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 위령공 끝까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6-26 18:35
조회
88
180624 격몽스쿨 복습

위령공 30장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하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자지도 않으며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남는 것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했다.”

此 爲思而不學者言之 蓋勞心以必求 不如遜志而自得也 李氏曰 夫子 非思而不學者 特垂語以敎人爾

이것은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는 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반드시 구하려고 하는 것은 뜻을 겸손히 하고 스스로 얻는 것만 못하다. 이씨가 말했다. 공자께서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은 사람이 아니며 다만 말씀을 남겨 다른 사람을 가르친 것일 뿐이다.

위령공 31장

子曰 君子 謀道 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 憂道 不憂貧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먹을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밭을 가는 그 가운데 굶주림이 있고 배우는 가운데 록이 있는 것이다. 군자는 도를 근심하지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耕 所以謀食 而未必得食 學 所以謀道 而祿在其中 然 其學也 憂不得乎道而已 非爲憂貧之故 而欲爲是以得祿也

尹氏曰 君子 治其本而不卹其末 豈以自外至者 爲憂樂哉

밭을 가는 것은 먹을 것을 추구하는 것인데 반드시 먹을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배움은 도를 추구하는 것인데 녹은 그 가운데 있다. 그러나 그 배움이란 도를 얻지 못할까 근심할 뿐이지 가난을 걱정하기 때문에 이것을 해서 녹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윤씨가 말했다. 군자는 그 근본을 다스리고 그 말단은 근심하지 않으니 어찌 밖에서부터 온 것을 가지고 근심하고 즐거워하겠는가.

위령공 32장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가 거기 미치더라도 仁이 그것을 지킬 수 없다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知足以知此理 而私欲間之 則無以有之於身矣

지혜가 그 이치를 알 수 있지만 사욕이 그 사이에 낀다면 자기 몸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인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더라도 장엄함으로 백성들에게 군림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涖 臨也 謂臨民也 知此理而無私欲以間之 則所知者在我而不失矣 然 猶有不莊者 蓋氣習之偏 或有厚於內而不嚴於外者 是以 民不見其可畏而慢易之 下句放此

군림한다는 것은 임한다는 것이니, 백성에게 임하는 것을 뜻한다. 이 이치를 알고 사욕이 관계하게 함이 없으면 아는 것이 나에게 있어 잃음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장엄하지 않음이 있으니 기질과 습관이 치우침이 있거나 혹은 안으로 후하나 밖으로는 엄숙하지 못한 자인ㄱ jt이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그 두려워할만한 것을 보지 못해 업신여기고 쉽게 여기는 것이니 아래 구절도 마찬가지다.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인이 그것을 지킬 수 있으며 장엄함으로 백성들에게 임해도 그들을 예로써 동원하지 않는다면 선하지 못하다.”

動之 動民也 猶曰鼓舞而作興之云爾 禮 謂義理之節文

愚謂 學至於仁 則善有諸己而大本立矣 涖之不莊 動之不以禮 乃其氣禀學問之小疵 然 亦非盡善之道也 故 夫子歷言之 使知德愈全則責愈備 不可以爲小節而忽之也

‘그들을 움직인다’는 것은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이니, 고무하여 일어서게 한다는 말과 같다. 예는 의리의 절문을 일컫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학문이 인에 이르면 선을 자신이 갖게 되며 큰 근본이 확립되니 백성들에게 장엄하게 임하지 않고 그들을 동원하는데 예로써 못함은 바로 그 기품과 학문의 작은 흠결일 뿐이다. 그러나 또한 지극한 선과 도는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이것을 일일이 말씀하셔서 더욱 덕을 완전하게 하여 책임이 더욱 구비되니 이것을 작은 일이라 여겨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알게 하신 것이다.

위령공 33장

子曰 君子 不可小知而可大受也 小人 不可大受而可小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작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상대방에게서 받는 것은 크다. 소인은 큰 것을 받지는 못하지만 작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此 言觀人之法 知 我知之也 受 彼所受也 蓋君子於細事 未必可觀 而材德足以任重 小人 雖器量淺狹 而未必無一長可取

이것은 사람을 관찰하는 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知는 내가 아는 것이고 受는 저가 받는 것이다. 군자는 작은 일은 반드시 볼만한 것이 아니나 재능과 덕은 중임을 맡을 만하며 소인은 비록 기량이 얕고 좁으나 반드시 하나의 장점도 취할만한 것은 아니다.

위령공 34장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에게 인이란 물과 불보다 중요하다. 내가 물과 불을 밟고 죽은 자는 보았어도 인을 밟고 죽은 자는 보지 못했다.”

民之於水火 所賴以生 不可一日無 其於仁也亦然 但水火外物 而仁在己 無水火 不過害人之身 而不仁則失其心 是 仁有甚於水火 而尤不可一日無者也 況水火 或有時而殺人 仁則未嘗殺人 亦何憚而不爲哉 李氏曰 此 夫子勉人爲仁之語 下章放此

백성들은 물과 불에 의지하여 사니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 인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물과 불은 외물이고 인은 자신에게 있다. 물과 불이 없으면 사람의 몸을 해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인이 없으면 그 마음을 잃는다. 이것은 인이 물과 불보다 중요하고 더욱이 하루도 없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물과 불은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인은 일찍이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또한 무엇을 꺼려 하지 않으리오. 이씨가 말했다. 이것은 공자께서 사람들에게 인을 하라고 권면하는 말이다. 아래 장도 마찬가지다.

위령공 35장

子曰 當仁 不讓於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과 관련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當仁 以仁爲己任也 雖師 亦無所遜 言當勇往而必爲也 蓋仁者 人所自有而自爲之 非有爭也 何遜之有

程子曰 爲仁在己 無所與遜 若善名在外 則不可不遜

당인(當仁)이란 인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는 것이다. 비록 스승이라도 또한 양보할 바가 없다는 것은 마땅히 용감하게 가서 반드시 그것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이란 사람이 스스로 소유하는 바이고 스스로 하는 바이다. 다툼이 있는 게 아니다. 무슨 양보함이 있겠는가.

정자 말씀하셨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다. 양보하는 것에 관여되는 바는 없다. 가령 선한 명칭이 밖에 있으니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

위령공 36장

子曰 君子 貞而不諒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바르고, 작은 신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貞 正而固也 諒 則不擇是非而必於信

정(貞)은 바르고 견고함이다. 양(諒)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믿음에만 기필하는 것이다.

위령공 37장

子曰 事君 敬其事而後其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주를 섬기며 그 일을 공경하고 먹는 일은 뒤로 해야 한다.”

後 與後獲之後同 食 祿也 君子之仕也 有官守者 修其職 有言責者 盡其忠 皆以敬吾之事而已 不可先有求祿之心也

후(後)는 ‘뒤에 잡는다’라는 것의 後와 같다. 먹는 것은 녹이다. 군자는 벼슬할 때 관수가 있는 자는 그 직무를 닦고 언로에 책임이 있는 자는 그 충성을 다해서 모두 자신의 일을 공경할 뿐이다. 녹을 구하는 마음을 먼저 두어서는 안 된다.

위령공 38장

子曰 有敎 無類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이 있으나 가리는 것은 없다.”

위령공 39장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위령공 40장

子曰 辭 達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이란 통달할 뿐이다.”

위령공 41장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 某在斯

악사 면(冕)을 만날 때 계단에 이르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계단입니다”라고 하셨다. 자리에 이르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자리입니다.” 라고 하셨다. 모두 앉자 공자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길 “여기는 누가 있고 여기는 누가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師冕出 子張問曰 與師言之道與

악사 면이 나가자 자장이 물었다. “악사와 말하는 방법입니까?”

子曰 然 固相師之道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진정 악사를 도와주는 방법이다.”

 

 

 

위령공 편이 끝났네요. 다음 시간에는 암송시험이 있습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