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앓이

7. 내가 사는 세상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5-12-31 18:50
조회
520
7. 내가 사는 세상

《천자문》을 읽어보지는 않아도 그 첫 구절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그렇다. 1000개의 겹치지 않는 글자들로 지어진 《천자문》은 ‘하늘과 땅이 검고 누르고, 우주는 넓고 크다’(天地玄黃宇宙洪黃)는, 익숙하지만 아리송한 글귀로 시작한다.(아, 천지현황(天地玄黃)의 “현(玄)”자를 풀이하며 우샘은 노자를 언급했었다. 거기서 “현(玄)”은 도(道)를 말한다고 한다. 미묘하고 알수 없는 것이 도(道)라 "검다(玄)"고 말한 것이라 한다. ) 그리고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별과 별은 벌려 있다.”(日月盈昃辰宿列張) “추위가 오면 더위는 가고 가을에는 거두어 들이며 겨울에는 감추어 둔다”(寒來暑往秋收冬藏)의 구절들이 이어진다. 일종의 우주론이다. “우주란 무엇인가”를 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위의 구절은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물음과는 만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나고 죽고, 작은 시시비비로 울고 웃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들, 웃긴 일들과 멋진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간다. 해와 달만 차고 기우는 게 아니다. 마음도 차고 기운다. 별과 별이 하늘을 수놓은 것처럼 우리들의 갖가지 공(功)과 과오들도 그렇게 이 세상에 수놓여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일들이 검고 누른 하늘과 땅 사이, 넓고 큰 우주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일어난다. 이게 대체 뭘까. 이쯤 되면 내게는 모든 것이 의아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대체 어떤 인연으로 여기서 만나 이렇게 부대끼고 있는지. 어째서 바로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내어 무엇인가를 심고 또 거두기도 하는 것인지. 돌이킬 수 없을 많은 시간들은 또 뭔지.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 이렇게 멍-하게 생겨나버린다. “천지현황 우주홍황”은 이 물음들에 대해 답하지 않는 듯 답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시간은 옛날에서 내일로 흘렀었고 마음은 후회에서 결심으로 흘렀다. 지난 날은 돌아보되 모두 접어 일단 서류봉투에 넣어버렸고, 폐기되든 어쨌든 새로운 날에는 새로운 꿈 속에 있었다. 이것이 나의 새해맞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래도 마냥 들뜨지가 않는다. 대체 어떤 힘들 속에 있고 그리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부터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내 나날들을 만들고 있는 걸까, 어째서 내 마음은 이렇게 멋대로인가. 멍-한 질문들만 또 돌아와 멍-하게 있게 한다. 한가해서 그렇다.(!) 검고 누른 하늘과 땅, 크고 넓은 우주의 한 자리에서 우리는 겪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을 겪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겪는다고 한다. 주워들은 바로는,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 그리고 그 이치상 만남과 헤어짐은 당연하다. 일은 결심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은 붙들 수 없다. 올 해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이런 생각을 할 짬이 나면 대체 이 우주에서 잘 살고 또 죽는 일이 정말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다들 같은 이치 속에 살고 있다. 심지어 풀 한포기도 그러할 것이다.

‘새해스러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니 <천자문> 풀이라도 잘 해보고 싶었는데… 잡념들만 끄적여버렸다. 어쩔 수 없지!ㅎㅎ  내년에는 병신년(丙申年)이라며 원숭이띠 과외학생들, 이제 초6이 되는 꼬맹이들이 흥분해 달려들었다. "선생님 내년은 우리 세상임니다!" 그랬었군. 원숭이들이었다. "만나서 반가우이. 내년에도 잘 부탁하겠소." 내년에는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어떻게 부대끼고 후회하고 기뻐하고 하게 될까. 이 천자문은 언제 또 다 배우고 어떤 구절들과 함께 낑낑거리게 될까.
내년 한 해 또 잘들 보내시기를.^^ 뜻과 같지 않지만 그것이 우주의 멋짐이기도 하다, 고 일단 쓴다. 사람은 그 속에서 나고 죽고 자기의 마음과 행동들을 벼리기도 하는 것 같다.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宇宙洪黃), 이 자리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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