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2학기 두 번째 시간(4.30)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4-26 19:16
조회
82
푸코가 8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한 주 쉬고 푸코에게는 8년이었던 시간을 7일 만에 거슬러서 우리는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활용’을 만났습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성의 역사》 1권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 중 하나는 권력에 대한 푸코의 테제들이 아닐까 합니다. 81~82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옮겨놓은《주체의 해석학》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 당혹감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푸코는 고대로 가면서 자신의 권력이론을 버린 것인가? 푸코가 제시한 권력이론은 근대에만 부합하는 것이었나? 이런 의문들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에 대한 푸코의 관심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이전의 문제의식이 ‘주체’라는 축으로 수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푸코가 보기에 주체는 주체화의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지식-권력의 체제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되는 중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우리를 둘러싼 조건에 일방적으로 규정당하고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주체성을 생산할 것인가 하는 데에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권력 개념으로부터 통치성의 개념으로 이행하면서 푸코가 사유한 저항의 이미지는 권력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곳에 이미 편재하고 있는 저항을 작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을 전복하는 것(사실 이미 푸코는 《성의 역사》 1권에서부터 권력의 단일한 중심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죠)으로서의 저항이 아니라 힘관계 안에서 새로운 선을 하나 작동시키는 것으로서의 저항.

푸코는 고대인들을 우상화하거나 그 시대를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여기지는 않았으나, 분명 그로부터 어떤 비전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푸코가 고대로부터 발견한 것은 ‘존재의 기술’입니다. “‘존재의 기술’이란 인간들이 그것을 통해 스스로 행동규칙을 정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들의 특이한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며, 그들의 삶을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닌, 그리고 어떤 양식의 기준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실천”(미셸 푸코, 《성의 역사 2》, 나남, 31쪽)입니다. 사회의 지배적 코드, 특정한 시대의 담론적이고 비담론적인 배치에 복종하고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존에 형식을 부여하기 위한 신중하고 자발적인 실천. 푸코는 고대사회로부터 자기 주체화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오직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하여, 환원 불가능한 고유한 실존의 양식을 생산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과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엄격하고 혹독한 도덕적 규율과 행위의 양식을 스스로에게 부여했습니다. 사회에 쓸모 있는 노동자가 되고, 정상적인 어른이 되고, 질서를 따르는 건전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혼의 평정에 이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금욕적 훈련을 수행했던 것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쾌락의 활용’입니다. 우리에게 쾌락이란 욕망의 대가이자 목표점입니다.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은 ‘어떻게 더 많은 쾌락을 누릴 것인가?’입니다. ‘어떻게 나의 쾌락의 용법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아니죠.

그리스-로마인들에게 쾌락의 활용이 중요했던 이유는 그들이 무리 도덕에 복종하는 대신에 자기 윤리를 만들어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무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자들은 정해진 규칙과 금기를 지키면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쾌락을 무한히 충족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무리로부터 한 발 벗어난 자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자신의 몸과, 쾌락과, 규칙과, 다른 이들과, 환경과, 시간과 맺는 관계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 수 있어야 하죠. 아마도 이들에게 자신의 리듬, 자기만의 실존의 양식을 생산하고 또 그것을 계속 실험하는 것 외에 자유라고 할 만한 것은 따로 없었을 것입니다.

푸코는 ‘규약지향성’의 도덕과 ‘윤리지향성’의 도덕을 구분합니다. 전자가 지배적 코드에 따르는 무리적 도덕이라면 후자는 자기 실천에 중점이 놓인 강자의 도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규약적 도덕이 지배적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언제나 오작동의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든 사회적 코드에 복종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고 사람에 따라서 어떠한 문제는 중대하게 또 다른 문제는 아주 사소하게 느끼죠. 그리고 미약할지라도 도덕적 주체성립에는 자기와의 관계라는 문제가 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규약적 도덕이 지배적인 사회에 살더라도 언제나 저항의 여지는 있다는 것이죠. 채운샘이 언급하신 런던 경찰처럼 자기 직업이 강요하는 윤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그리고 지금 우리처럼 주식의 등락이 아니라 푸코의 철학과 다음 주 과제를 걱정하는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때 우리는 우리를 규정하는 중력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에는 《성의 역사》 2권의 1장 끝까지 읽고 정리를 해오시면 됩니다. 각자 과제는 인원수만큼 프린트 해주시구요. 그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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