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6. 나의 '빈 집'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2-24 19:57
조회
697
6. 나의 '빈 집'

  空谷傳聲 虛堂習聽(공곡전성 허당습청 - 빌 공, 골 곡, 전할 전, 소리 성.  빌 허, 집 당, 익힐 습, 들을 청 )

  빈골짝에는 <메아리가 울려> 소리가 전해지고, 빈 집에서 들음을 익힌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새로 시작하는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달라지곤 한다. 삼경스쿨에 다니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달라졌던, 아니 달라져야 했던 것은 나의 월요일이었다. 월요일 저녁에는 규문에서 불교N 세미나가 있는데, 나는 그 전날까지 책을 읽고 월요일 오전에 숙제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알바를 갔다가 저녁에 세미나에 참여한다. ‘오전 숙제 - 오후 알바 - 저녁 세미나’의 일정이다. 그런데 더 이상 월요일 오전까지 숙제를 하고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삼경스쿨 예습·복습이 더해졌으니 나로서는 난관 중에 난관이다. 매번 ‘미리 뭐라도 완벽하게 마무리를 해놓으리라!’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덕택에 월요일 새벽까지도 허둥대기가 일쑤다.

한번은 수업 시작 전까지 숙제를 하고 지난 주 배웠던 천자문 글자들을 외운 다음, 집도 멀지 않건만 택시를 타고 급히 수업에 갔다. 여차저차 숙제 검사를 맡고, 시험을 치고, 옆 사람의 강독이 이어지는데, 자연스럽게 내 마음은 콩밭으로 갔다. “아, 알바 안가면 좋겠다.”, “불교n 숙제 덜 했는데 언제하지.”, “끝나고 다 할 수 있을까.”, “우샘이 늦게 끝내주시면 어떻게 하나.”, “오늘 점심은 뭘까. 점심은 아무래도 힘들려나.” 등등.

그러다가 딱 마주친 것이 위의 구절이다. “空谷傳聲 虛堂習聽”(빈 골짝에는 소리가 전해지고, 빈 집에서 들음을 익힌다)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지만,  우샘은 이 구절을 배움의 태도로 풀어주셨다. ‘마음에 빈 자리가 없다면 어떻게 무엇인가를 새로 배울 수 있겠는가’. 선생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시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그 순간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딴 데 가 있던 마음이 홀딱 들켜버린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야 알고 그러셨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하긴... 어떻게 모를까ㅁ.ㅁ)

공부하다 보면 마음이 딴 데 가는 일이 다반사다. 갖가지 근심·걱정,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어제 본 무한도전, 오늘 본 친구 양말, 떡볶이……. 이런 생각들로 우리 마음은 자주 여기에 있어도 여기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다는 것은 다른 것들로 마음이 가득차 있다는 것. 이와 같은 채로는 배우는 자리에 있어도 배울 수가 없다. 들음을 익힐 수 있는 ‘빈 집’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한 우리 마음을 말한다면 그것은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마음, 배움의 순간에 배움을 향해 열린 마음을 말하는 것일 거다. 그렇다면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들음을 익힐 수 있는 빈 집’으로 만드는 것일 뿐! 그러다 문득, 진짜 '빈 집'을 상상해본다. 공부하는 이의 마음이 진짜 저 빈 집과 같아지려면 실제로도 ‘빈 집’과 같은 장소가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니까 아무런 방해도 없는 텅 빈 곳에서라야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동안 카페에 가는 게 정말 좋았다. “카페에 있으니 마음도 편하고, 공부도 쏙쏙 잘 되는구나~~~” 따뜻한 음료가 앞에 있었고, 온도도 적절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아무 것도 딱히 신경 쓸 것이 없다는 것. 심지어 테이블에 음료를 엎지르고 간다 하여도 누가 뭐라 할 수가 없다. 4500원이면 얻을 수 있는 이 무관심과 친절로 인해 그곳은 내게 작은 천국처럼 다가왔었다. 그렇다면 카페야말로 진정 '들음을 익힐 수 있는 빈 집'이 아닌가! 그곳에 있으면 신경 쓸 게 없어 공부도 쏙쏙 잘 되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런 간섭이나 부대낌이 없는 곳에서야 비로소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산 속 암자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 작은 혜화동 연구실만 해도 시시 때때로 신경 쓸 일이 많은데, 그렇다면 이곳은 '공부지옥'인가?(헐~ 그러고 보니 규문1층은 내가 천국이라 생각했던 카페가 있다. 심지어 이름도 '커피천국'이다!!) 연구실에 공부하러 오시는 많은 선생님들은 또 어떤가. 그들이 사는 곳, 살림살이로 정신없는 그곳은? ‘空谷傳聲 虛堂習聽(공곡전성 허당습청)’, 이 아름다운 구절은 우리에게 아무 소리도 없고, 방해도 없는 산 속 암자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 거다. 오히려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도 배울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게 아닐까.  가장 불편한 곳 어디서도 공부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어디서든 우리 마음이 빈집과 같을 수 있다면, 그 때야말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공부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빈 집에서 들음을 익힌다(空谷傳聲 虛堂習聽)’는 내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하나, 일상인의 마음은 언제나 번잡스럽다. 그 속에서 언제든 새로운 가르침에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둘, 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는가. 배울 수 있는 곳과 배울 수 없는 곳에 장애가 없을 수 있는가. 이 둘은 결국 하나의 물음이다. ‘마음을 언제나 빈집과 같이 할 수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종종 암실에 들어가 버리고 싶기도 하고, 한 동안은 홀로 자주 낙타를 옆에 끼고 인도의 사막을 걸어 다니기도 한다. (물론 마음 속에서의 일이다-..-;;;쿄쿄) 이것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 내 마음이 자주 시끄럽다는 것, 자주 지금 여기를 떠나 있음을  말해준다. 나의 집은 아직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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