가로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들으러 오라고 청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그저 무용한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의 가치관 생각들이 담겨 있는 도구이다. 신밧드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삶과 관점으로 데려다준다. 이러한 이야기의 효용성은 무엇일까?
세상은 자기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경험만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나이에 따라 경험이 축적되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중요한 것은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 역량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만남으로써 생겨난다. 타자와 이야기 나누고 뭔가를 생각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과 생각이 변주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기억과 사유 속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지만 경험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에 머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공부도 외부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 일상의 가치가 전부라 여기고 살아간다. 공부를 한다는 건 그 일상을 지켜보거나 다른 관념을 구성할 수 있는 어떤 생각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무한하게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전체 2

  • 2018-10-11 13:43
    페르시아의 겨울 밤에는 어떤 별들이 뜰까. . 무한한 이야기와 유한한 삶이 만나는 그 지점이야말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네요.
    '천일야화'는 그 자체로 지금 나의 감수성, 상식을 낯설게 만들게도 하고요. 또 인간이란? 과 같은 보편적인 질문도 떠오르게 합니다.
    '셰헤라자데는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인가? 천일 하고도 하룻밤의 이야기를 하는 이는 왜 여성인가?'
    수많은 이야기는 결국 한 사람의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시간이 됩니다. 이야기란 새로운 탄생과 관련있다는 뜻일까요? <천일야화>를 읽어서인지, 댓글도 계속 이어지네요. ^^;;

  • 2018-10-12 16:40
    공부를 한다는 것이 지금의 나의 관점을 넘어서는 시각 하나를 발명하는 일이라면, 이것이 곧 여행이네요! ㅋㅋㅋ 반대로 여행에 가서도 계속 나의 관점만을 반복할 뿐이라면 그것이 여행이라 할 수 있을지 @_@ 그게 무엇이던 계속 부딪히고 제 관점을 넘어가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