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절차탁마

절탁 서양 4,5주차 후기

작성자
이연주
작성일
2021-03-08 11:19
조회
109
안녕하세요. 일요절차탁마 4,5주차 후기를 맡은 이연주 입니다.

4,5주차에서는 플라톤의 <국가·정체> 5,6,7,8권을 다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이상국가에서부터 출발하여 드디어 이데아가 등장합니다. 이데아, 그것은 무엇인고.. 두 주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어도 이데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데아란 사물의 본질 그 자체로서, 감각기관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낌적 느낌으로 다가가고 싶지만, 사물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느낌으로도 다가갈 수 없는 듯 합니다. 오로지 지성!으로만 도달 할 수 있는 차원의 영역이지요.

6권의 이데아를 접하면서 서양철학반의 논의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이런 것입니다. 이데아란 사물의 본질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세계를 사물로 보아 궁극의 단 하나의 이데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각 사물마다의 이데아가 존재하는 것인지. 즉, 이데아란 단 하나인가, 여러개인가 하는 류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음 장인 7권에서 '좋음의 이데아'를 접하고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데아는 이데아로 존재하되, '좋음의 이데아'라는 궁극의 차원이 있어서 이데아들이 향하는 방향성 그 자체가 좋음으로 향해야 합니다. 사물의 본질 그 자체,  그 자체를 바라볼 줄 아는 것이 철학자이고 본질은 '좋음'을 향해야 하는 것이지요.  서양철학반 다들 이 깨달음의 느낌을 언어화하진 못했지만, 저마다의 지성으로 영감을 받은 듯 했습니다.

5주차 쯤 되니 <국가·정체>를 읽으면서 플라톤 사유의 틀이 점점 보이는 듯 합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올바르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질문으로 개인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사물과 본질, 생성과 존재의 구분이 분명해집니다. 플라톤이 바라보는 이 세계는 오감을 통한 감각기관으로 읽히는 표상의 세계, 그리고 그 너머 본질적 차원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선분 비유', '동굴 비유','태양의 이데아' 등의 비유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또한 이 본질적 차원에 다가가기 위해 산수와 기하학, 천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아주 치밀하게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러한 플라톤의 세계관을 접했을 때 마치 연금술사가 사물의 속성을 읽어내고 우주의 소리를 들어 만물을 깨우친 자로서 살아가는 이미지가 그려지곤 했어요.

소중한 일요일 오전부터 모여 하루 종일 플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이제는 플라톤 선생님이 옆집에 살고 계신 듯 느껴져요. 근대도 아니고 무려 '고대'의 철학자 이야기가 오늘 날 까지 이렇게 영향을 끼치고 우리에게 닿아 영감을 주는 것도 신기하게만 느껴집니다. 열심히 달려와 어느덧 다음주면 플라톤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어떻게 마무리 지을 지 또한 고민하는 한 주가 될 것 같네요:)

 

 
전체 3

  • 2021-03-08 13:57
    옆집에 사시는 플라톤 선생님 ㅋ ㅋㅋㅋㅋ
    진짜 이제 한 주만 더 하면 플라톤 선생님과도 끝이네욥!@>@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 )

  • 2021-03-09 18:40
    거기 어디죠? 저도 플라톤 옆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데요?
    솔직히 제게 플라톤은 서양철학의 원죄 같은 존재로 여겨졌었는데, 이제 부쩍 친해진 느낌입니다.
    이데아도 생성과 변화를 부정하는 초월적 일자라기보다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품어야 할 비전 같은 걸로 여겨지고요.
    아무튼 끝까지 힘내보아요~~

  • 2021-03-10 11:19
    여태까지 플라톤의 이데아를 손쉽게 '이상주의'라고 불러왔는데, 막상 이데아를 배우고 있자니 뭘 두고 그리 당당했나 부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토론하며 어럼풋이 느꼈던 것처럼, 정말 우리와 니체(혹은 들뢰즈와 같이 플라톤과 대립했다고 하는 철학자들)보다 플라톤과 니체가 훨씬 가까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분법과 실체적 사고는 플라톤보다 저희에게 더 많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림자들과 영상들을 마치 실재처럼 믿고 산다는 점에서요.
    플라톤의 이분법이 우리의 편협하고 왜소한 이분법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천 오백년전부터 지금까지 정말 배울 것이 천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