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팀 2학기 1주차 후기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0-01-15 23:25
조회
98
지난주 저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고 함께 토론했습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1850년에서 1854년까지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했던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경험이 담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합니다. 우선 저희가 얘기했던 것은 이 소설의 형식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스테리한 인물 고랸치꼬프를 《죽음의 집의 기록》의 화자로 내세웁니다. 아내를 죽이고 귀족출신의 형사범으로 시베리아의 감옥에 갔다가 출소했지만 사람들과의 교제를 극도로 꺼리며 책도 읽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깨알 같은 글씨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남긴 정체불명의 인물.

그러나 정작 작품 속에서는 화자가 어떤 사연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가 어쩌다 세상에 마음을 닫고 자신 안에 틀어박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정작 내용은 무슨 감옥 르포 마냥 화자는 시종일관 관찰자로 머물며 감옥생활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합니다. 다양한 유형의 수감자부터 술을 밀반입하는 방법, 교도관들과 수감자들의 관계, 교도소의 동물들, 감옥에서의 노동, 병원 등등. 도스토예프스키의 관심이 자신이 보고 겪은 감옥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라면 왜 고랸치꼬프를 등장시켜야 했을까? 그러다 저희는 작품해설에서 이것이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한 줄을 읽고는 대략 납득을 해버렸습니다. 검열 문제 때문인지 감옥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난 혁명가들의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되어 있고, 그들에 관한 일화들도 단편적으로만 나타나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듯, 도스토예프스키의 관심은 감옥에 갇힌 자신의(화자의) 내면보다는 감옥 안의 사람들과 그 환경을 향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감옥 안의 다양한 사람들과 낯선 환경들을 바라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선에 눈길이 가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재밌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귀족 출신의 수감자로서 역시 귀족 출신의 형사범을 화자로 내세우며 시종일관 자신이 감옥 안의 민중들과 완전히 섞일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외부적인 강제에 의해 사회적 코드들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않는 곳에서 민중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자 바깥에서는 잘 자각하지 못했던 차이가, 그들 사이에 놓인 심연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어설픈 휴머니즘을 내세우며 민중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귀족출신인 그에게 민중들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고 같아져야 한다는 것은 기만적인 당위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섣불리 민중들과 동일시하려 하지도 않고 덮어놓고 그들을 예찬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무지몽매함을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신중하게 관찰을 하죠. 그 결과 그는 몇 가지 기준들이나 척도들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규정지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떤 주어진 수준에 사람들의 정신과 수준 정도를 맞추기란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이 경우에는 교양 자체도 척도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교육받지 못하고 가장 억압받는 계층일지라도, 정신적으로 가장 섬세하게 발달한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감옥에서는 때때로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판단하고는 그를 경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갑자기 뜻하지 않은 충동으로 우연스럽게 그의 영혼이 겉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되어, 당신에게 마치 두 눈이 열리는 것 같고 도저히 자신이 처음에 목격하고 들은 것을 믿지 못할 정도로, 당신은 그의 영혼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어떤 풍요로운 감성과 정신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기도 한다. 때로는 야만성과 냉소주의가 교양과 공존하는 경우가 있다. 그 야만성과 냉소주의는 당신이 선하든 선입견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당신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당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명이나 핑계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죽음의 집의 기록》, 열린책들, 391쪽)

다음으로 소설 중에 몇 번 언급된, 범죄자를 바라보는 러시아 민중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따르면 당대의 러시아 민중들은 범죄를 일종의 ‘불행’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보면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대신 그들의 ‘불행’에 ‘연민’을 보냈다고 합니다. 소설 중에는 아버지를 잃은 소녀가 죄수를 보고는 그에게 돈을 건네는 장면이 있죠. 지금 우리와는 사뭇 다른 범죄에 대한 이들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저는 이러한 태도에는 범죄를 당하거나 저지르는 일을 어쨌든 삶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작동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범죄가 일어나면 그것을 범죄자의 개인적 병력(가령 조현병)이나 그의 악한 본성의 탓으로 돌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원인을 파악하려 하는 것이죠. 그러나 범죄자를 불행한 인간으로 본다는 것은, 슬프고 끔찍하지만 살인과 같은 중범죄 또한 어쨌든 삶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진은 러시아 시베리아의 토볼스크라는 도시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수감되었던 감옥의 모습입니다. (아마 2016년부터) 박물관으로 꾸며서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소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수감자들은 머리를 반만 민다고 해서 가로로 반인지 세로로 반인지 궁금했는데, 세로로 반이었네요....




마찬가지로 토볼스크라는 도시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 동상입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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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16 04:23
    지금은 아직 다른 일정 시작 전인데, 역사팀 문화팀 모두 전날 후기를 올리는 건 뭐지? 혜원, 건화. 자기 공부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