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 계씨 1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8-07-14 16:25
조회
70
계씨 1장

 

季氏將伐顓臾

계씨가 전유를 치려 하였다.

 

顓臾는 國名이니 魯附庸也라

전유는 나라 이름인데, 노나라의 부용국이다.

 

冉有季路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염유와 계로가 공자를 뵙고 말했다. “계씨가 전유에서 일을 벌이려 합니다.”

 

按左傳 史記 二子仕季氏不同時 此云爾者 疑子路嘗從孔子 自衛反魯 再仕季氏 不久而復之衛也

<좌전>과 <사기>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계씨에게서 동시에 벼슬한 때는 없는데 여기에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아마도 자로가 일찍이 공자를 따라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와 다시 계씨 밑에서 벼슬하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위나라로 가서 벼슬한 듯하다.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冉求爲季氏聚斂 尤用事 故 夫子獨責之

염구는 계씨를 위하여 세금을 거두면서 더욱 일을 주도하였으므로 공자께서 그를 유독 책망하신 것이다.

 

夫顓臾 昔者 先王以爲東蒙主 且在邦域之中矣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爲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산의 제주로 삼으셨고 또한 노나라 안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는 사직의 신하이다. 어찌 정벌할 수 있단 말인가?”

 

東蒙 山名 先王 封顓臾於此山之下 使主其祭 在魯地七百里之中 社稷 猶云公家 是時 四分魯國 季氏取其二 孟孫叔孫 各有其一 獨附庸之國 尙爲公臣 季氏又欲取以自益 故 孔子言顓臾 乃先王封國 則不可伐 在邦域之中 則不必伐 是社稷之臣 則非季氏所當伐也 此 事理之至當 不易之定體 而一言盡其曲折 如此 非聖人 不能也

동몽은 산 이름이다. 선왕은 전유를 이 산 아래에 봉하여 그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고 노나라 땅 칠백 리 안에 있었다. 사직은 공신의 집안과 같다. 당시 노나라를 넷으로 나누어 계씨가 그 둘을 갖고 손씨와 숙손씨가 각각 그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오직 부용국만이 아직 노나라의 신하였는데 계씨가 또한 그것을 취해 자신에게 보태려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전유는 선왕이 봉한 나라이니 정벌할 수 없고 나라 안에 있는 지역이므로 정벌할 필요가 없고 이는 사직의 신하이므로 계씨가 정벌할 도리가 없음을 말씀하셨다. 이는 사리의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요체이다. 그런데 한 마디로 그 곡절을 다 하신 것이 이와 같으니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는 皆不欲也

염유가 말했다. “계손께서 하시려는 것이지 저희 두 신하는 모두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夫子 指季孫 冉有實與謀 以夫子非之 故 歸咎於季氏

부자는 계손을 가리킨다. 염유는 실제로 모의에 참여했으나 공자께서 그 일을 비난하셨기에 계씨에게 허물을 돌렸다.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야, 주임이 말하기를 ‘능력을 펴서 자리에 나아가고 할 수 없으면 그만두라’고 하였다.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못하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못하면 장차 저 도와주는 사람은 어디에 쓰겠는가?”

 

周任 古之良史 陳 布也 列 位也 相 者之相也 言二子不欲 則當諫 諫而不聽 則當去也

주임은 옛 어진 사관이다. 진(陳)은 펴는 것이다. 열(列)은 자리다. 상(相)은 장님을 돕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원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간해야 하고 간해도 듣지 않는다면 마땅히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且爾言 過矣 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또 네 말은 잘못되었다. 호랑이와 들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왔으며 거북이 등 껍질과 옥이 궤 속에서 망가졌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兕 野牛也 柙 檻也 櫝 匱也 言在柙而逸 在櫝而毁 典守者不得辭其過 明二子居其位而不去 則季氏之惡 己不得不任其責也

시(兕)는 들소이다. 합(柙)은 우리이다. 독(櫝)은 궤이다. 우리에처 뛰쳐나오며 궤 속에서 망가졌다면 그것을 맡은 자가 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두 사람이 그 지위에 있고 떠나지 않았다면 계씨의 악행을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신 것이다.

 

冉有曰 今夫顓臾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 必爲子孫憂

염유가 말했다. “지금 전유는 성곽이 견고하고 비땅에 가까우니 지금 취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세 자손들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固 謂城郭完固 費 季氏之私邑 此則冉有之飾辭 然 亦可見其實與季氏之謀矣

고(固)는 성곽이 견고하다는 뜻이다. 비는 계씨의 사사로운 읍이다. 이것은 염유가 변명하는 말이나 그가 실제로 계씨의 모의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孔子曰 求 君子 疾夫舍曰欲之 而必爲之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야, 군자는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변명하는 것을 싫어한다.”

 

欲之 謂貪其利

그것을 원하는 것은 그 이익을 탐하는 것이다.

 

丘也聞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 無貧 和 無寡 安 無傾

“내가 듣기에 나라를 소유하고 대부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을까 걱정하고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안정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했다.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목하면 모자람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

 

寡 謂民少 貧 謂財乏 均 謂各得其分 安 謂上下相安 季氏之欲取顓臾 患寡與貧耳 然 是時 季氏據國而魯君無民 則不均矣 君弱臣强 互生嫌隙 則不安矣 均則不患於貧而和 和則不患於寡而安 安則不相疑忌而無傾覆之患

과(寡)는 백성이 적은 것이다. 가난은 재물이 모자란 것이다. 균등하다는 것은 그 각자의 분수를 얻음이고 안정된다는 것은 상하가 서로 편안함이다. 계씨가 전유를 취하려 한 것은 백성이 적고 가난할까 근심해서이다. 그러나 그때 계씨가 나라를 점거하고 있었고 노나라의 군주는 백성이 없었으니 균등하지 않았다. 군주가 약하고 신하가 강했으니 서로 싫어하고 갈라지는 것이 생겼으니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고르면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아 화목하고 화목하면 적음을 근심하지 않아 편안하며 편안하면 서로 의심하거나 꺼리지 않아 나라가 기울고 전복됨을 근심하지 않게 된다.

 

夫如是故 遠人不服 則修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이와 같으므로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화와 덕을 닦아서 그들을 오게 하고 이미 오게 했으면 그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內治修然後에 遠人服이라 有不服이면 則修德以來之요 亦不當勤兵於遠이니라

 

안의 다스림이 닦아진 뒤에야 먼 지방 사람이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덕(德)을 닦아서 오게 하여야 할 것이요, 또한 먼 곳에 군사를 동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今由與求也 相夫子 遠人不服而不能來也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지금 유와 구는 계씨를 돕지만 먼 지방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데도 오게 하지 못하고 나라가 분열되고 무너지는데도 지키지 못한다.”

 

子路雖不與謀 而素不能輔之以義 亦不得爲無罪 故 倂責之 遠人 謂顓臾 分崩離析 謂四分公室 家臣屢叛

자로는 비록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본래 의로움으로 보필하지 못했기에 또한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함께 그를 꾸짖으신 것이다. 먼 지방 사람은 전유를 일컫는다. 나눠지고 무너지고 유리되고 끊어지는 것은 공실을 넷으로 나누고 가신이 여러 번 반란하는 것이다.

 

而謀動干戈於邦內 吾恐季孫之憂不在顓臾而在蕭墻之內也

“그런데도 창과 방패를 나라 안에서 사용하려고 모의하니 나는 계손의 근심이 전유가 아니라 병풍 안에 있을까 두렵다.”

 

干 楯也 戈 戟也 蕭墻 屛也 言不均不和 內變將作 其後 哀公 果欲以越伐魯而去季氏

謝氏曰 當是時 三家强 公室弱 冉求又欲伐顓臾以附益之 夫子所以深罪之 爲其瘠魯以肥三家也 洪氏曰 二子仕於季氏 凡季氏所欲爲 必以告於夫子 則因夫子之言而救止者宜亦多矣 伐顓臾之事 不見於經傳 其以夫子之言而止也與

간(干)은 방패이며, 과(戈)는 창이다. 소장(蕭墻)은 병풍이다. 고르지 못하고 화목하지 못하면 내부에 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뒤에 과연 애공이 월나라로 노나라를 쳐서 계씨를 제거하려 했다.

사씨가 말했다. 이때를 당하여 삼가가 강하고 공실이 약했는데 염구가 또 전유를 쳐서 계씨를 부유하게 하려 했다. 공자께서 그를 심히 꾸짖으신 이유는 노나라를 수척하게 해서 삼가를 살찌우려 했기 때문이다.

홍씨가말했다. 두 사람이 계씨 밑에서 벼슬하면서 계씨가 하려 한 일을 반드시 공자께 말했으니 그렇다면 공자의 말씀으로 말려서 중지시킨 것도 또한 많았을 것이다. 전유를 친 일은 경전에 나오지 않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셔서 중지시킨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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