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세미나

<명리학 세미나 > 4차시 수업 후기 및 5차시 수업 공지

작성자
배현숙
작성일
2020-11-20 17:43
조회
98
 성정(性情)

부귀, 빈천, 길흉, 수요(壽夭)를 거쳐 오늘은 性情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사주에 나타난 여덟 글자만으로 이런 것들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우리가 볼 때 인간들은 각 개인마다 엄청난 차이를 가진 것 같지만 개인 간 유전자 차이는 겨우 0.3% 정도라고 합니다. 결국 유전자의 차이로 말하든 오행으로 말하든 사람마다의 성격과 심리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겠죠. 그러나 굳이 여덟 글자에 나타난 성정을 각기 분별하여 말하려는 까닭은 그 미미한 차이로부터 펼쳐지는 삶의 양상과 형태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정이란 하늘에서 부여받은 천성과 후천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갖가지 감정을 한꺼번에 이르는 말이죠. 『적천수』는 사주팔자에 나타난 오행의 모습과 배치를 따져 천성과 심리상태를 설명합니다. 오행은 하늘에서는 원형이정으로 五氣가 되고. 사람에게 부여되면 오상(五常), 즉 仁義禮智信의 성품이 되어, 측은, 수오, 사양, 시비, 성실의 감정으로 드러납니다. 仁은 木에, 義는 金, 禮는 火, 智는 水, 信은 土에 배속되지요. 결국 성정이란 이러한 오행의 태과불급이나 중화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양상을 말하는 것입니니다. 『적천수』 ‘性情’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五氣不戾 性正情和 濁亂偏枯 性乖情逆(오기불려 성정정화 탁란편고 성괴정역)

오기가 어그러지지 않으면 성품이 바르고 뜻이 화평하며, 탁란하고 편고하면 성품이 비뚤어지고 뜻도 거역한다.

오행이 중화순수(中和純粹)하면 성격도 겸손하고 성실하며 자비심이 있는데 반하여, 태과 되거나 불급되면 성격상 결점이 있다는 말이죠.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성격과 심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일간에 배속된 오행의 특성을 들어 성격을 설명하기도 했고, 육신의 태과 불급으로 성품을 말하기도 했으며, 사주상의 용신이 어떤 육친에 해당하느냐를 따져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낭월은 『적천수 강의』에서 월간과 시간, 그리고 일지의 지장간으로 구성된 ‘성격존’으로 심리를 분석하기도 합니다.

일간에 배속된 오행으로 성품의 대강을 설명할 때는 木火土金水의 오행을 음양으로 나누어 그 특성을 설명합니다. 甲木은 陽木이기 때문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씩씩하며, 乙木은 유화한 木으로 싹싹하고 친절하지만 소심한 면이 있고, 丙火는 태양화로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화끈하며...와 같이 설명하는 것이죠. 물론 이 하나만으로 한 사람의 성격 특성을 다 말할 수는 없겠지요. 일간과 다른 글자들 간의 관계, 즉 일간의 강약왕쇠와 격국, 有情과 無情, 청탁, 조열한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합니다. 가령 木日생에 대해서는, 木星은 仁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주에 木氣가 왕성하면 성질이 인자하여 측은지심이 있으나, 태과하면 마음이 어질지 못하고 질투심이 있으며 변덕스럽고 마음이 좁고, 불급(不及)하면 심회가 부정하고 하는 일에 절도가 없으며 인색하다’고 해석합니다. 다른 오행도 이와 마찬가지로 오행의 태과불급에 따라 각각의 오상이 나타내는 특성으로 성품을 말하죠.

육친에 의한 성격판단을 할 때는 월지에 있는 육친을 참작하여 해석하는데, 일테면 상관이 용신일 때는 ‘다재다능하고 행동이 민첩하나 자존심이 강하며, 숨기는 것이 없고 교만하며 다변(多辯)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느 때이든 오행과 육신이 처한 상황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며 격국의 오행의 청탁과 순잡(純雜), 편정(偏正)을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주팔자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고정된 성격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똥 누러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데, 성격이나 심리도 상황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떤 이는 사주를 볼 때 가장 필요없는 말이 길흉과 성품에 대한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주를 보러 올 때는 생사존망(生死存亡)이나 이해(利害) 관계가 궁금해서 오는 것이니 그런 것들은 어떤 유용성도 줄 수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팔자를 감명한다는 것은 선악이나 길흉이 아니라, 직업이나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구성의 정보나 生死에 관련된 제반 문제, 利害의 모양과 양상을 분석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품을 따지는 일이 전혀 무익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生死와 利害가 걸린 일에 참고로 삼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성정편을 공부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業識’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흔히 사주팔자를 ‘業’이라고 하죠. 업은 일종의 오래된 습관이고 경향성입니다. 나라는 개체를 만들어낸 오래 전부터 작동되어온 일종의 중력과도 같은 에너지인 것이죠.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오만 가지 생각’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실제로 하루에 우리는 오만 가지도 넘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오만 가지 생각 중에 99퍼센트 이상은 바로 어제, 전에 했던 생각이라죠?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했던 생각과 말과 행동이나 감정 중에 정말 새로운 것이 얼마나 될까요? 어제 했던 생각, 어제 했던 행동들,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하던 대로 생각하고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며 살고 있죠. 결국 우리는 자신의 사주팔자, 즉 오행이라는 에너지가 작동되는 경향성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닐까요? ‘팔자대로 산다’는 말은 업식대로 산다는 말이겠죠. 그래서 ‘팔자는 못 바꾼다’고 하겠죠? 그렇다면 이 때의 사주팔자는 숙명이 되겠네요. 그런데 우리는 숙명 대신 ‘運命’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타고난 팔자는 에너지이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도 쉼 없이 변하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 어떤 존재도 변치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 변화를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우주의 기운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하니까요. 삶이란, 산다는 것은, 그 변화, 아주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일이지요. 즉 우리는 주어진 팔자라는 숙명에 종속되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가오는 에너지를 받아들이거나 부딪치거나 하면서 만들어지는 차이를 사는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은, 그 변화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차이를 만들지 못할 때, 정지할 때가 ‘죽음’이겠죠. 불교에서는 이 변화의 작용 전체를 일컬어 ‘空’이라고 합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지금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본질이 ‘空’하기 때문이죠. 어느 한 찰나도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분과 전체로 작동되며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空을, 한 순간도 머무름 없는 변화의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라고 하셨습니다.  사주팔자를 공부한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空과 無常과 緣起, 즉 우주 변화의 이치, 지혜를 얻기 위한 공부인 것이죠.

변하지 않고 머무는 일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변화를 살 수밖에 없지만, 무시이래로부터 저장되어온 기억정보라는 중력, 에너지의 경향성은 아주 막강한 것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자꾸 ‘하던 대로’ 하라고 뒤로 잡아끕니다. 잠깐만 정신을 놔도 바로 습관대로 하고 있죠. 그래서 팔자를 못 벗어난다고 한탄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 집착과 습관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력을 이겨낼 수 있는 다른 힘을 발굴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팔자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걸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하지요. 불교에서는 ‘알아차림’을 통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알아차림’이란 오랜 세월 착실하게 새겨진 기억정보, 집착과 습관을 살피는 일이지요. 사주팔자라는 개체에 저장되어진 기억정보들이 매번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작동되는지 살피는 일,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만큼은 그것의 방만한 작용을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마음 살핌이 기억정보를 지혜정보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습관대로 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그 애착의 근원을 자비의 마음으로 살피는 일이 공부이고 수행이겠지요. 그러한 수행으로 인식의 토대를 바꾸어 나가는 일이 운명을 사는 일이 아닐까요? 보던 대로 보지 않고, 듣던 대로 듣지 않으며, 느끼거나,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 마음작용을 쉬는 일을 통해 조금씩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습관으로부터 멀어져 주어진 팔자를 지혜롭게 운행하실 수 있는 한 주가 되시길 빕니다.

◈ 다음 주에는 ‘질병’편을 꼼꼼하게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자신의 사주팔자를 함께 펼쳐놓고 내 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충분히 분석해보시기 바랍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적을 알고 나를 알아 그것들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함께 머리 맞대고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다음 주 간식과 후기는 미영샘이신데, 지난 주 간식을 먹지 않고 공부해보니 그도 괜찮았습니다. 공부 끝난 후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아침 간식은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같습니다. 집에서 든든하게 아침 잡숫고 오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그럼 미영샘께는 후기만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주 평안하시길 빕니다.
전체 2

  • 2020-11-20 18:10
    명리학과 불교를
    함께
    풀어주셔서
    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ㅡ*^^*
    감사합니다!

  • 2020-11-20 18:19
    공부와 수행만이 기울고 탁함을 벗어나는 방법이란 생각이 문득 드네요^^
    공부의 장에 맑은 기운이 도는 것 같아, 저도 간식 없음에 찬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