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S

절차탁마S 2학기 에세이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21-07-09 15:54
조회
134
와아~! 2학기가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학기부터 ‘내가 만난 스피노자’를 무사히 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요. 음... 결과적으로 말하면, 절반은 생존하고 나머지 절반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ㅠㅠ 정수쌤과 정희쌤, 진아쌤, 윤순쌤은 3학기 동안 수정하실 계획이고, 저와 현정쌤, 정옥쌤은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사실 수정 단계에 이르신 분들은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다시 써야 하는 삼인방은 앞이 깜깜합니다. 크흡! 슬픔에 빠질 틈도 없네요. 후다닥 달려보겠습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3학기 첫 시간 때는 에세이 때 받으신 코멘트를 바탕으로 개요나 수정본을 잡아 오시면 됩니다. 이제부터 마라톤이네요. 책은 《에티카》와 《주체의 해석학》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주체의 해석학》은 따로 읽어오실 필요는 없지만, 《에티카》는 4부 정리18(160쪽)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정수쌤께 부탁드릴게요~ (나중에 한 번 더 공지 올릴게요.)

 

그 사람이 보이는 글

이번 에세이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가령, 글을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나의 경험을 구구절절 풀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글은 구체적이기 전에 독자를 질리게 합니다. 채운쌤은 굳이 자기 얘기를 늘어놓지 않아도 그가 어떤 시대적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느껴지는 글이 있고, 그런 글들이 구체적인 글이라고 하셨죠. 푸코와 들뢰즈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내가 이런 사건을 겪었고, 이런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쓰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글에서 그러한 흔적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스피노자의 《에티카》도 그런 글입니다. 독해 자체는 어렵지만, 정리·증명·따름정리·주석·부록을 읽다 보면 스피노자가 무엇을 고민하는지가 느껴집니다. 신학적 환상에 대한 경계, 무지한 인간이 자초한 불행, 더 많은 사람이 고귀한 철학자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 등등 그 시대에 겪을 수밖에 없는 혹은 인간이라면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기술했습니다. 그것은 스피노자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그 자신의 절박한 문제의식과도 연관됩니다. 저희가 여전히 어려운 《에티카》를 강독하면서 감명받는 이유도 스피노자가 자기 얘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구체적인 글은 저희가 어찌하지 못하는 번뇌를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점에서 글에서의 구체성과 자비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이 시공간에서 이런 문제를 겪고 있음을 쓰는 것은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을 만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또래에게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서둘러 글을 쓰느라 잊고 말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저를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네요. 다시 처음부터 또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개요를 잡아야겠습니다.

 

공동체 역량과 공통개념

스피노자의 공통개념은 정말 난해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스피노자 본인은 정작 공통개념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스피노자주의자들이 공통개념을 정치적으로 유용한 개념으로 해석하죠. 몇 번을 읽어도 왜 이렇게 주목하는지 이해되지 않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눈이 가기 시작합니다. 공동체의 역량과 구성원의 역량을 고민한 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희쌤께서 쓰신 에세이도 많은 부분 참고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에세이를 읽고 코멘트를 들으면서 저도 어떻게든 공통개념을 이해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공동체의 역량이 증대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동체가 계속 유지되는 것 혹은 구성원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요? 어떤 때는 공동체가 유지되거나 확장되기는 하지만 역량의 증대가 일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공동체가 관습에 따르는 정도가 심할 때 그렇습니다. 관습은 현상을 유지하는 데서는 탁월할 수 있지만, 구성원의 역량이 발휘되는 데서는 해롭습니다. 어떨 때는 각자의 역량이 증대된 결과로 공동체가 해체되기도 합니다. 구성원의 역량이 커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서로가 맡아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일까요? 역량이 증대된다고 할 때는 더 많은 관계에서 다양하게 변용할 수 있는 능력이 증대되는 것을 말하지 사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짓수가 많아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식으로는 역량을 현행적 실존이나 필연 속의 자유 같은 다른 키워드와 연관 지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희쌤은 스피노자의 공통개념으로 공동체의 역량과 개체의 역량을 정리하려 하셨지만, 사실 스피노자가 말하는 공통개념부터가 너무 난해합니다. 《에티카》 3부 정리29의 주석에서 그는 공통개념을 “정신이 자연의 공통의 질서로부터 실재들을 인식할 때마다, 곧 실재들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따라 이것 또는 저것을 바라보도록 외적으로 규정되”고, “다수의 실재를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 사이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이해하도록 내적으로 규정되”는 인식으로 소개합니다. 이 짧은 문장에서도 ‘합치’, ‘차이’, ‘대립’, ‘내적으로 규정’ 같이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들이 출몰합니다. 저 용어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어야 ‘공통개념은 이런 거다!’라고 내놓을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바로 풀지는 못하더라도 겪은 사건으로부터 공통개념을 그릴 수는 있습니다. 채운쌤은 책바람에 참여하면서 공통개념에 부합하는 사건들을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셨죠. 저희가 매주 《에티카》를 강독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에서도 공통개념이 형성된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정리를 놓고 다르게 해석하다가 어느 순간 새로운 해석에 도달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도 읽을 수 있겠다 싶었고, 묘하게 쾌감이 밀려오더라고요. 아마 정희쌤의 에세이에서는 세미나 토론보다 더 실재성이 커지는 경험이 있지 않을까 기대되네요. 저도 보고 배우고 싶습니다!

이밖에도 주옥 같은 코멘트들이 있었지만, 각자 에세이에서 잘 녹여내시리라 믿습니다.ㅎㅎ

진아쌤과 정희쌤께서는 규문에서의 에세이 발표가 처음이셔서 '원래 이렇게 강도 높게 하냐고' 물으셨지만, 흠... 이게 좀 낮아진 겁니다. 그리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예전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분위기 속에서 에세이 발표가 진행됐다고 하네요. 뭔가 군대에서 '흘렀네~'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군요. 아, 현정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에세이를 겪고 계시지만요. ㅋㅋㅋ 어쨌든   코로나가 4단계로 격상됐지만, 정신없이 에세이 쓰다 보면 또 어떻게 국면이 바뀌겠죠? 모두 방학 잘 보내시고, 7월 28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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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10 19:18
    여기저기 세미나에 기웃거리며 마땅치 않은 후기를 쓰다가 남들은 어떻게 후기를 쓰나하고 보게된 스피노자 세미나 후기인데 글쓰기가 뭔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군요.^^!
    글을 쓸 때 내 경험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전전긍긍했던 것 같은데 '나의 경험을 구구절절 풀어놓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하지만 내 경험의 밖에서 쓰는 글쓰기가 나를 비껴나간다면 그것도 문제겠지요? 이래저래 힘든 작업이네요, 글쓰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