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역사 2학기 3주차 후기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20-01-30 20:15
조회
81
설 연휴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역사> 상권을 드디어 끝내고 하권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고보니 키예프 루시가 약 10세기의 스뱌토슬라프(가물가물 합니다...)로부터 19세기 말의 니콜라이1세까지, 상권에서는 약 천 년 간의 역사가 요약된 셈이네요. 하권에서는 알렉산드르2세부터 약 200년 정도의 러시아 근대사가 나올 예정입니다. 어째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복잡한 사건들과 이름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조금 걱정되기는 합니다. 특히 이번에 읽은 범위에서 19세기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정세는 자유주의와 반동이 뒤섞여 나와서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런 와중에도 <종횡무진 세계사>, <전쟁과 평화>, <크로포트킨 자서전> 등 어딘가에서 들어본 인물이나 사건들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는데요. 우선 예카테리나 여제의 손자인 알렉산드르1세의 통치기가 바로 <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된 시기였다는 점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번 후기에서는 알렉산드르1세, 니콜라이1세, 알렉산드르2세, 3세, 니콜라이2세까지 19세기 동안의 통치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지난시간 공부했던 내용대로 위대한 예카테리나 여제는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을 대폭 수입하고 장려해 러시아의 문화적 수준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푸가조프 반란을 보고 자란 그의 아들 파벨은 어머니의 개혁정책을 모두 거부하고 귀족들의 특권을 빼앗는 등 엄하고 혹독한 규제를 실시하였습니다. 파벨이 귀족들이 사주한 군인에 의해 죽은 후에 즉위한 황제가 바로 알렉산드르1세입니다. 19세기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알렉산드르의1세는 ‘천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를 권위주의에서 벗어나게 한 차르라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대관식 때 그는 “우리는 우리 국민들의 행복을 얼마나 진지하게 원하고 있는지, 조국의 진정한 아들들 앞에서 조국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조국의 선에 대한 관심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라며 자신의 이상을 공표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해임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복귀시키고 외국 서적과 간행물, 출판, 검열 등을 다시 허용하는 등 예카테리나 여제가 실시했던 자유주의적 개혁을 재개했습니다. 격세 유전인 셈이죠. <전쟁과 평화>에서 안드레이나 니콜라이, 페챠 등의 눈에 비친 온화하고 선한 이미지의 황제의 모습이 겹쳐지네요(사진에서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개혁 정치에 힘썼던 알렉산드르1세의 조력가 스페란스키의 등장도 반가웠습니다. 우리의 안드레이와 가까웠던 사이이기도 했지요.

알렉산드르1세

그러나 러시아의 진짜 문제는 국가의 기반이 농노제라는 것이었는데요. 알렉산드르1세는 그것을 폐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전제정치를 완화하고 헌법을 준수하며 공화국에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차르의 권위를 완전히 포기하거나 러시아의 근본 경제 체제를 뒤바꾸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차르는 지주에 의한 자발적인 농노해방인 ‘자유농민법’을 제정해 시행하였습니다. <전쟁과 평화>에서 피에르가 프리메이슨에서 배우고 안드레이가 실시한 것이 바로 농노 해방이었죠. 비록 농노제 자체가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이 시기에 농노제의 문제성과 러시아의 후진성은 중대한 사안으로 문제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르1세는 통치 후반기에는 아락체예프라는 거칠고 잔인한 수상의 노선에 따라 전반기와 달리 다소 가혹한 통치를 이어갑니다. 통치기 내내 큰 전쟁을 포함해 상시적인 전시상태를 경험했던 계몽적 귀족들과 장교들의 답답함을 키워갔고, 알렉산드르1세가 죽고 그 후계자로 반동적인 니콜라이1세가 임명되었을 때 그 분노는 폭발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1825년 12월이었습니다. 데카브리스트 운동이 일어났고 니콜라이1세는 그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즉위하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이 러시아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있다고 믿은 니콜라이1세는 ‘관제 국민성’이라는 교리를 내세워 질서와 규제를 위해 강력한 통제를 시행했습니다. 할아버지 파벨로부터의 격세유전일까요? 측근들을 모두 군인으로 갈아치운 그는 군국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정치로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고 정치경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검열과 규제, 전제정치 등의 권위가 그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유럽 전역에 있는 혁명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배치했고 ‘유럽의 헌병’을 자처했습니다. 1848년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말에 안장을 올리라고 명했다는 대목은 놀라웠습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19세기는 개혁군주와 반동군주가 주고받듯이 등장했고 그것이 혁명의 불씨를 더욱 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뒤떨어진 체제인 농노제를 유지하면서 말이죠. 어쨌든 그 기간 내내 지식인 계급은 서유럽에서 계몽사상을 배워와 러시아의 현실적 문제를 고민하는 ‘인텔리겐치아’가 성장하고, 농민들의 반란과 그들의 공동체가 계속해서 커져갔습니다.



농노제는 1861년에 알렉산드르2세의 서명 아래 완전히 폐지됩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2세는 그다지 자유주의적인 군주도 아니었고 조금 보수주의적이고 밍숭맹숭한 성격으로 그저 시류에 따라 방대한 개혁들을 시행했다고 합니다. 크로포트킨은 자서전에서 농노제 폐지가 엄청난 일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겠지만 농노제 폐지 이후의 ‘자유’농민들은 오랜 기간(무려 49년) 엄청난 빚더미 위에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헌법상의 해방이지만 그것이 결코 실질적 계급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어쨌든 알렉산드르2세는 “대개혁”을 실시합니다. 농촌의 교육, 의료, 건설, 식량 등의 개혁을 추진하는 ‘젬스트보’라는 지방 의회 제도를 도입합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왠지 새마을 운동이 이와 비슷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법을 개혁해 그전의 주먹구구식 법정 재판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과 폭력에 대항하는 봉기는 끝없이 이어졌고 차르는 점차 보수주의자로 변모했습니다. 이 시기는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에서 나오는 시기입니다. 해외에 거주중인 지식인들이 강제 귀국조치를 받고서 겉치레를 버리고 농촌으로 들어가 운동을 지속하는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를 자처합니다. “인민 속으로”를 외치는 ‘브나로드’ 운동 등 농민과 노동자의 힘을 믿는 ‘인민주의’가 발달합니다. 한편 농민에 희망을 품기를 거부하고 더 강력한 행동을 선동하는 조직도 있었습니다. 테러와 암살을 방법론으로 가지는 전력투구식 집단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민의 의지’라는 당인데요. <레닌을 회상하며>에서 레닌의 형이 이 집단에서 활동했다고 나옵니다. 알렉산드르2세는 바로 이 집단을 탄압하다가 1881년, 남은 당원에 의해 암살당합니다.



이후 등장하는 알렉산드르3세와 니콜라이2세는 1905년 혁명에서 이뤄진 입헌체제와 함께 막을 내리는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들입니다. 그들은 개혁 정책을 배격하고 전제적 군주 권력의 전통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는 동시에 국가를 근대화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었지요. 국가의 힘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한에서 말이지요. 대규모 철도를 부설하고, 인두세를 폐지하고, 중공업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교회와 민족성을 내세워 차르의 전제정치를 옹호한 체제 내에서 배타성과 압제는 심해져갔습니다. 유대인 탄압과 핀란드 억압은 그 일환입니다. 결국 1905년, 러일전쟁이 패배할 시점에 차르 체제의 전제군주정은 바닥을 드러내버립니다.

이번 시간에는 새삼스럽게 러시아는 정말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이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19세기 내내 모든 국경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했으며, 내부에서는 농민봉기를 진압하고 이민족을 포섭했고, 출판을 검열하고 집회를 해산시키면서도 철도를 깔고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또 수많은 지식인들은 서구에서 사상을 배우고 내부 혁명세력과 내통했으며(레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건을 쓰고 배포하고... 정말 바빴습니다. 강의 중에 레닌이 죽은 1920년대에 해외에 나가있던 전 러시아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조국에 돌아와 자신의 예술을 실험했다는 내용을 듣고는 그 상황은 대체 어땠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길고 긴 금지가 사라졌던 잠깐의 10여 년 동안 그 바쁘게 활동하던 그들의 에너지가 한 곳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어땠을지. 네, 후기가 길어졌네요.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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