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NY

절탁NY 3학기 5주차 후기

작성자
승현
작성일
2021-08-30 23:58
조회
105
 이번 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의 7장-9장과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장- 4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교시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니체의 사회, 국가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에 대해 감탄하며 8장 중 소유,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부분부터 살펴보았습니다.

 명문귀족의 근원으로서의 부(富)―‘한 사람이 해마다 3백 탈러를 쓸 수 있든 3만 탈러를 쓸 수 있든 부는 거의 똑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385쪽) 

 남쪽과 북쪽의 근면―‘이와 반대로 영국 노동자의 근면은 소득의식을 배후에 가지고 있다 : 그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목표들을 의식하고 있고 소유로 힘을 얻고 힘으로써 가능한 한 가장 큰 자유와 개인적인 품위를 얻고자 한다’(384-385쪽)

 이 부분들을 통해 니체는 개인적으로는 ‘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힘의 관점에서 ‘부’를 통찰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돈을 베풂으로써 힘을 과시했다면 자본주의 안의 부르주아들은 돈을 축적함으로써 힘을 증명하고자 했다는 것, 소득의식을 갖게 되면서 소유를 통해 힘을 과시하고자 했다는 점을 여러 선생님들이 언급해주셨는데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어서 니체가 사회주의에서 경계하고자 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소유와 정의―낡은 문화의 과거는 전부 폭력, 노예제도, 기만, 오류 위에 세워져 있다.(...) 언젠가 그들의 조상들도 소유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강제적인 새로운 분배가 아니라 점진적인 의식의 개조가 필요한 것이다. 정의는 모든 사람 속에서 좀 더 커지고, 폭력적인 본능은 더 약해져야만 한다.(362쪽)

 니체가 경계하고자 했던 것은 사회주의에서 공정함을 외칠 때 올라오는 힘, 즉 흥분 속에서 근시안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점이라는 의견을 들으며 ‘공정’이 민감한 화두가 된 우리 시대에도 잘 새겨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니체는 강제적인 새로운 분배를 통한 제도적인 개조나 전복과 같은 반응적인 힘에 의한 일시적인 변화 대신 점진적인 의식의 개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점진적인 의식의 개조란 무엇일까? ‘개조’라는 뉘앙스가 조금 강압적으로 느껴지지만 ‘의식의 개조’는 곧 사유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운명―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위하고 판단하더라도,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부당함을 알고 있다.(399쪽)

철학적으로 의식하고 있음―(...)그러나 인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상태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432쪽)

 사유와 관련해 ‘깊이 생각한다는 것’, ‘인식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서로 다른 삶의 상태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획일화시키지 않는 목소리, 자신의 생각을 회의함으로써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견 뒤로 한 선생님이 들뢰즈를 인용하시면서 기존의 틀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라 기존의 틀이 작동되지 않을 때,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으로부터 사유가 시작된다는 것, 그것이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이 순간을 만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교시에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지난주까지 읽었던 루쉰의 글에서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습속이라는 루쉰의 문제의식이 크고 묵직하게 느껴졌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글은 고양이의 깃털과 동작처럼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근대인의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부분에서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었습니다.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두운 방에서나마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49쪽)

 일기에 기록된 내면이야말로 진짜 자신이라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근대인의 비대해진 자아와 자폐적인 모습이 보였고 안드레아 델 사르토 사건이나 메이테이가 주인을 속이는 장면 등에서는 허세와 우리가 믿는 신념 등을 꼬집는 듯했습니다. 우습지만 그 모습이 친숙한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소설 속 인물들에 소세키의 모습들이 조금씩 담겨 있다고 하는데 소세키는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까지 관찰하고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는지 감탄스러웠습니다. 고양이를 내세워 거리를 두고 인간의 이중성을 파헤치는 내용들을 보며 이후에는 어떤 부분을 파헤칠지 기대가 되네요.

 3교시에는 채운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장에 대한 부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힘의지란 힘에 대한 힘들의 관계이며 관계를 맺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체 건강을 챙기듯 정신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인 삶의 조건(무수한 힘과 맺고 있는 관계)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어떤 좋은 것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꿀 때 좋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인식하고 판단하는 게 신체성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삶 속에서 힘의지의 개념이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3장의 종교적 삶에 대한 부분에서는 종교적이라는 것이 일상과 다른 방식의 리듬을 도입하는 것이며 능동적 금욕으로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 ‘마음을 다스리는 여덟 가지 게송’을 함께 떠올려 보면서 아침을 다르게 맞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기적처럼 오늘 아침,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눈이 떠져 아침에 ‘마음을 다스리는 여덟 가지 게송’을 읽게 되었네요. 채운 선생님은 싫어하시겠지만 저는 채운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 은혜 받는 느낌, 충만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과하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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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31 13:17
    수심팔훈이 절로 읽어지는 일주일이라니, 멋지네요!
    세미나와 강의 때 오간 내용이 뭔가 생명력(?)을 얻고 맑게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단 느낌이 드네요 ㅎㅎ
    서로 다른 나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은 두고두고 생각해보고 싶어요. 후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