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세미나

성역 2학기 다섯 번째 시간(5.21)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5-18 20:24
조회
68
그리스인들이 줄곧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주체’가 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납작하게 옮기자면 주체적으로 살기. 그런데 이들에게 ‘주체’는 주어져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주체는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주체는 자신 속에서 느슨하게 풀어지는 힘을 통제하고, 자기 에너지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그리고 자기의 생명을 그의 일시적 존재를 넘어서 지속될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자기 능력으로 특징”(213쪽) 됩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것인가? 이는 달리 말하면 자신의 쾌락과의 관계 속에서, 가정에서의 활동 속에서, 정치적 활동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된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나답게 산다’라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의 익숙한 충동들에 먹이를 주고, 자신의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반면 그리스인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자신의 진짜 욕망인지를 궁금해 하지도 않았죠. 사회에서 주입되거나 타인에 의해 강요된 것과 나의 진짜 욕망을 구분하거나, 비정상적이고 악한 충동과 자신의 선한 의지를 대립시키는 사고방식은 그리스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통해 펼쳐지는 여러 충동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적절함’을 구성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에 관련된 질문방식입니다. 무엇이 진짜이거나 가짜인가, 무엇이 선하거나 악한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 니체가 사람들은 자기 위장의 크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어떻게 행동할 때 스스로 가장 능동적일 수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이러한 질문의 방식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억압’과 ‘해방’의 구도가 나타날 여지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 자유일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리스인들이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데에는 ‘수련’과 ‘금욕’이라는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자기 자신’이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자아를 찾아 헤매는 대신에 지금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는 자신의 충동과 욕망과 행위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행복이란 무언가를 많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최상의 관계를 맺는 것이었는데, 이때 ‘최상의 관계’란 누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놓인 조건과 각자의 성향과 사회적 지위 등등을 고려하여 매번 스스로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최상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가장 적절한 관계를 도출해내고 유지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수련과 금욕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푸코가 고대 그리스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니체적 의미의 ‘주인의 도덕’이 무엇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4장 끝까지 읽어 오시면 됩니다. 그럼 곧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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