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비기너스 세미나

[백투고] 시즌 1 마지막 시간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21-05-09 21:50
조회
94
“모든 것은 있는 것에서 생기지만, 가능적으로는 잇고 현실적으로는 있지 않은 것에서 생겨난다. 바로 이것이 아낙사고라스의 하나이고(실로 이 표현이 ‘모든 것은 함께’보다 낫다),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섞인 것(meigma)이다.”(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아낙사고라스의 철학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생성과 소멸을 섞임과 분리됨으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아낙사고라스는 사랑(혼합)과 불화(분리)를 운동의 원인으로 제시했던 엠페도클레스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점은 엠페도클레스가 사랑과 불화의 순환을 이야기했던 반면에 아낙사고라스는 섞임과 분리됨을 보다 추상적인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낙사고라스에게서 섞임과 분리됨은,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불화처럼 서로 투쟁하며 세계를 전개해가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의 두 측면을 추상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낙사고라스가 ‘섞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것은 생겨나는 모든 것들이 있지 않은 것들로부터 생겨날 수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이어받은 결과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이 우주 안에서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습니다. 인간은 온갖 물건들을 끝도 없이 생산해내고 그런 생산의 동력이 인간의 노동력이나 기계의 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생산이란 (있지 않은 것에서 무언가를 탄생시킨다는 의미의) ‘창조’가 아닙니다. 실은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일일 뿐이죠. 혹은 자연 안의 온갖 힘들이 작용한 결과를 인간의 뜻대로 취하는 것이겠죠. 아무튼 자연 안에 그 어떤 것도 무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는 아낙사고라스의 전제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無에서 有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생겨남’이란 무엇일까요?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실제로 그것은 생겨나는 것처럼 보일 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섞여” 있는 상태로부터 무언가가 분리되어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분리는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섞여 있는 상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모든 것들과 섞여 있으나 “무수히 많은 것들의 섞임에서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것에 따라 이름 붙여”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잘 익은 토마토를 보고 ‘빨갛다’고 말하지만 토마토의 빨간색은 그 자체로 빨간 것이 아니라 여러 색깔들이 섞여 있는 가운데 빨간 것이 가장 우세하게 드러난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일반적인 차원으로 확장해서 이해해보면 이 우주는 여전히 힘들의 섞임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느 국면에서 임시적으로 인간이나 나무, 고양이 같은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각각을 개별적인 이름으로 지칭하지만 사실 다른 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 안에서 가장 지배적인 힘이 표현되고 있을 뿐인 거죠. 따라서 아낙사고라스는 “어떤 사물도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있는 사물들로부터 함께 섞이고 분리” 된다고 말합니다. 이때 소멸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섞여 있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거나 특정한 비율에 따라 표현되던 힘이 다른 비율로 넘어가는 것이겠죠.

다음주 공지입니다. 다음주는 시즌1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정한 주제로 각자 한 학기 공부를 정리하는 글을 써 오는 것이 이번 과제입니다. 분량은 정하지 않았지만 2페이지 내외로 써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목요일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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