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2학기 세 번째 시간(5.7)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5-04 13:17
조회
80
“실천적 사고가 필요로 하는 것은 법률로서 효력을 갖게 될 문헌 같은 것이 아니라, 일반적 원칙들을 고려하면서 제때에, 그 상황과 목적에 따라 행동을 인도하게 될 테크네, 혹은 ‘실천’, 수완이다. 따라서 이 같은 형태의 도덕에서 개인은 자기의 행동규칙을 보편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세우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개인의 행동을 개별화하고 변조시키며 심지어 그의 행동에 특이한 광채를 부여할 수도 있는 어떤 태도와 추구에 의해 개인의 윤리적 주체화가 이루어지는데, 이같이 특이한 광채는 규칙이 개인의 행동에 합리적으로 심사숙고된 구조를 제공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미셸 푸코, 《쾌락의 활용》, 102쪽)

자기의 행동규칙을 보편화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개별화하고 변조시키는 특이한 실천을 통해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주체화하기. 푸코는 고대 그리스의 쾌락의 활용을 연구하면서, 다분히 니체적인 문제의식을 재활성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주어진 도덕적 당위에 일방적으로 복종하거나, 초월적인 심급에 비추어 자신과 타인을 심판하거나, 주체의 내면과 의도를 집요하게 해부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떻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힘의 표현으로서의 도덕을 발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기 도덕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인들이 주는 영감은, 이들은 결코 도덕의 문제를 ‘보편’과 관련시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개별화하는 것, 그러나 단지 보편에 개별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의 기술을 갈고닦음으로써 스스로의 고유성을 항구적으로 구성해내는 것. 이것이 고대적 윤리가 지닌 (근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힘의 벡터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편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규칙을 따르는데 왜 너는 따르지 않느냐, 어떻게 법이 금지하는 행위들을 서슴없이 행할 수 있느냐, 어째서 네 이기심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피해를 초래하느냐, 네 행위에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등등. 이런 도덕적 비난은 ‘보편’과 ‘순수’라는 관념에 번갈아 의존합니다. 보편적 규약과 순수한 의도. 이것이 우리의 도덕을 이루는 핵심적인 두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보편’에 대한 관념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노예적이죠. 모두가 동일한 도덕원칙에 따른다는 전제를 통해서만 스스로에게 그러한 규칙을 부과할 수 있다는 건 심리적 의존성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좀더 생각해보면 보편과 개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 자체가 더욱 문제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보편과 공공의 차원에 있는 것들을 도덕의 문제로, 개별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놓여 있는 것들을 취향의 문제로 곧잘 환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런 구획은 정말로 자명한 것일까요? 가령 우리가 폭식을 하고 과소비를 하는 것은 이미 (취향이나 프라이버시로 환원할 수 없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니체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건 그렇지 못한 것이건 간에 특정한 ‘양식(樣式)’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삶에 있어서 더 없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인들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양식이 풍속이나 질서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디오게네스를 보세요!). 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의 순간들, 자기 자신의 쾌락과 고통, 그리고 다른 이들과 자신의 관계를 특정한 삶의 양식을 조형해내기 위한 재료로 삼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외부적 조건에 일방적으로 규정당하지 않는 실존의 양식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것만이 그리스인들에게는 윤리적 실천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보편적 당위가 아니라 특정한 삶의 비전에 따라 행동을 인도할 테크네, 실천, 수완이 ‘도덕’의 척도로 간주됩니다. 어떻게 가장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될 것인가? 어떻게 길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도 아닌 방식으로 자기 자신과 능동적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남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쾌락의 활용》 2장의 3번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공통과제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해봤는데요, 푸코가 번호를 매겨놓은 각 개념들 혹은 주제들을 각각 간략히 각자 자신의 말로 정리하고 그 아래에 질문이나 코멘트를 달아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주에는 2장의 1, 2, 3번인 ‘일반적 관리법에 대하여’와 ‘쾌락의 관리법’, ‘위험과 해독’을 각각 짧게 정리하고 그 밑에 본인의 질문이나 생각을 덧붙여서 준비해오시면 되겠습니다. 간식은 난희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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