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백투고] 6주차(4.22)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4-18 21:02
조회
77
역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을 읽고 세미나를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과거 철학자들이 직접 남긴 기록이 없어서 여기저기에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2차 문헌들로 그 사유를 파악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파편적이기도 하고, 증언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해서요. 그래도 역시 세미나는 힘이 셉니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조금씩이나마 생각해볼 거리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1장 ‘희랍철학의 여명기’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우주발생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오르페우스는 태초에 카오스와 뉙스(밤의 여신), 에레보스(어둠의 신), 타르타로스(지옥, 지하)가 있었으며 뉙스가 에로스를 낳고 에로스에 의해 다른 모든 것들이 교합하여 여러 신들이 탄생했다고 말합니다(아니, 그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째서 혼돈, 밤, 어둠, 지하가 가장 처음에 온다고 생각했을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신들의 왕이자 질서의 상징인 제우스는 오히려 몇 세대가 지난 뒤에야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따져보자면 여기서는 질서와 무질서가 대립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무질서와 어둠의 차원으로부터 질서와 빛이 탄생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의 세계, 규범과 코드, 상식의 차원은 보다 근원적인 불확정성과 무규정성의 세계 위에 정초되어 있다는 통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것이야말로 자명한 것이라고 믿는 당위나 가치도 근원적인 혼돈으로부터 파생된 예외적이고 우연적인 결과물일 따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는 삶이라는 것이 질서와 의미만으로는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탈레스와 같은 최초의 철학자들과 그 이전의 예언자들(?)을 비교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이들 각각은 신화적 사고(mytos)와 논리적 사고(logos)를 대표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무튼 저는 오르페우스와 같은 신화적 예언자들은 ‘기원’에 대해 질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도록 해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러한 질문은 세계를 의미로 가득한 곳으로 출현시킵니다. 벼락이 치는 것은 제우스의 분노이고 인간의 고통은 신들과 함께 살던 황금시대가 몰락한 결과라는 식으로, 온갖 이야기들로 사람들의 삶을 채워줄 것입니다. 이와 달리 탈레스 이후의 자연철학자들은 기원이 아니라 근원에 대해 질문합니다. 탈레스가 세계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태초에 물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본질이 물이라는 뜻이었죠. 이러한 접근법은 세계를 인간 손 안에 넣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습니다. 변화무쌍한 현상들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그것들을 하나의 원리 안에서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둘 중 무엇이 더 참된 질문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우리 개인의 내면 안에서도 신화적 접근과 논리적 접근이 공존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 외에도 7현인들의 잠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에 대해서도 토론했습니다. 제 후기가 지난 시간 토론 내용을 복기하는 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시간에는 338쪽까지(멜리소스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 각자 메모를 해오시면 토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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