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너스

비기너스 시즌 4 일곱 번째 시간(6.30)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06-28 15:09
조회
87
“Parrhesia는 어원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기’를 의미합니다. Parrhesia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 parrhesia에서 문제되는 것은 ‘모든 것을 말하기’가 아닙니다. Parrhesia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 말해야 할 바를 말하고 싶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고 싶은 순간에, 그것을 말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형식 속에서 말하게 만드는 솔직함 · 자유 · 개방과 같은 것입니다.”(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난장, 398쪽)

이번 주에 함께 공부한 부분에서는 드디어 ‘파르헤지아’ 개념이 본격적으로 다뤄졌습니다. 한편으로 파르헤지아는 아첨-분노와 대립을 이루며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정치 윤리의 핵심을 이뤘습니다. 군주나 귀족, 유력자의 고문이나 교육자인 철학자들에게는 파르헤지아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지금도 ‘정직’은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지만, 파르헤지아와 (우리 시대의) 정직성이 놓인 맥락은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파르헤지아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아첨과 대립하는데, 아첨이 그 당시 그토록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바로 아첨하는 자는 상대와 자신 모두를 의존적인 상태에 처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첨에 넘어가는 자는 아첨하는 자와 아첨하는 자의 오류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힘을 실제보다 높이 평가하고 권력을 남용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를 통치하고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일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되죠.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이 시대의 정치 윤리가 상급자와 하급자 모두에게 제기되었다는 점입니다. 상급자는 분노를 경계해야 합니다. 쉽게 분노하는 상급자는 하급자들로 하여금 아첨을 하도록 떠밀고, 그로 인해 모두를 예속된 상태에 빠지게 만들죠. 앞서 말한 것처럼 하급자는 아첨을 경계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객관적 투명성이나 추상적 평등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윤리의 문제는 명령하는 자만이 아니라 복종하는 자에게도 부과됩니다. 정치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으며 어떤 의무도지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어떤 객관적 진실에 복종하죠. 어떤 경제 지표나 최대 다수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책 같은 것들. 그러나 우리의 이익을 늘려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정책들 정치인들의 공약들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지는 않습니다.

파르헤지아는, 물론 정치 윤리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푸코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헬레니즘-로마 시대의 파르헤지아와 그리스도교적 고백의 실천 사이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파르헤지아 개념에서 진실의 의무는 진실을 말할 능력을 지닌 자, 다양한 자기 실천 속에서 진실들을 체화한 자들에게 부과되었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이 어떠한 정념에 지배당하고 있는지를 말해줘야 하고, 자신이 그들에게 가르치는 바의 진실을 자신의 실천들 속에서 보여야 합니다. 그가 사유하는 바와 가르치는 바와 행위하는 바가 일치하는 자, 그가 진실을 지닌 자이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입니다. 이와 달리 그리스도교적 고백의 실천 속에서 진실과 ‘진실-말하기’의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희생은 영혼 지도를 받는 자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훈련을 통해서 진실의 주체로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다고 상정된 진실을 일련의 절차들을 통해 끄집어내고 신, 사제, 전문가, 면접관 등에 의해 그 자신의 진실을 확정 받는 것. 자기 변형의 실천을 통한 자기 진실의 구성으로부터 억압적 실천이나 제도화된 앎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타동적으로 형성하는 것으로. 파르헤지아와 고해성사 사이에는 이러한 단절이 놓여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채운샘 강의가 있습니다. <주체의 해석학>을 끝까지 읽고 각자 그동안 <주체의 해석학>을 읽으며 들었던 질문을 하나 이상씩 정리하여 내일 카톡방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그럼 화요일에 봬요~
전체 1

  • 2020-06-30 12:39
    드디어 등장한 파레시아!! 자기 배려, 자기로의 전향, 아스케시스, 파레지아 등. 진실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군요. 머릿속에 용어들이 둥둥떠다니지만 벌써 <주체의 해석학>이 끝나버렸네요... 두고두고 돌아오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