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 위령공 13~29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6-19 18:19
조회
103
180617 격몽스쿨 복습

 

위령공 13장

 

子曰 臧文仲 其竊位者與 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문중은 그 지위를 훔친 자로다. 유하혜의 능력을 알면서도 함께 자리하지 않았으니.”

 

竊位 言不稱其位而有愧於心 如盜得而陰據之也 柳下惠 魯大夫展獲 字禽 食邑柳下 諡曰惠 與立 謂與之立於朝 范氏曰 臧文仲 爲政於魯 若不知賢 是不明也 知而不擧 是蔽賢也 不明之罪 小 蔽賢之罪 大 故 孔子以爲不仁 又以爲竊位

지위를 훔쳤다는 것은 그 자리에 걸맞지 못해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어서 도적질을 하여 얻고 몰래 처한 것과 같음을 말한다. 유하혜는 노나라 대부 전획이니 자는 금이다. 유하에 식읍을 갖고 있었고 시호는 혜다. 함께 자리한다는 것은 함께 조정에 섬을 말한다. 범씨가 말했다. 장문중은 노나라에서 정치를 하였다. 만약 능력있는 자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밝지 못한 것이다. 알면서도 천거하지 않는다면 이는 능력있는 자를 엄폐한 것이다. 밝지 못한 죄는 작고 능력있는 자를 엄폐한 죄는 크가. 드러므로 공자께서 불인하다고 여기신 것이고 또 지위를 훔쳤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위령공 14장

 

 

子曰 躬自厚而薄責於人 則遠怨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몸소 자신을 강하게 책망하고 남을 약하게 책망한다면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

 

責己厚故 身益修 責人薄故 人易從 所以人不得而怨之

자신을 책하기를 강하게 하면 자신이 더욱 수양되고 남을 책하기를 약하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따르기 쉽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원망할 수 없다.

 

 

위령공 15장

 

子曰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고 말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如之何如之何者 熟思而審處之辭也 不如是而妄行 雖聖人 亦無如之何矣

‘어찌할까 어찌할까’란 사려깊게 살펴서 처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지 하지 않으면 망령되게 행동하니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어찌할 수가 없다.

 

위령공 16장

 

子曰 群居終日 言不及義 好行小慧 難矣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럿이서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서 말이 마땅함에 미치지 않고 작은 지혜를 행하기를 좋아한다면 어렵도다.”

 

小慧 私智也 言不及義 則放辟邪侈之心滋 好行小慧 則行險僥倖之機熟 難矣哉者 言其無以入德而將有患害也

작은 지혜는 사사로운 지혜이다. 말이 마땅함에 미치지 못하면 방자하고 치우치고 어긋나고 사치하게 되는 마음이 범람한다. 작은 지혜를 행하기를 좋아하면 위험을 행하면서도 요행껏 행동하는 습관이 든다. 어렵도다 라는 말은 덕에 들어갈 수 없어 걱정과 해로움이 있게 된다는 말이다.

 

위령공 17장

 

子曰 君子 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로써 그것을 행하고 삼가면서 그것을 내고 믿음으로 그것을 이룬다. 군자로구나.”

 

義者 制事之本 故 以爲質幹 而行之必有節文 出之必以退遜 成之必在誠實 乃君子之道也

程子曰 義以爲質 如質幹然 禮行此 孫出此 信成此 此四句 只是一事 以義爲本 又曰 敬以直內 則義以方外 義以爲質 則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의(義)란 일을 제어하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근간으로 삼고, 그것을 행할 때는 반드시 절문이 있으며, 그것을 낼 때는 반드시 물러나 삼가는 것으로써 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반드시 성실함으로써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자의 도다. 정자 말하길 의를 바탕으로 삼는 것을 근간과 함께 하는 것이다. 예로 이것을 행하고 삼가는 것으로 이것을 내고 믿음으로써 그것을 이루는 것이다. 이 네 구절은 다만 이 한 가지 일이니 의를 근본으로 삼는다. 또 말씀하셨다. 삼가는 것에서 마음을 곧게 하면 의로써 밖을 방정하게 하고 의를 바탕으로 삼으면 예로써 이것을 행하고 삼가는 것으로 이것을 내고 신의로써 이것을 이룰 수 있다.

 

위령공 18장

 

子曰 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병통으로 여기고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은 병통으로 여기지 않는다.

 

 

위령공 19장

 

子曰 君子 疾沒世而名不稱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죽을 때까지 이름이 칭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范氏曰 君子 學以爲己 不求人知 然 沒世而名不稱焉 則無爲善之實 可知矣

범씨가 말했다. 군자는 학문을 자신을 위하여 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이름이 칭해지지 않는다면 선을 행한 실질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위령공 20장

 

子曰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謝氏曰 君子 無不反求諸己 小人 反是 此君子小人所以分也

楊氏曰 君子雖不病人之不己知 然 亦疾沒世而名不稱也 雖疾沒世而名不稱 然 所以求者 亦反諸己而已 小人 求諸人 故 違道干譽 無所不至 三者 文不相蒙 而意實相足 亦記言者之意

사씨가 말했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돌이켜 구하고 소인은 반대로 한다. 이것이 군자와 소인의 차이다. 양씨가 말했다. 군자는 비록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해도 병통으로 여기지 않으나 또한 종신토록 이름이 칭해지지 못함을 싫어한다. 하지만 구하는 것은 또한 자신에게 돌이킬 뿐이다.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그러므로 명예를 구하여 도에서 어긋나며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 이 세 가지는 글이 서로 이어지지 않으나 뜻은 실로 서로 충족된다. 또한 공자가 하신 말씀의 뜻이다.

 

 

위령공 21장

 

子曰 君子 矜而不爭 群而不黨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긍심을 갖지만 다투지 않고 무리에 속하지만 편당 짓지 않는다.”

 

莊以持己曰矜 然 無乖戾之心故 不爭 和以處衆曰群 然 無阿比之意故 不黨

떳떳하게 자신을 갖추는 것을 긍(矜)이라 한다. 그러면서 어그러진 마음이 없으므로 다투지 않는 것이다. 화목하게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군(群)이라 한다. 그러면서 아첨하는 뜻이 없으므로 편당 짓지 않는 것이다.

 

 

위령공 22장

 

 

子曰 君子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만 듣고 다른 사람을 천거하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말을 무시하지 않는다.”

 

위령공 23장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말했다. “한 마디로 종신토록 행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推己及物 其施不窮 故 可以終身行之

尹氏曰 學貴於知要 子貢之問 可謂知要矣 孔子告以求仁之方也 推而極之 雖聖人之無我 不出乎此 終身行之 不亦宜乎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면 그 베푸는 바가 끝이 없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행할 수 있다. 윤씨가 말했다. 배우는데 요점을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자공의 질문은 요점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공자께서 그에게 인을 구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것을 미루어 지극히 한다면 비록 성인의 무아(無我)의 경지라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종신토록 그것을 행하는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위령공 24장

 

子曰 吾之於人也 誰毁誰譽 如有所譽者 其有所試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남에 대해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 만약 칭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험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毁者 稱人之惡而損其眞 譽者 揚人之善而過其實 夫子無是也 然 或有所譽者 則必嘗有以試之 而知其將然矣 聖人善善之速 而無所苟如此 若其惡惡 則已緩矣 是以 雖有以前知其惡 而終無所毁也

훼(毁)란 남의 단점을 말하면서 진실을 덜어내는 것이다. 예(譽)란 남의 장점을 찬양하면서 그 실제보다 지나치게 하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이런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 칭찬하는 경우가 있다면 일찍이 그를 시험함이 있어서 그 장차 그러함을 아신 것이다. 성인은 장점을 빠르게 칭찬하셔서 구차히 하는 바가 없음이 이와 같다. 가령 그 단점을 미워하면서도 이미 느슨하다. 이 때문에 비록 그의 단점을 알더라도 끝내 그를 헐뜯는 일이 없으시다.

 

斯民也는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

“이 백성이란 삼대시대의 정직한 도를 행해 왔기 때문이다.”

 

斯民者 今此之人也 三代 夏商周也 直道 無私曲也 言吾之所以無所毁譽者 蓋以此民 卽三代之時 所以善其善, 惡其惡 而無所私曲之民 故 我今亦不得而枉其是非之實也

尹氏曰 孔子之於人也 豈有意於毁譽之哉 其所以譽之者 蓋試而知其美故也 斯民也 三代所以直道而行 豈得容私於其間哉

이 백성들이란 지금 이 사람을 말한다. 삼대는 하, 상, 주나라다. 정직한 도란 사사로이 곡해함이 없는 것이다. 내가 남을 헐뜯거나 지나치게 칭찬하는 바가 없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바로 삼대시대에 그 선을 선하다 여기고 그 악을 미워해 사사로이 곡해하는 바가 없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또한 그 시비의 실질을 굽힐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윤씨가 말했다. 성인이 남에 대해 어찌 헐뜯거나 칭찬함에 뜻을 두시겠는가. 그가 칭찬하신 것은 시험해서 그의 장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백성이란 삼대시대에 정직한 도를 행한 것이니, 어찌 그 사이에 사사로움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위령공 25장

 

子曰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借人乘之 今亡矣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오히려 사관들이 글을 빼놓고 기록하지 않음과, 말을 소유한 자가 남에게 빌려줘서 타게 하는 것은 보았는데 지금은 없구나.”

 

楊氏曰 史闕文, 馬借人此二事 孔子猶及見之 今亡矣夫 悼時之益偸也

愚謂 此必有爲而言 蓋雖細故 而時變之大者 可知矣

胡氏曰 此章義疑 不可强解

양씨가 말했다. “사관이 글을 빼놓음과 말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두 일은 공자께서는 오히려 보셨는데 지금은 없으니, 시대가 더욱 각박해졌음을 애도하신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 하신 말씀일 것이니, 비록 작은 문제이지만 시대의 변화가 큼은 알 수 있다.

호씨가 말했다. 이 장의 뜻에 의심스러움이 있는 것은 억지로 해석할 수 없다.

 

 

위령공 26장

 

子曰 巧言 亂德 小不忍則亂大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교묘한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모의를 어지럽힌다.”

 

巧言 變亂是非 聽之 使人喪其所守 小不忍 如婦人之仁, 匹夫之勇 皆是

교묘한 말은 옳고 그름을 변질시키고 어지럽히니 이것을 들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지키는 바를 잃게 한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한다는 것은 부인의 인과 필부의 용맹과 같은 것이니, 모두 이것이다.

 

 

위령공 27장

 

子曰 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며 여러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라.”

 

楊氏曰 惟仁者 能好惡人 衆好惡之而不察 則或蔽於私矣

양씨가 말했다. 오직 인자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좋아하고 미워한다 해서 살펴보지 않으면 혹 사사로움에 가려질 수 있다

 

 

위령공 28장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요,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弘 廓而大之也 人外無道 道外無人 然 人心有覺 而道體無爲 故 人能大其道 道不能大其人也

張子曰 心能盡性 人能弘道也 性不知檢其心 非道弘人也

홍(弘)은 넓혀서 크게 하는 것이다. 사람 밖에 도가 없고 도 밖에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인식하는 것이 있고 도체는 무언가를 하는 게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도를 크게 할 수 있고 도는 사람을 크게 할 수 없다.

장자는 말했다. 마음이 본성을 다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다. 본성은 마음을 점검할 수 없으니 이것이 도가 사람을 크게 하는 게 아님이다.

 

 

위령공 29장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을 두고 진짜 허물이라 이른다.”

 

過而能改 則復於無過 唯不改 則其過遂成 而將不及改矣

허물이 있되 고칠 수 있다면 허물이 없는 것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오직 허물을 고치지 않는다면 마침내 허물이 완성되어 고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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