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3. 글자를 배우다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2-03 15:42
조회
794
3. 글자를 배우다

천자문은 사언시(四言詩) 그러니까 한 구가 넉 자로 이루어진 시(詩!)로, 총 250구 1000자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 때 학자인 ‘주흥사(470~521)’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어린이들 한자학습 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삼경스쿨(三經school)의 학동(學童)^^;들도 매 주 이 천자문을 읽고 쓰며 한자 세계에 입문 중이다.

사실 처음에 천자문(千字文)을 읽는다 하여 대단치 않게 여겼다. 물론 한자 까막눈(혹은 실눈?)으로서 긴장은 했지만 ‘어쨌거나 1000자 달달 외우면 되는 것 아닌가’, 했다. 허나 이 1000자를 배우는 일, 만만하지 않았다.

가령 이런 구절이 있다. “容止若思 言辭安定”(용지약사 언사안정) “행동거지는 생각하는 듯이 하고, 언사는 안정되어야 한다.” 짧은 구절이고 뜻 역시 단순한 것 같지만 말하다 보면 엉킨다. 하여 샘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러니까 “용(容)이 뭐야? 용은 그냥 얼굴이야?”, “‘생각하는 듯이 하다’는 건 뭐야? 생각하는 척 하라는 건가~?”, “언(言)과 사(辭)는 어떻게 달라~~?”

용(容)은 얼굴을 뜻하지만, 한 사람의 자태·몸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지(止)는 ‘그치다’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행동거지(行動擧止)’. 더 말해보자면 ‘행동거지’의 각 글자 역시 뜻이 다르다. 가령, 거(擧)가 손을 드는 모양이라면, 지(止)는 손을 내리고 정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생각하는 듯이 하다(若思)’라는 것에 대해 우리 책에서는 “엄숙히 하여 생각하는 듯이 하다(儼若思).”라는 《예기(禮記)》(曲禮篇)의 구절을 통해 풀이한다. 그러니까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행동거지를) 신중하게 하라는 말이다. ‘엄(嚴)’자는 내게는 낯설었는데, 옥편에는 '공근하다(용모가 단정하고 태도가 정중한 모양)'는 뜻이 있다. ‘엄연(儼然)하다’고 하면 의젓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엄숙하다’는 것과는 다른 태도다. 사람뿐만 아니라 집들이 단정하고 반듯하게 늘어 선 모양에 대해서도 이  ‘엄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거쳐야 우리는 '용지약사(容止若思)'라는 구절을 지날 수 있게 된다. '언사안정(言辭安定)'도 마찬가지. ‘언사(言辭)’는 모두 ‘말’이라는 뜻이지만 '언(言)'이 말 소리나, 한 단어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辭)'는 글, 말하는 전체 맥락 등과 관련해서 쓰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사가 安定된다는 것은 또 뭔가...

천자문을 배우게 되었던 것은 우샘(우응순샘)께서 우리를 '까막눈' 처지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자 1000자를 배우는 것이 단순히 글자 모양을 외워 따라 쓰고, 눈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여, 우리는 온갖 것들과 함께 '엄연(嚴然)'이라는 새로운 태도를 알게 되기도 하고, 또 '언사가 안정된다'는 것은 뭔가' 한번 쯤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고지식한 말이지만, 확실히 글자를배우며 우리는 그 뜻도 배우지 않을 수 없도다-0-!;;; 혹은 그 뜻을 나름대로 만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문득 궁금하다. 천자문을 배우는 이들은 많다. 한동안은 '마법천자문'이 어마마한 인기를 끌었다고도 하지 않나. 이들이 배우는 천자문은 내가 배우고 있는 그것과 다르지는 않겠지만 같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아니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것일카. 어떻게 읽고 또 배우냐에 따라 1000자의 글자와 함께 펼쳐지는 세계는 무궁무진할지도 모른다.
전체 2

  • 2015-12-04 15:14
    천자문을 열심히 배워 '마법천자문'을 능가하는 천자문 아이템을 만들어보아라! 읽자마자 환영과 환청이 피어오르는 마약천자문!! ㅋ

  • 2015-12-09 22:43
    매회 재밌게 잘 읽고있어요..천자문도 외우면땡이 아니라 심오한 것이었구만요..울 아들놈 마법천자문 한자는 반대말맞추기 등 게임용아이템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